금전 너머의 찐 보상을 설계하라
일을 통해 우리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원을 얻는다. 돈을 버는 것이다.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사실 세간의 말들을 들어보면 일하는 이유가 이거면 될 것 같은데 또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묘하게도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반드시 언급하곤 한다.
맥킨지 보고서 “Great Attrition or Great Attraction? The choice is yours”에 따르면, 기업들은 금전적 보상과 복지 관련 문제가 퇴사와 이직의 핵심 원인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구성원들은 조직에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을 퇴사와 이직의 핵심 이유로 꼽았다. ‘나는 일을 통해 세상과 의미 있게 연결되어 있는가? 일의 결과로 존재감을 제대로 보상받고 있는가? 일이 성장과 보람의 기회가 되고 있는가?’라는 물음들이 그것이다. 이 동상이몽이 시사하는 바를 어떻게 봐야 할까?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세태 속에서 이제 우리는 변화무쌍한 외부요인으로 일희일비하기보다 자신만의 확고한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는 자연스레 이전과 다른 관점으로 일의 의미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즉 일을 통해 단순히 돈이나 복지 등 금전적 만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더 절실히 원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일터에서의 이 의미감은 무엇일까?
딜로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당신이 이룬 큰 성과에 대해 받고 싶은 인정방식은 무엇인가?”라고 직장인들에게 물었을 때 절반가량이 ‘새로운 성장 기회’라고 답하였다. 물론 임금인상, 높은 평가 등급, 보너스 등 흔히 예상되는 금전적 방식 또한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금전적 보상보다 좀 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이라 인식하게 된 것 같다. 왜일까? 철학자 카뮈는 노동 없는 삶은 부패한다며 일이 삶에 미치는 순기능을 강조했다. 반면 영혼 없이 반복되는 노동, 이른바 영끌이 안 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오히려 삶의 독소가 될 것이라 경고해 주고 있다. 자신의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즉 자아실현을 성장이라 말하며 이 성장 여정에 우리는 영혼을 담게 된다고 보았고, 반면 영혼을 담은 성장 여정에 참여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것을 인간소외라 하였다. 우리는 평생 약 8만 시간에서 10만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만약 이 긴 시간 내내 영혼을 담는 의미 있는 경험 기회를 가질 수 없다면 일터는 인간소외를 절감하게 되는 가장 곤혹스러운 곳이 되지 않을까?
돈이 중요하지만 우리 인간의 일과 삶에는 돈으로 해갈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돈을 많이 받더라도 인간소외란 피폐감을 지속적으로 감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욕구가 이러하다면 이른바 ‘돈이 줄 수 없는 일터 의미감’이란 부분을 찾아 발굴하고 더 늦기 전에 이를 보상의 또 다른 축으로 체계화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기존에 행해온 비금전적 복지정책을 부분적으로 보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인간의 욕구와 행동에 대한 기본 가정을 성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 조직들은 사람에 대해 기본적으로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가정했다. 인간 행위의 목적은 다름 아닌 경제적 효용 극대화이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은 합리성에 근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서나 애착 같은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부차적이어서 인간의 경제적 행위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조직이론의 거장인 스탠퍼드대의 그래노베터 교수는 “인간은 전 생애적으로 이성보다 정서를 통한 관계에 보다 깊게 관여하기 때문에 이 정서적 관계의 질에 따라 경제적 행위의 선택지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고 말하며 정서가 곧 자본이라 주장했다. 또한 미국 드렉셀대 르보경영대학원의 달리 마 교수는 대기업에서 실직한 직장인들의 창업 활동 실증 분석을 통해 정서와 사업가 마인드의 관계를 시사한 바 있다. 기존 조직에서 비즈니스 중심의 이성적 관계만을 발전시켰던 조직원들과 정서적 관계도 함께 발전시켰던 조직원들을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성공적으로 창업 활동을 하게 되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직장에서 이성적 관계만 발전시켰던 조직원들보다 정서적 관계를 함께 발전시켰던 조직원들이 창업에 성공적임을 확인했다. 정서자본 개념이 허상이 아님을 입증한 셈이다. 더불어 많은 잡크래프팅 연구들은 정서적 관계의 질이 구성원들의 일터 의미감을 높이는 데 있어 비중 높은 변인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금전적 보상책에만 매몰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적절한 정서적 보상을 고안하고 이를 통해 정서를 자본화함으로써, 일터 의미감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인시아드의 쿠이 후이 교수와 앤드루 시필로브 교수는 정서자본 기존 연구들을 종합해 정서자본 구축의 핵심 요소를 ‘진정성’, ‘자부심’, ‘애착’, ‘재미’ 4가지로 제시한 바 있다. 구성원들이 이 4가지를 실질적으로 느낄 때 일과 조직에 대한 의미감이 높아지게 되고, 이에 따라 보다 더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4가지를 정서적 보상의 핵심 꼭지로 보고 이것이 주는 일터 의미감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당장 실행해야 할 리더십 행동이 무엇인지 제안해 본다.
