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정과 분배 강화 정책과 임금인상 요구 바람 새로 부임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으로 새로운 일본식 자본주의를 만들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맞춰 일본 언론은 근로자의 열악한 임금 및 근무환경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언론들은 자국 노동자의 낮은 임금실태를 꼬집었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구매력 기준 연 평균임금은 35개국 가운데 22위인 3만 8514달러로 집계됐다. 이를 최근 환율(1달러 110엔)로 환산하면 424만엔(4450만원) 수준에 그친다.  이 같은 수준은 가장 임금수준이 높은 미국(763만엔)과 비교하면 339만엔(3550만원)이나 적은 규모다. 지난 1990년과 비교하면 미국이 247만엔 증가할 때 일본은 18만엔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2015년 구매력 기준 평균임금에서 한국에 추월당한 이후 지난해는 38만엔(400만원) 가량 적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평균임금 상승률 둔화는 노동생산성 저하에 따른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일본생산성본부에 따르면, 2019년 1인당 노동생산성은 주요 37개국 가운데 26위다. 특히 일본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자동차산업 등 제조업에서도 노동생산성은 2018년 기준 세계 18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본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2000년 전후에 세계 최고 수준을 보였던 것에서 크게 추락했다.  일본이 아무리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해도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이 1.5배 수준 증가한 것에 비해 임금인상이 지나치게 더딘 것에 대해 노사관계 측면에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일본의 노사관계 역사를 보면 버블 붕괴 이후 노조는 고용유지를 우선하고, 임금상승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전후 50%를 넘었던 노조조직률은 20%를 밑돌고 유럽과 같은 산별노조와 달리 일본은 ‘기업별노조’가 일반적이어서 경영진과 대등한 교섭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와 노동계가 기업을 밀어붙여 임금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고 결국 생산성을 향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본이 한국 등에 따라 잡힌 데는 모든 산업에서 디지털을 접목하지 못하는 등 혁신에서 뒤처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 정년제 논란 뜨거운 일본 기업들 

1) 인생 3모작 45세 정년 주장하는 경영인과 거센 반발  최고령 사회로 이미 접어든 일본에서는 정년제를 두고 끊임없이 논란과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최근 일본은 유력 경영인이 화두를 던진 ‘45세 정년제’ 논란으로 뜨겁다. 일본 경제계의 영향력이 큰 한 기업인은 “45세 정년제 도입으로 직원이 회사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종신고용이나 연공임금제 등 일본의 과거형 고용모델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45세 정년제를 도입하면 인재들이 성장산업으로 대거 이동할 수 있고 회사 조직의 신진대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기업인의 ‘45세 정년’이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은 여론은 엄청나게 반발했다. “젊을 때 부려 먹고 45세면 자르겠다는 거냐”, “45세에 이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인건비를 줄이고 싶은 기업 입장을 대변한 것” 등 부정적인 반응이 폭발했다. 또한 포털사이트 야후에는 수만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러한 거센 여론에 대해 “45세는 직장인 생활에서 한 매듭이 되는 시기로 이때쯤 자신의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스타트업 기업으로 옮기는 등 사회가 여러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해고하겠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고 거듭 해명했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경단련의 한 관계자는 “노동시장 유동화가 일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회사가 보장하는 것이 45세까지라고 한다면 젊은이들은 의욕을 잃을 것”이라거나 “스타트업은 무슨 죄냐”는 등 부정적 반향은 여전했다. “인생 플랜이 불투명해지면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부터 기피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러한 45세 정년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은 발언한 기업인이 일본 재계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존재감이 큰 것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올 4월부터 시행된 ‘70세 고용 연장’ 정책이 주는 중압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45세 정년 발언의 배경에는 일본 정부가 정년을 70세까지 늘리려고 하는 흐름에 대한 기업 측 위기의식이 들어가 있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정부 방침에 침묵하는) 경영자들 들으라고 한 발언”이란 해석도 나온다.  2) 모든 기업에 70세까지 고용 노력 의무  흔히 ‘일본의 정년이 70세로 연장됐다’는 말이 회자되지만 엄밀히 말해 현재 일본의 법적 정년 연령은 60세다. 2013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하면서 60세 미만 정년을 금지하고 65세까지 근로자가 원할 경우 기업 측이 고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정식으로 정년이 65세가 되는 시기는 2025년으로 정했다. 또 올해 4월부터는 65세 고용 이후로도 근로자가 원한다면 70세까지 취업을 보장할 것을 각 기업에 ‘노력의무’ 형태로 부과했다. 방법은 65세까지 적용해온 3가지 고용연장 조치를 70세까지로 연장하거나 취업 알선, 프리랜서 계약, 재교육 등을 지원하는 형태도 가능하다. 이런 조치를 두고 고령자 부양을 국가가 기업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8.7%다. 정부 입장에서는 인구의 3분의 1이 일하지 않고 부양받는 입장이 된다면 재정이 버텨낼 수 없다. 하지만 경영자 입장에서는 한번 직원이 되면 본인이 원할 경우 65∼70세까지 보살피라고 강요받는 셈이 된다. 