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지문을 읽어보라. “올림픽 육상 남자 400m 결승에 오른 한 선수가 있다. 이 선수는 준결승전을 막 치르고 가진 인터뷰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말 굉장해요. 올림픽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을 항상 꿈꿔왔는데, 드디어 제 꿈이 이루어졌어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선수의 올림픽 결승전 성적은 어땠을까? 독자의 편의를 위해 사지선다형으로 묻는다. ① 금메달 ② 최소 동메달 ③ 맨 꼴찌 ④ 알 수 없음 대나무가 크는 건 마디가 있어서다! 이전 칼럼에서 필자는 “21세기 인재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조건은 창의력(creativity)”이라고 언급한 바 있으며, 덧붙여 그런 창의력이 결실을 맺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로 아래의 다섯 가지가 존재한다고도 주장했다. * 창의력(C) = (지식, 동기부여, 다양성, 동심, 기법) 이번 칼럼에선 이들 가운데 ‘동기부여(motivation)’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볼 생각이다. 최고경영자(CEO)들은 평소 어떤 것에 가장 관심이 많을까? 성향별로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도 대개의 CEO들은 조직의 최소(最小) 단위, 즉 ‘개인의 잠재된 의욕을 어떻게 하면 끌어낼 수 있을까?’에 관심을 많이 가질 것이다. 한 마디로 직원들을 어떻게하면 ‘동기부여’ 시켜 조직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을까가 최대 관심사다. “왜 책을 읽는가?” “왜 헬스장에 나가는가?” “왜 그토록 일에 열심인가?” 물론 이런 행동을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인간 행동엔 그 행동을 부추기는 어떤 욕구(이유)가 존재한다. 그 욕구를 적극적으로 행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바로 동기부여다. 동기부여는 이렇게 정의될 수 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노력을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부추기고 끊임없이 행동하도록 하는 심리적 과정의 총칭.” 대나무가 강력한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자랄 수 있는 건 ‘마디’ 때문이다. 그런 마디는 인간의 동기부여에 해당한다. 동기부여는 한 인간을 더욱 단련시켜 한 단계 더 넓고 크고 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동기부여에 관한 한 연구결과를 보면, 종업원은 보통 일을 할 때 자기 능력의 약 20~30%만을 발휘하지만, 강력한 동기부여가 이루어졌을 땐 자기능력의 80~90% 가까이 발휘된다고 한다. “어떤 기업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실제 차이는 그 기업에 소속돼 있는 사람들의 재능과 열정을 얼마나 잘 끌어내느냐 하는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나는 믿는다.” 전 IBM 회장 토마스 제이 왓슨의 지적은 동기부여의 소중함을 잘 일깨워준다. 동기부여 이론에서 얘기하는 목표 속에는 개인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가령 그 양자가 일치된다면, 높은 동기부여는 높은 개인성과(높은 만족)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높은 조직성과(높은 업적)로도 이어진다.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 손자병법 모공편(謨攻編)에 등장하는 구절로 장수와 졸병, CEO와 말단직원, 조직의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같은 욕망을 가진다면 싸움에서 필히 승리한다는 의미다. 조직 구성원들의 목표에 대한 공감지수가 높고 강력할수록 조직의 목표는 쉽게 달성될 수 있다는 지적일 게다. 쉽게 얘기해 하나의 깃발(목표) 아래 모두가 한 방향(목적의식)으로 나아가야 조직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개인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 사이에 서로 괴리가 존재하거나 상충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개인 시점에서 본 성과와 조직 시점에서 본 성과 또한 상관관계에 있지 않음을 가리킨다. 그런 조직에서 장밋빛 미래상을 엿보기란 힘들지 않을까. 계산대 어디가 이상하다고? 사진 한 장을 제시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슈퍼마켓의 계산대 주변 모습이다. 그런데 평소 그대가 애용하고 있는 할인점이나 슈퍼마켓의 계산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 하나가 있을 것이다. 혹시 바로 찾았는가? 곧바로 특이점을 발견했다면 그대는 대단한 통찰력의 소유자임에 분명하다. 필시 주위로부터 창의적인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런 상식을 벗어난 모습의 계산대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도 궁금하지 않은가. 뭣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 출처:『일본의 창의력만 훔쳐라(2015)』중에서 지난 1957년 문을 연 슈퍼마켓 ‘오제키(Ozeki)’는 올해까지 25년 연속 매출액(814억엔)이 증가하고 있는 경이로운 회사다. 오제키가 내세우는 경영이념은 크게 세 가지다. ○고객 제일주의 ○ 개별 점포주의 ○ 지역 밀착주의 도쿄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오제키는 출점 수(2015년 1월 기준 38개 점포)는 그리 많지 않지만 숨은 우량기업으로 평가 받고 있다. 