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막스 베버는 관료제 조직이 문제점도 있지만 나름 장점도 있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조직 형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권한과 책임이 위계질서에 따라 분명히 정의되고, 공식화된 규정, 규칙,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공평한 조직 운영이 될 경우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직이 점차 비대해지고 커질 경우, 그리고 관료주의의 정점에 있는 상층부 리더들의 자질과 역량이 진부화되고 새 시대에 맞지 않을 경우 여지없이 관료주의는 병들게 된다. 무사안일, 복지부동, 획일주의, 보신주의 등 전체 조직의 문화가 망가지게 되고, 형식주의에 갇혀 그 어떤 조직보다 느리고 비효율적인 조직이 되기 쉬운 것도 관료제 조직이다. 우리는 이때 나타나는 병폐를 흔히 '관료주의'라고 말한다.  이 같은 관료주의는 조직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경향이 있어, 혁신과 창의가 생명인 현대의 기업 조직에서는 항상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업이 관료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세계적인 석학 게리 하멜 교수는 “관료주의가 심화된 조직의 경우, 첫째, 권력이 상층부에 집중되어 있어 최고경영층이 고객과 환경 변화에 동떨어진 전략을 세팅하게 만든다. 둘째, 조직의 규칙들이 구성원들의 자율적 재량권을 제한한다. 셋째, 구성원들이 일에 열정을 갖고 성취감을 느끼기보다 포지션에 연연하게 되는 승진 경쟁에 매몰되게 한다. 넷째, 일은 리더로부터 할당되어지면서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일하기보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만 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기업이 혁신과 변화에 앞장서기 위해서는 관료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부정적 현상을 철저히 경계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관료주의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벗어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게리 하멜 교수는 “조직 구조는 수평화하지만 정작 위계를 제거하지 못하고,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나 진정으로 리더의 권한을 배분하지 않으며, 관료주의에 대해 비난하나 그것을 몰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정작 혁신의 장벽들을 해체시키지 못하는 문제를 꼬집은 바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관료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경영하는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그 주요 특징과 시사점을 살펴본다. 1. 현장 중심 조직 구축하기 관료주의가 만연한 조직은 고객과 동떨어진 최고경영층이나 관리부서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현장의 상황과 목소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보고에 의해 내용을 간접적으로 파악하게 되고, 결국 고객이나 시장의 변화, 니즈 등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확률이 높아진다. 때로는 고객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은 구성원들이 리더들의 의사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하면서도 따라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한다. 유니클로는 1994년 히로시마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뒤 전체 매출 규모가 상승하는 등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으나 실제로는 점포 매출이 하락하는 마이너스 성장세였다. 원인을 살펴보니 조직이 커지면서 CEO 산하의 본사 특정 부서가 소위 핵심 부서로 자리매김하며 다른 부서들과 매장들을 컨트롤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고객과 제일 동떨어져 있는 본사는 머리가 되고, 매장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손발이라는 인식이 만연해졌고, 그러다 보니 매장에서는 고객 니즈에 융통성 있게 대응하기보다 본사에서 내려온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등 수동적인 태도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유니클로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 사장은 이러한 관료주의 행태를 벗어나기 위해 본사 관리 중심에서 점포 자립 중심으로 조직 운영 체계를 전환했다. 사내 인재들을 대상으로 점포 경영을 맡길 경영자를 육성하고, 점장이 직접 매출이나 재고 관리를 할 수 있도록 경영권을 부여하였다. 그 결과 본부 관리부서 주도의 일방적이고 수동적 경영에서 매장 중심의 능동적 경영으로 전환이 가능하게 되었고, 매장 직원들도 고객 니즈에 더 귀 기울이고 직접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면서 고객 니즈에 맞춘 발 빠른 경영을 실천할 수 있었다. 2. 중간관리자 계층의 축소 수많은 중간관리자를 양산하는 관료주의도 문제다. 의사결정 속도를 저하시키고 정보를 왜곡하는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온라인 신발 의류 유통 기업 자포스는 중간관리자 계층을 대폭 축소해 이를 막았다. 자포스의 CEO 토니 셰이는 “어느 누구도 좋은 아이디어를 죽일 수 없고, 누구든 리더가 될 수 있으며, 독재자들을 견딜 필요가 없고, 열정을 죽이는 정책은 뒤집는 조직을 만들겠다”며 전통적 계층제 피라미드를 없애고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홀라크라시’ 조직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이에 따라 사람을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승인하는 감독 역할을 계속 하고 싶은 관리자들은 회사를 떠나줄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구성원 중 14%가 사직서를 냈다. 짧은 기간에 14% 인력의 퇴직은 조직에 상당히 타격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토니 셰이는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모이는 서클형 조직을 구성함으로써 구성원들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지위에 의한 권위보다 구성원들이 전문성을 발휘하고 동료를 돕고 의미 있는 일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형태로 조직을 운영하겠다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3. 