정서적 보상 1_진정성: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파트너가 되어야
영국 런던에서 10년 동안 1만 7,530명의 공무원 대상으로 심장과 폐질환의 위험요인을 살펴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확인했다. 심장 질환의 가장 강력한 예측요인은 콜레스테롤이나 혈압이 아니라 놀랍게도 그들의 직급이었다. 더 나아가 직급을 앞세운 ‘상사’형 리더보다 동반자의 느낌을 주는 ‘파트너’형 리더를 둔 직원들이 느끼는 행복감을 정량적으로 환산했더니 무려 가계소득이 두 배 늘어난 것과 같은 수준임이 확인되었다. 파트너 같은 리더, 구성원에게 최고의 보상이 되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리더를 상사가 아닌 파트너로 인식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리더의 진정성이다. 조직이 부여한 권위와 권한을 리더십의 전부인 것처럼 행세하는 리더를 자신의 파트너로 인식하는 구성원은 없다.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며 말한 것을 먼저 실행해야 한다. 진정성을 확보하려면 언행일치, 솔선수범이 핵심이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구성원들에게는 짐 지우며 실행 없는 당위의 말로 구성원들을 관리하려는 모습 속에 진정성이 느껴질 리 없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경영철학자 게리 해멜은 “예산도 권위도 없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달라. 그것이 진짜 리더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찐 리더와 함께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진정성 있는 솔선수범’, ‘파트너 같은 리더’, 식상한가? ‘리드 바이 이그젬플(Lead by Example)’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회자되는 이유를 새겨야 한다. 그만큼 안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서적 보상 2_자부심: 무엇을 했는지보다 어떤 가치를 냈는지로 평가해야
자부심은 미래에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금전적 보상과 승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조직의 인정이 더 강력하고 더 오래 가는 동기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구성원들은 무엇으로 조직의 인정을 인식하는가? 바로 평가다. 어느 조직이든 평가제도 벤치마킹과 정비에 정성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 흉내내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평가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 대부분의 조직이 아웃풋 중심의 평가를 실행하고 있을 것이나 구성원의 자부심을 높이는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아웃컴 중심의 평가 철학으로 전환해야 한다. 자부심은 성취를 인정받을 때 고양되는데 이 성취는 아웃풋이 아닌 아웃컴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아웃풋은 산출물, 아웃컴은 소산물이다. 내일까지 보고서를 완료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제출 시점까지 투입할 맨아워는 인풋이고 50페이지 보고서는 아웃풋, 그리고 옳은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보고서에 담긴 메시지는 아웃컴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은 아웃풋에 의거해 성과를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아웃풋을 성과로 인식하고 이에 의존하는 것은 관리와 효율 제고에는 탁월하지만 조직에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아웃풋 기반 평가는 의미 있는 가치를 창출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자부심은 자신이 한 일이 의미 있는 가치 창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확인하는 데서 온다. 내가 창출한 부가가치를 제대로 알아주는 조직이라면 일의 의미감이 높아지고 그만큼 더 몰입하게 되지 않을까?
