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長壽)사회의 반대급부
일본은 여러모로 장수국가로 분류된다. 창업 100년 이상의 기업이 3만 개를 훨씬 웃돌아 세계 최고 수준이며, 국민의 평균수명도 WHO(2016년) 가맹국 중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60년∼2018 년 사이, 평균수명 16.54세가 늘어 84.21세를 보임에 따라 인생 100년을 내다본 노후대책이 다각도로 검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스가(菅) 총리는 자조(自助)를 첫째로 강조하고, 이어서 공조(共助), 그리고 끝으로 정부 역할인 공조(公助) 순으로 역설하였다. 이는 장수사회에 걸맞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일본 정부의 재정적 여력이 없다는 점을 토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이나 사람이나 오래오래 산다는 것은 신의 축복으로 여기고 감사할 것이지만, ‘대비하지 않은’ 정부나 개인한테는 어쩌면 재앙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시간이 흘러갈수록 지난날에는 축복이라 생각했던 것이 차츰차츰 답답하고 우울한 미래 모습으로 바뀌어감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 주요 원인의 하나가 장기집권을 노린 정치 가들의 근시안적이고도 인기영합적 리더십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것처럼 국민들의 팔로워십에도 문제가 있다. 고학력 사회로 불리는 일본에서도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한국 속담처럼, 정부의 복지정책은 그 가짓수가 많고 지원금액이 클수록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생각이 오랫 동안 뇌리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근년으로 올수록 공적 의료보험의 자기부담율은 높이고, 국민연금 지급액은 삭감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장수화가 진전되는 가운데 낮은 출산율이 지속됨에 따라서 일본 사회의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높아져갔다. 장기 추이를 보면, 지난 60년 동안 5배나 높아졌다. 1960년의 5.7%에서 2019년에는 28.4%로 높아졌고, 2065년에는 38.4%에 이를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인구 반토막의 미래사회
낮은 출산율의 장기화로 2010년경부터 총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장기인구추계에 의하면, 2065년의 총인구는 약 8800만 명이며, 이는 피크 때에 비해 약 3할인 4000만 명이 줄어든 규모이다. 단순 셈법으로 보자면, 기업한테는 내수시장이, 가계(家計)에는 일자리가, 정부한테는 세수(稅收)가 각각 3할 정도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2100년에는 일본 인구가 피크 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약 6000만 명으로 추계되고 있다.
이처럼 인구감소가 확실시되는 가운데서 지속적 경제성장 실현과 복지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인구감소분을 웃도는 부가가치 창출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가가치 창출의 주역인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불가피하지만, 현재의 인적 자원, 제품과 서비스, 경영체제나 생산방식으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 특히 부가가치의 창출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은, 양적 감소가 확실한 가운데, 질적 수준의 저하마저 일찍부터 지적되어 오는 약점 중 하나이다. 파괴적 이노베이션이나 블루오션 등의 전략 아래 독점적 시장의 개척, 즉 경쟁 타사가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기업들의 이러한 경영전략과 직결 되는 교육·과학, 노동·복지 등등의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여, 관민 공조체제로서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속칭 아베노믹스라는 경제정책을 추진해오고 있지만, 그 이전의 ‘잃어버린 20년’을 되찾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Made in Japan」, 「Japan as No.1」 등등의 일본 찬가가 세계 곳곳에서 들리던 시절에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보낸 필자로서는 나름의 원인을 찾아보고 있지만, 이에 대한 기술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민간 70세·공무원 65세의 정년연장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의 정년제도는, 1945년 이후에도 관련법령의 거듭된 개정으로 정년 연령을 높여 왔다. 최근에는 인구감소로 인한 노동력 확보에 초점을 둔 정년연장이 추진되고 있다. 고령화의 급진전과 단괴(團塊)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부머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연금재정의 부실화 속도를 조절해보겠다는 속내도 엿보인다.
현재 정년연령은, 공무원과 민간기업 모두 60세가 원칙이지만, 일반공무원의 경우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리는 법안 개정이 추진 중이며, 민간기업 근로자의 경우는 금년(2021년) 4월부터 65세 까지 고용이 의무화되고, 70세까지는 고용노력의 의무로 바뀌었다. 이 또한 4년 후인 2025년 4월부터는 70세까지 고용의무로 바뀌게 될 예정이다.