동종 업계에선 이른바 잘나가는 점포가 유난히 많은 슈퍼마켓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금껏 단 한 곳의 점포도 문을 닫지 않았다. 박리다매가 일반적인 슈퍼마켓 업계에서 오제키는 탁월한 수준의 경상이익률 및 생산성을 통해 평당 매출액, 1인당 매출액, 재고 회전율 등에서 업계 최고를 기록 중이다. 참고로 일반 슈퍼마켓의 경상 이익률은 2~3% 정도인 데 반해 오제키는 무려 7.3%로 대단히 높다. 자랑거리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동종 업계의 정규직 비율이 약 20%인 데 반해, 오제키에선 무려 70%로 이례적이라 할 만큼 높다. 정규직의 경우 책임감과 이익에 대한 집착이 강해 오제키의 업적 향상으로 직결된다고 한다. 이 회사에선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 자신이 원하는 직종에 100% 배정하는 걸 기본방침으로 삼고 있다. 이로 인해 신입 직원의 중도 탈락률이 적고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전문가로 성장해간다고 한다. 또 고객 요구에 언제라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 및 인재 육성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방침들이야말로 오늘날 오제키의 탁월한 생산성 및 매출액을 지탱하는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오제키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계산대의 방향’이다. 평소 우리들이 이용하는 할인점이나 마트의 계산대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 계산대 앞에 서있는 직원은 매장 안쪽에서 들어왔을까? 아니면 매장 바깥쪽을 통해 계산대로 들어 왔을까? 아마 대부분의 계산대는 매장 안쪽으로 개방되어 있어 직원은 그쪽에서 들어와 현재 계산대의 위치에 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제키의 계산대는 사진에서처럼 여타와는 정반대 모습으로 설계돼 있다. 즉, 매장 바깥쪽을 통해 직원이 계산대로 들어오게끔 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바로 여기엔 고객 제일주의를 몸소 실천하기 위한 오제키만의 노하우가 담겨져 있다. 어린이를 동반한 고객이나 몸이 불편한 고령자 등이 계산을 끝내면 계산대 직원은 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포장대로 옮겨 준다. 경우에 따라선 고객이 들고 갈 비닐 봉투에 계산대 직원이 구입 물품을 직접 담아 주기도 한다. 이런 서비스가 가능한 건 다른 할인점이나 슈퍼마켓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개방된 계산대 덕분이다. 가령 계산대가 외부 포장대 방향으로 개방돼 있지 않다면 현재와 같은 서비스는 불가능할뿐더러 계산대 직원에겐 꽤나 성가실 수 있다. 정리하면, 오늘의 오제키를 있게 만든 건 누가 뭐래도 직원들에 주어진 세 가지 동기부여 덕분이다. 첫째는, 사원 70%가 정규직이라는 점이다. 그로 인해 자신들만의 섬세한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둘째, 신입 직원은 모두 자신이 원하는 직종에서 일할 수 있다. 덕분에 중도 탈락이 거의 없고 단기간에 해당 분야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셋째, 사내교육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고객 요구에 재빨리 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을 만들었다. 끝으로 경쟁사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열려 있는 오제키의 ‘계산대’. 직원 개개인에게 동기부여가 제대로 침투돼야 본연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시스템도 잊어선 안 된다. 동기부여가 사라진 결과는? 글의 첫 머리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확인해 볼 차례다. 다시 한 번 문제를 음미해 보자. “올림픽 육상 남자 400m 결승에 오른 한 선수가 있다. 이 선수는 준결승전을 막 치르고 가진 인터뷰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말 굉장해요. 올림픽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을 항상 꿈꿔왔는데, 드디어 제 꿈이 이루어졌어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위 지문은 마인드맵(Mind map)의 창시자로 유명한 토니 부잔(Tony Buzan)의 저서『생각의 지도 위에서 길을 찾다』의 한 대목이다. 위 선수의 올림픽 결승전 성적, 즉 최종 성적이 어땠을까를 묻는 질문이었다. 당신은 몇 번을 골랐는가? 1등으로 들어와 금메달? 최소 3등 아니면 꼴찌? 물론 ‘알 수 없음’을 선택한 이도 있을게다. 모두 지당한 답변이다. 다만 ‘동기부여’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 선수는 ‘맨 꼴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부잔은 얘기한다. 이유는 꿈에 그리던 자신의 목표(결승전 진출)를 이미 달성했기에 결승전 성적은 크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동기부여는 창의력 계발에 더 없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타고날 때부터 출중한 창의력의 소유자라 할지언정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런 능력을 자발적으로 발산하게 만드는 건 어떤 계기로 동기부여가 이뤄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래야 최고 수준의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2015년 7월호, 제125호
- 입력 -0001.11.30 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