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 회사, 딸기를 키우다 : Dyson의 ‘Wrong Thinking’과 HR
AI 시대, 비즈니스 경계를 허물고 있는 영국 기업들에 대한 집중탐구 시리즈 中 1부
“비즈니스 경계를 허무는” 시리즈를 기획하며
2025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학계 그리고 비즈니스 현장에 계신 분들과 교류하며 나눴던 지난 시간의 대화를 되돌아본다. 많은 경우 AI(인공지능)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았다. AI로 인해 직접적으로, 혹은 AI로 인해 촉발된 간접적 변화들로 인해, 우리의 일상과 업(業)은 아주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이에 AI 시대, 비즈니스의 경계를 허무는 영국 기업들 몇 곳을 집중 탐구하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영국은 정부와 기업 모두 AI 기술 개발뿐 아니라, 사회 및 개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등 다양한 측면에 광범위하게 투자하고 있다. 다른 여러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AI 기술로 촉발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대처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기업들은 업의 본질을 확장하거나 재정의하며 변화해 나가고 있다.
이번 1부에서는 핵심 역량의 재정의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해 가고 있는 영국의 엔지니어링 기업 다이슨(Dyson)에 대해 집중 탐구한다. 그리고 2부에서는 HR 부서 없이도 수천 명 규모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에너지 기업을 탐구함으로써, 조직 내에서 HR이 어떤 역할을 상실하고 있고, 어떤 역할을 기대받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 3부에서는 HR 실무자들의 역할 및 직무 자체의 재정의에 초점을 맞춰 HR 분야에 있는 개인들이 어떤 역량과 시각으로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또 다른 기업 사례를 통해 고찰해 볼 것이다. 그럼 시리즈의 첫 번째로, 다이슨 기업을 살펴본다.
가전제품 기업, 그리고 농업 기업 - 다이슨(Dyson)
다이슨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는 보통 세련된 디자인의 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를 떠올린다. 물론 한국에서는 공기청정기와 날개 없는 선풍기도 많이 쓰이고 있지만, 정작 영국에서는 여름이 그다지 덥지 않아, 한국만큼 많이 보급되어 있지 않다. 영국의 경우 오히려 공공시설 화장실에 핸드 드라이어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있는데, 대부분 다이슨 제품이다.
다이슨은 영국의 발명가이자 산업 디자이너인 제임스 다이슨(Sir James Dyson)이 1993년에 설립한 영국의 가전제품 기업이다. 다이슨의 사업은 세계 최초로 먼지봉투가 필요 없는 사이클론식 진공청소기를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임스 다이슨의 자서전, 『Against the Odds: An Autobiography』에도 나와 있듯이, 그는 기존 청소기의 흡입력이 먼지봉투가 막히면서 약해지는 문제에 불만을 느껴, 5년 동안 5,127개의 시제품을 만든 끝에 혁신적인 기술을 완성했다. 이후 이 기술을 활용하여 날개 없는 선풍기, 헤어 드라이어, 공기 청정기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다. 다이슨의 혁신적인 기술과 독특한 디자인은 다이슨의 핵심 가치가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브랜드 로열티를 확보하였다. 다이슨의 제품들이 비록 경쟁사보다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로 마켓을 선도하고 있다.
2025년, 지금의 다이슨은 가전제품 기업이면서, 동시에 농업 기업이기도 하다. 다음의 사진에서 왼쪽은 다이슨의 전통적인 제품인 미용 및 청소기 가전제품이고, 오른쪽은 농업 생산물인 딸기를 수확하고 있는 로봇, 그리고 실제로 영국 마켓에서 판매되고 있는 딸기 농산품이다. 둘 다 다이슨 회사의 생산품이다.
다이슨 파밍(Dyson Farming)은 제임스 다이슨이 약 10여 년 전에 설립한 영국 최대 규모의 상업 농업 회사이다. 영국 잉글랜드 동부에 위치한 링컨셔(Lincolnshire)를 중심으로 영국 전역에 걸쳐 약 14,000 헥타르(약 4,400만 평, 여의도 면적의 약 50배) 이상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밀, 보리, 감자, 사탕무, 딸기, 해바라기 등을 대규모로 재배하고 있다.
