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공동체와 공동운명체의 차이

2014-07-02     정진호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기업은 사람들이 일과 삶을 함께 하는 조직체다.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공동체이고 사람처럼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있기에 운명체다. 그렇다면 기업은 공동운명체인가? 운명공동체인가? 답을 하려면 먼저 차이를 알아야 한다.

국립국어원 정의에 따르면 공동운명체란 ‘공동으로 운명을 함께 하는 조직’이다. 운명공동체란 ‘운명을 공동으로 함께 하는 조직’이다. 국립어학원은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의미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조직적 관점에서 구분하는 의미가 있다. 함께하는 조직은 같지만 ‘운명을 선택했느냐’ 아니면 ‘저절로 부여받았느냐’의 차이로 구분할 수 있다.
가족은 운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부여받은 것이다. 부부는 가족 구성원이지만 운명을 저절로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아내와 남편으로서의 자격을 선택한 것이다. 반면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격은 선택이 아니라 자녀의 출산으로 저절로 부여받은 것이다. 그래서 가족은 운명공동체, 부부는 공동운명체다. 공동운명체와 운명공동체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는 ‘선택’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둘 간에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가치도 달라진다. 운명공동체는 ‘책임감’이다. 운명공동체는 선택이 아니라 저절로 부여받았기 때문에 공동체를 받아들이고 유지할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 공동운명체는 구성원 간에 ‘존중’이다. 각자의 선택에 의해 함께할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기 때문에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에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부모는 ‘책임감’이 중요하지만, 부부는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된다.

그러면 기업은 운명공동체인가? 공동운명체인가? 기업은 선택할 수 있다.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선택할 수 있다. 공동운명체 즉, 공동으로 운명을 함께 하는 조직이며 가장 중요한 가치는 구성원 간에 ‘존중’이다. 필자는 ‘존중’이라는 키워드를 끌어내기 위해 ‘공동운명체’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기업이 아무렇게나 일만 해주면 되고 돈만 주고받는 곳이 아니라 구성원이 행복과 성공이라는 운명을 공동으로 개척하는 조직체라는 전제가 필요했다.

공동운명체인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사람이다. 사람의 본질은 수분, 피, 뼈, 가죽과 같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각’이다. 기업의 본질이 사람이기 때문에 구성원이 가진 생각 즉, 기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존재이유, 기업이 추구하는 미래상, 기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순위와 같이 구성원이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가치)이 기업의 본질이다. 현대 기업이 소통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소통하지 않으면 같은 생각을 하는지 확인할 수 없어서다. 소통 없이 일만하면 기업조직에 어디선가 암 덩어리가 자라서 결국 기업을 병들고 죽게 만들 수 있다. 존중은 소통하는 조직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존중’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어 귀중하게 대하다’이다. 무슨 뜻인가? 대체 기업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존중’인가?

첫째,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많은 기업이 부서별 간담회, 코칭,회식, CEO와의 대화 등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런 공식화된 공간은 조직원들의 생각을 충분히 소통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최근에 많은 기업에서 시도하는 높은 수준의 소통이 무기명 게시판이다. 사업전략, 조직운영, 인사제도 등 기업 활동의 모든 부문에 대해 무기명으로 의견을 제시하게 하고 의견에 댓글도 달 수 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런 시도가 매우 위험할 수 있지만 이런 수준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진정한 소통은 어렵다. 문제는 무기명 게시판에 기업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훼손하는 표현이나 특정 인물에 대한 인격적인 비난과 폄하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다. 답은 명확하다. 공동운명체인 기업의 정체성과 구성원에 대한 인격을 침해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 직원 한 명 한 명 인격체로서 성별, 나이, 출신지역, 종교, 학력 등 본원적 조건에 의해 무시당하거나 차별 받지 않는 것이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둘째, 일에 대한 존중이다. 기업에서 일은 업무나 직책에 따라 다르다. CEO가 하는 일, 임원이 하는 일, 부장이 하는 일, 사원이 하는 일은 저마다 다 다르다. 업무에 따라서도 기획부서, 영업부서, 생산부서의 일이 다르다. 그런데 어떤 기업에서는 전략이나 인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판단해 대우나 승진에서 존중 받고 현업부서는 차별 받는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는 경우가 있다. 군림하는 부서가 있고 차별과 피해 받는 부서가 있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있다면 공동체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직무와 역할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직무와 역할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것이 일에 대한 존중이다.

셋째, 사람에 대한 존중, 일에 대한 존중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적 존중이 갖춰질 때, 직원들은 존중받는다고 느낀다. 경영자와 임원들은 업계 최상위 연봉을 받으면서 대부분 직원들은 저임금으로 생활에 궁핍을 겪는 경우다. 경영자는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하는 일에 대해서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직원들이 느끼는 자괴감이 큰 기업이 많이 있다. 과거 기업 재무상황이 투명하지 않을 때는 몰라서 그런다고 하지만 현대 기업의 재무상황은 비교적 투명해졌다. 옛말에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회다. 빠른 경제성장 과정에서 부의 분배도 아직은 공정하지 않다. 기업에서 공정한 보상이 쉬운 개념은 아니지만 보다 많은 노력과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한 공정한 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영자가 직원에 대한 존중과 일에 대한 존중을 부르짖어도 직원들이 생각하기에 경제적 존중이 없으면 더욱 큰 분노와 실망을 느끼게 된다.

공동운명체인 기업에서 구성원 간에 ‘존중’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다만, ‘존중’이라는 가치는 조직의 우선순위가 분명히 서 있을 때 올바르게 구현될 수 있다. 기업의 존재이유, 기업의 꿈과 미래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과 기준인 조직의 우선순위가 핵심가치다. 핵심가치가 불분명하면 구성원들은 각자의 판단을 우선순위라고 주장하게 되고 구성원 간에 ‘존중’은 설자리를 잃는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조선개국 후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의 대화가 나온다. 수도 천도를 강행하려는 이성계에 맞서 신하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중재에 나선 정도전에게 이성계는 “임금의 권한이 하나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정도전은 “신하의 역할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불쾌한 기분이 든 이성계가 “임금의 역할은 뭐냐?”고 묻는다. 정도전은 “임금은 들어주고 참아주고 품어주는 것”이라며 “임금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성계는 썩은 표정을 지으며 “내가 생각하는 임금은 그런 임금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화를 낸다.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이 다르면 ‘존중’이 설자리는 없다.
공동운명체인 기업은 핵심가치를 분명히 세운 기반에서 구성원을 충분하게 존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