상층부부터 기득권 내려놓기 관료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층부부터 특권의식이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구성원들의 신뢰가 견고해지고, 조직 전체의 변화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회사 뉴코의 리더들은 특권을 누리기보다 평등 의식을 기반으로 구성원들과 동등한 혜택을 추구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뉴코의 전 CEO 켄 아이버슨은 “회사 계층 구조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이를 과시하면서 정작 지출을 줄이고 수익률을 올리라는 자신의 말에 왜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고 말한 바 있다. 위기경영이라며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작은 비용 하나하나 통제하면서 정작 경영층들은 고급 차량 리스 비용, 운전기사 비용, 넓은 응접실과 집무실 등의 기득권을 놓지 않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뉴코의 경우 예를 들어 CEO를 비롯한 모든 리더들은 해외 출장 시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한다. 또한, 회사 차량, 회사 전용기, 특별 주차 구역 등의 혜택도 없으며, 손님 접대도 회사 근처 샌드위치 가게 등에서 가볍게 한다. 리더의 기득권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리더가 기득권보다는 솔선수범하여 회사 업무에 집중하는 올바른 경영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구성원들과의 신뢰를 견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켄 아이버슨의 철학을 곱씹어볼 필요는 있다. 4. 작은 별똥부대 활용하기 사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그리고 오래될수록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관료주의 사상과 제도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경직된 관료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변화를 시도한다 해도 조직 전체적으로 개혁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일부 회사들은 특정한 프로젝트나 부서 중심으로 조직 내 관료주의적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특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기업 내의 통제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혁신적 시도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기업 혁신을 이끄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록히드 마틴의 스컹크 웍스다. 스컹크 웍스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미국 국방부 요청으로 록히드가 비밀리에 긴급하게 구성한 개발팀 명이었다. 이들은 미처 작업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공장 주변 빈 터에 천막을 세우고 작업했는데 악취가 심해서 본사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아 의도치 않게 비밀조직화 되며 본사의 관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스컹크 웍스는 약 50명의 소수 인원으로 예상 기간보다 한 달이나 빨리 신형 제트기 설계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스컹크 웍스는 이후에도 여러 가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는 성과를 발휘했다. 스컹크 웍스가 혁신적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회사 내 만연했던 사내 정치, 절차, 프로세스 등으로부터 격리하고, 다양성을 갖춘 소수 구성원으로 구성하며,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자유로운 토론과 빠른 실행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스컹크 웍스와 같이 기업의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별도의 방식으로 혁신적 시도를 하는 소규모 팀의 활용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IBM은 기존 조직과 완전히 분리된 사업개발팀을 별도로 구성하고 최고경영진에게 직보하는 체계를 만들면서 1980년 중반 이후 PC 사업 활성화를 이끄는 성과를 보였다. 5. 혁신적 개혁가를 통한 쇄신 관료주의가 심할수록 자신의 특권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며 만족해하는 ‘지위 중독’ 현상이 심화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기득권을 잃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현상 유지를 쫓는 보신주의 경향이 강해진다. 특히 상대적으로 권력이 더 많은 리더 계층이 보신주의나 복지부동의 자세를 취할 경우, 그 조직 스스로 관료주의를 벗어나기란 상당히 어렵다. 강력한 혁신적 개혁가를 통해 이런 경우를 벗어난 사례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회생 불능 조치를 받았던 일본항공이다. 일본항공은 포퓰리즘 정치에 휘둘려 적자인줄 알면서도 전국 각지에 노선을 늘렸고,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사원들의 인건비는 줄이면서 정작 정년 퇴직한 스튜어디스들에게 지급했던 월 500~600만원 선의 고액 연금은 유지하고 있었다. 경영진들은 이런 방만한 경영이 일본항공을 쓰러지게 만드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임기간에 건드렸다가 일이 크게 터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망하기 직전에도 ‘조금만 손대면 좋아질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이때 교세라(Kyocera)의 창립자 이나모리 가즈오가 일본항공을 쇄신하기 위해 등장했다. 혁신적 개혁가 역할을 수행한 이나모리 가즈오는 경영층들의 보신주의를 지적하였고, 그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서둘러 시행했다. 특히 일본항공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만 한다며 장기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단카이 세대라 불리는 중년 기득권층을 구조조정 하는데 성공했고, 강성 노조를 기반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퇴직자들에게도 연금액 인하에 동의하는 사인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물론 일본 정부의 여러 지원도 있었지만 혁신적 개혁가 이나모리 가즈오의 냉철한 판단과 강한 추진력이 없었다면 일본항공의 부정과 관료주의의 병폐 고리를 끊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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