청소기 회사가 농업을 한다고? 다이슨의 ‘Wrong Thinking’
다이슨이 왜 굳이 농업을? 이는 설립자 제임스 다이슨의 철학 및 관심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다이슨의 핵심 철학은 “기술을 활용한 문제 해결”이고 이것을 농업 분야로 확장한 것이다. 정밀 농업, 데이터 분석, 로보틱스, 바이오에너지 설비 등을 농장에 적용하여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고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제임스 다이슨의 관심사이자 다이슨 파밍의 목표이다. “We need to produce more of our own food in the UK”라는 제임스 다이슨의 메시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영국 내 식량 안보에 기여하는 측면도 또 다른 중요한 이유이다. 그는 영국이 식품 수입 의존도가 높고 기후 변화에 취약한 점을 우려하며, 고품질의 식량을 영국 내에서 지속 가능하게 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여기서 “지속가능성”이 또 다른 중요한 키워드인데, 기술을 활용해 농업 부산물을 혐기성 소화 설비에 넣어 바이오가스(전기 및 열에너지)로 전환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유리 온실에 공급하여 작물 성장에 재사용하는 순환 농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이슨의 핵심 철학 중에는 “Wrong Thinking”이 있다. 각종 인터뷰나 강연 등에서 제임스 다이슨은 회사의 혁신 문화를 설명할 때 이 표현을 자주 쓴다: “가장 좋은 발명의 모먼트는 종종 ‘Wrong Thinking’에서 출발합니다. 모두가 정답이라고 생각하거나 믿는 길로 가면, 결국 비슷한 결과에 도달할 뿐이니까요.” 또한 그는, “오늘날 발명은 Wrong Thinking, 실험, 운(Fortune)뿐 아니라, 연구·계획·제조 역량이 함께 있어야 가능합니다”라고 강조한다. 이런 측면을 통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다이슨의 핵심 가치는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넘어, 그 아이디어를 R&D와 엔지니어링, 제조까지 이어 붙여서 실제 제품과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능력까지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다이슨의 농업 진출은 기존의 엔지니어링, 문제 해결, 기술적 R&D와 같은 핵심 역량을 “환경친화적이면서도 영국 내 자급자족 가능한 식량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문제 영역에 확장하고 있는 시도이다.
다이슨 파밍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
겉으로 보면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을 다른 업에 적용하는 다각화(Diversification) 전략처럼 보인다. 물론 맞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단순한 사업 확장도 아니고, 또한 아직 완전히 성공한 비즈니스 케이스도 아니다. 자신들의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업(業)’을 재정의하고, 그것을 새로운 분야에 적용하고 있는 실험에 가깝다.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보면, 다이슨의 이러한 시도가 아직 완전히 성공적으로 마켓을 리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4년 다이슨 연간보고서를 보면, 다이슨 파밍은 광범위한 농지, 연간 4만 톤의 밀, 9천 톤의 보리, 1만 2천 톤의 감자, 1,250톤의 딸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약 2,000마리의 양과 800마리의 소를 키우고, 또한 농업 부산물을 통해 약 1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하이테크 및 순환형 농업 비즈니스”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정도 산출물이 영국 농업 전체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2025년 초 기준으로, 영국의 총 농지(농업에 이용되는 토지) 중 다이슨 파밍이 운영하는 부분은 약 0.1%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비율은 작아 보이지만, 평균 농가 규모가 약 80헥타르임을 고려하면, 다이슨 파밍은 평균 농가 180곳을 합친 규모에 해당한다. 생산량으로 보면, 2025년 기준 영국의 연간 밀 생산량은 약 1,280만 톤 수준인데, 다이슨 파밍이 생산하는 4만 톤은 전체의 약 0.3% 정도라고 추산할 수 있다. 이런 수치를 보면, 다이슨 파밍이 영국 농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미미해 보인다. 하지만, 단일 기업으로서는 상위권에 속하는 대규모/하이테크 농업 비즈니스라 이해할 수 있다. 엔지니어링 외에 에너지 그리고 데이터를 통합한 모델로 농장을 운영한다는 점 때문이다.