정서적 보상 3_애착: 구성원을 고해상도로 이해하고 일과 연결해야
우리는 공통의 가치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이 하는 일과 함께하는 동료, 그 조직에 애착을 느낀다. 공통의 가치와 관심사를 개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흥미, 강점, 지향점 등이, 조직 관점에서 보자면 사명, 비전, 핵심 가치, 사업 전략 등이 될 것이다. 이는 각각 ‘구성원의 의미 체계’, ‘조직의 의미 체계’라 표현할 수 있다. 가치 있게 여기는 것,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그 주체에 의미 있는 대상이 되며, 이런 의미 있는 것들이 모이고 일관되게 연결되면 주체가 세상과 상대하면서 기준으로 삼는 일련의 신념 체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가장 이상적인 것은 구성원 개인의 의미 체계와 조직의 의미 체계가 일치하는 것이겠다. 조직의 관심사가 곧 내 관심사라면 일에 대한 애착은 자연스레 뒤따를 테니까.
이를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일터에서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일의 내용, 형태, 추진방식과 어떻게 생산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특히 최근 신세대가 일의 의미를 직장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함을 고려했을 때 개인-조직 의미 체계의 공감도와 합치도를 끌어올리는 노력은 구성원의 애착을 형성시키는 가장 본질적인 해법이다.
정서적 보상 4_재미: 자발적 시도와 실패가 선순환 되도록 해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어야 하지만 일단 재미있고 봐야 한다. 재미가 있을 때 긴장이 이완되고 불안이 내려가며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재미는 자율성, 새로움, 실수나 실패에 대한 안전감을 기반으로 한다. 게임에 열광하게 되는 이유는 게임을 하는 동안만큼은 게임이 제시하는 세계관 안에서 온전한 자율을 누리고 새로운 탐색과 실험을 자유로이 해 볼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언제든 리셋할 수 있어 안전감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가장 재미있었던 교육이 무엇이었는냐는 질문에 1위로 나온 이야기는 ‘학습자 주도 방식’의 교육이었다. 반면 강사 중심의 강의 일색 교육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론했다. 재미는 웃기는 이야기와 농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도성이 발현될 때 얻게 되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재미있는 일터, 현실에서 이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당장 시작해야 할 노력은 무엇일까? 바로 구성원의 주도성을 막아서는 질책 풍토 개선이다. ‘직원들이 잘못하면 꾸짖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리더가 많다. 잘못했을 때 제대로 꾸짖어줘야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고, 발전의 계기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리더가 질책하면 구성원들은 변명을 하거나 잘못을 다른 이유로 돌리는 회피 반응을 보이게 된다. 또 잘못했다고 빠르게 인정하고 순응해 조직으로부터의 퇴출 위협을 최소화한다. 두 반응 모두 위험회피 태도와 복지부동의 처세술을 양산할 뿐 창의혁신을 위한 탐색과 실험이라는 도전 풍토 조성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서적 상호작용이 팀 성과를 좌우한다
지난 2012년 구글은 심리학, 사회학 전문가들을 불러들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4년이 넘는 기간을 들여 200명 이상의 구성원을 인터뷰하고 180개 이상의 팀을 분석하는 노력을 투입했다. 목적은 고성과 팀을 만드는 DNA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구글의 접근 방식이 흥미로웠다. 이 프로젝트에 투입된 전문가들은 모두 인간 심리 및 조직 이슈 전공자였다. 글로벌 IT 기업에서 고성과 팀을 평가한다면 아무래도 기술적 직무 역량에 비중을 둘 듯한데, 정작 이와 관련된 전문가들은 초대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그간의 관찰을 통해 고성과 팀의 특성이 개개인의 기술적 직무 능력보다는 그들의 정서와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결국 고성과 팀빌딩을 만드는 고품질 상호작용 드라이버 5가지를 찾아냈다. 바로 ‘심리적 안전감’ ‘상호 간 믿음’ ‘명확한 목적 공유와 이에 따른 R&R’ ‘일에 대한 의미 부여’, 끝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선한 영향력에 대한 확신’이었다. 어떠한가? 고성과 팀을 만들기 위한 5가지 드라이버 모두 앞서 나눈 정서적 보상의 내용들과 닮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