지난날의 정년연장을 보면, 일본 정부는 매번 유예기간을 두어 민간기업의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였다. 5년에 걸친 제도 준비 기간과 정년연장의 3가지 선택지 부여, 정년연장에 대한 보조금이나 조성금 지원제도 등이다. 60세에서 65세로 정년을 연장할 때도, 일본 정부는 노력 의무로 규정하여, 기업체에 정규직으로의 고용연장을 강요하지 않았다. 기업체로서는 60세에 일단 정년퇴직으로 처리하고, 희망자에 한하여 고용연장, 재고용, 정년폐지의 3가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고용 재계약을 맺었다.
실제로는 기업마다 훨씬 다양한 형태로 운영하였다. 한국에는 없는 출향(出向)이란 제도가 있다. 예컨대 65세 정년일지라도 50세나 55세, 60세에서 그룹의 계열사나 협력회사 등으로 파견을 보내 일하게 하는 근무제도이다. 고용의 적(籍)을 두고가는 경우와 옮겨가는 경우로 구별되는데, 후자는 실질적으로 금전적, 비금전적 보수는 물론 근무형태나 방식 등에서 적지 않은 불이익을 입게 되는 케이스이다. 말하자면 고용보장형 조기퇴직 및 재취업 알선제도와 같다고 할 것이다. 최근, 일본항공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관계사나 고객사로 파견한 케이스가 이에 해당한다. 재적 (在籍)출향의 경우, 예컨대 급여상 차액이 발생한다면, 본래 소속사에서 차액을 지불하여 출향자가 금전적 불이익은 입지 않도록 조치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무원의 경우, 정년연장은 「복잡화·고도화되어 가는 행정과제에 적확하게 대응해 가기 위해서는 풍부한 지식, 기술, 경험 등을 가진 고령 직원의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1980년경에 55세에서 60세로 연장(노력의무)된 이후, 1990년의 「정년 후 재고 용제도」 실시, 1998년의 「60세 정년연장제도」확립을 거쳐, 2000 년에 「정년 후 재고용제도」를 노력의무로 하였다. 그리고 「정년 후 65세까지 재고용제도」를 2006년부터 단계적 노력의무로 하였으나, 2013년부터는 희망자 전원에 대해 실시토록 하였다. 현재는 65세 정년연장(단계적 의무화)의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정년연장과 인사혁신
정년연장의 법제화는 기업경영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친다. 먼저 디메리트로서는 ①조직내 고령층 증가로 인한 조직활력 약화, ②연장 기간 5년의 인건비 부담 가중, ③60세를 경계로 한 급여시스템 등 인사제도 이원화, ④제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정보기술(IT)스킬 습득 및 비즈니스모델 변화에 따른 고령자 대상의 재교육 필요, ⑤고령자 증원에 따른 채용 등 인력수급계획의 재고(再考) 등을 들 수 있겠다. 무엇보다 정년연장자들의 평가제도와 급여제도가 우선적 혁신 대상이 될 것이다. 퇴직금과 복리후생비를 포함한 총보수(total reward) 관점에서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65세 이상의 고령자 중에서도, 회사측에서 볼 때, 필요한 인력과 불필요한 인력이 있을 것이며, 필요한 인력도 조직성장 공헌도나 부가가치 창출액에 있어서 개인차가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년연장 기간은 성과주의를 기본으로 개인별 연봉제로 하되, 사후평가 결과에 기초한 인센티브급의 비중을 높게 하여야 할 것이다. 연공급의 연장은 조직의 재무 부담을 지나치게 하여 가격경쟁력 저하와 조직내 세대간 갈등 등을 야기할 것이다.
일본의 공무원 정년연장에 있어서는 관리감독직의 근무상한연령제, 정년 전 재임용 단시간근무제 등의 도입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아울러 인건비 부담을 경감하고자 60세 전 월급의 7할 수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한편, 정년연장에 따른 메리트로서는 ①총인구 감소 속에 날로 심화되는 일손부족난의 완화, ②오랜 세월 속에 구축된 고객과의 양호한 관계 지속, ③경험과 숙련을 바탕으로 한 신입사원이나 경력 사원 등의 인재육성 기여, ④신규의 채용 및 육성에 따른 코스트 발생의 경감, ⑤정부나 지자체의 각종 고용조성금(65세 초과 고용추진 조성금 등) 이용으로 정년연장에 따른 비용부담의 절감 등을 들 수 있겠다.
이상은 일본의 인구 구조 변화와 정년연장에 초점을 두고 쓴 글이지만, 한국의 현상도 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인생 100년 시대를 내다본 복지국가를 건설하려면, 지식정보와 제4차 산업의 시대를 리드할 인재육성이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부(富)의 창출원천이 인재의 확보와 육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