다이슨의 변화 기저에 있는 HR과 인재전략
다이슨이 시도한 농업으로의 업(業)의 확장 과정을 HR 측면에서 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있다.
1. 직무의 재설계: 기존 농업 직무를 단순히 생산 및 관리하는 역할에서, “센서, 데이터, 로보틱스 등을 활용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역할”로 재설계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기존에는 “트랙터 운전”으로 표현했다면, “데이터 기반 정밀 농업을 수행하는 테크니션”으로 재정의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다이슨 파밍의 직무 구성을 보면 더 흥미로운데, agronomist, farm manager, shepherd, livestock manager와 같은 전통적인 농업 직무에 researcher, engineer, data analyst, drone pilot, energy plant operator 등 다이슨 특유의 엔지니어링 및 데이터 직무가 한 조직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2. 인재 파이프라인의 다각화: 다이슨은 영국 내에 다이슨 공과대학(DTI, The Dyson Institute of Technology)을 직접 설립하여, 이를 통해 농학, 환경과학, 데이터 사이언스, 기계공학을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인재를 양성하고, Dyson Technology(가전·엔지니어링 조직)와 Dyson Farming 간 내부 모빌리티(내부 직무 이동) 가능성을 열어두는 인력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채용에 있어서도 매년 학생 및 청년을 대상으로 한 Summer Series, 인턴십, Work Experience Scheme 등을 통해, 지역 인재와 차세대 농업 테크 인재를 끌어들이고 있다. 기존 농업이 “낮은 수준의 기술 및 고령 산업”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다이슨은 기존의 전통적인 농업을 ”데이터와 자동화를 사용하는 하이테크 산업”으로 리포지셔닝하고 있다. 특히 채용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어필하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농업 업계의 평균 연령이 59세인 반면, 다이슨 파밍의 인력 구조는 평균 연령이 40세에 불과하다.
이 외에도 학습 및 재교육 측면에서, 기존 농업 인력에게는 데이터 리터러시와 디지털 스킬을, 반면에 엔지니어 출신에게는 토양, 작물, 환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상호 학습 구조를 만들고 있다. 사실 이러한 설계는 제임스 다이슨이 강조하는 Wrong Thinking과도 연계되어 있다. 전혀 다른 배경과 산업의 사람들이 한 조직 안에서 같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고착화되지 않은 유연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HR 입장에서는 “어떤 스킬을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개발해야 하는지”, “어떤 커리어 경로를 보여줄지”, “어떤 실패를 허용하고 학습으로 전환할지” 등에 대해 유연하게 설계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이슨의 사례와 같이 핵심 역량 기반으로 업(業)을 재정의하고 확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자 입장에서 다음의 질문들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우리 조직의 ‘Dyson식 핵심 역량 및 가치’는 무엇인가?
- 그 역량을 전혀 다른 산업·비즈니스 모델에 이식하려면, 어떤 역량 모델 및 스킬 맵을 그려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조직 구조/직무 설계가 필요할까?
- HR은 ‘채용·육성·배치·조직문화’를 비즈니스 업의 재정의에 맞추어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는가?
다음 호에서는 HR이 조직 내에서 어떻게 재정의되고 있는지, 그 역할 및 존재 의의에 대하여 “HR 조직 및 부서 없이도 수천 명 규모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의 한 에너지 기업”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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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Dyson Farming: https://dysonfarming.com
- Farming the Dyson way: https://www.dyson.co.uk/discover/sustainability/farming/technology-and-farming
- Technology & Farming (by James Dyson): https://www.dyson.com/discover/sustainability/farming/technology-and-farming
- Dyson Institute of Engineering and Technology - Strategy Plan (August 2023): https://www.dysoninstitute.ac.uk/media/4olb5tcb/dyson-institute-5-year-strategy.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