한 경제 전문가는 “직원 노후 보장도 좋지만 회사가 망해버리면 모두 끝”, “차라리 정년을 철폐하고 각 회사 사정에 맞는 고용을 보장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3) 9년 전 이미 등장한 40세 정년  정년 단축 논의는 사실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니다. 2012년 당시 민주당 정권하에서 열린 ‘국가전략회의’ 분과회에서 ‘40세 정년제’가 제안됐다. 기업의 고용의무를 65세로 연장한 현행 고령자 고용안정법 개정을 1년 앞두고 관련 논의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 기업가는 정년 연장에 반대하고 “45세 정도부터 제2의 인생을 생각하게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이 분과회는 보고서에는 “모든 국민이 75세까지 일할 수 있는 사회를 형성하려면 정년제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 60세 정년제는 기업에 인재가 고정돼 신진대사를 저해하고 있다. 정년이 65세로 연장되면 젊은이의 고용 기회가 더욱 줄어든다. 평생 두세 번 정도 이직이 보통인 사회를 지향하려면 오히려 정년 연령을 내려야 한다. 정년 후 새로운 지식을 얻은 뒤 같은 기업에서 일할 수도 있고 창업 등을 상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린다 그래튼 런던경영대 교수의 지론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저서 『100세 인생』에서 한 사람이 평생 여러 개의 직업을 갖게 되고 이를 위한 리커런트(recurrent) 교육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100세 시대에는 60세, 혹은 65세까지 일한 수입(저축 혹은 연금)으로 평생을 먹고살 수 없다”며 “인생은 과거와 같은 교육, 취업, 은퇴의 3단계가 아니라 더 긴 탐색기와 중간 휴식기를 가지며 직업을 바꾸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4) 국가 전략 문제로 떠오른 세계 각국의 정년제도  미국은 1986년에 정년제를 없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직시키는 것은 또 하나의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영국도 2011년 같은 이유로 정년을 폐지했다. 독일은 현재 65세인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연금 등 국가 재정 부담을 완화하고 숙련공의 기술 노하우를 더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들 서구권은 고용에 유연성이 있다는 점이 한국이나 일본과 다르다.  정년 연장은 연금 수급 시기와 맞물려 사회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프랑스는 2010년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늦추고 연금 수령 시기를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하려 했지만 반대 여론에 부닥쳐 원점으로 돌아갔다. 러시아도 은퇴와 연금수급 연령을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늦추려다가 반발이 커지자 여성만 상향했다.  한국은 2016년부터 법적 정년이 60세로 연장됐다.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직장에서 40대 중반만 돼도 떨려나는 양상이다.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정년 연장이건, 노동시장 유연화건 논의될 법하지만 최고 수준의 청년실업률과 강경한 노조활동 앞에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정년이 보장되는 일본식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있는 미국식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베이비붐 세대들이 정년을 맞이하고 있다.  정년제 논의는 개인이 몇 살에 일을 그만두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고용을 어떻게 지키느냐 하는 국가전략 차원의 이야기다.  5) 100세 직장에 도전하는 일본 기업들  가전양판 업체 노지마가 직원의 고용 연령 제한을 사실상 폐지하는 등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 고령 인력 활용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고령화에 따라 늘어난 노인 인구를 활용해 일손 부족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노지마가 80세 고용 상한을 사실상 폐지했고, YKK그룹도 올 4월 정규직 정년을 없앴다고 보도했다. 노지마는 작년 7월 정년(65세) 이후 80세까지 건강 등을 감안해 1년 단위로 계약하며 임시직(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는데 ‘80세 상한’마저 폐지한 것이다. 노지마는 신규 채용에서도 80세 이상을 받을 계획으로 이들에 대해서는 ‘하루 5시간, 주 4일’ 근무하는 시니어 직원의 월급(12만엔)을 적용할 계획이다. 80세가 넘어서도 일하고 싶다는 의견이 이어지자 이번에 상한을 없앤 것으로 보인다. 노지마는 직원들이 점포에서 고객을 직접 상대하기 때문에 상품 지식이 풍부하고 고객 응대 경험이 많은 시니어 직원의 활용도가 높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지마가 시니어 인력을 확보하는 전략에는 일손 부족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지마는 내년 봄 입사자로 870명 정도를 신규 채용할 계획이지만 현재 700여 명을 확보하는 데 그치고 있다.  기업의 정년 연장·폐지 움직임도 활발하다. KK그룹은 지난 4월 65세였던 정년을 폐지해 계속 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미쓰비시케미컬도 정년 폐지를 검토한다. 기계 업체 구보타는 내년 4월부터 정규직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하며 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도 적용 대상으로 할 예정이다. 마쓰다도 60세인 정년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려 2030년 65세로 만들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4월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시행해 기업들이 70세까지의 취업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의무화한바 있다. 하지만 ‘연공서열’의 특성이 강한 일본에서 고령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인건비 부담이 늘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에서 정규직으로 정년이 연장되면 촉탁사원 등으로 재고용 될 때보다 급여가 40%가량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니어 직원에 대해 성과주의 임금제를 적용하는 움직임도 있다. 닛케이가 진행한 ‘사장 100명 설문조사’에서 시니어 사원의 고용에 대한 질문에 ‘계약·촉탁사원으로 재고용하고 있다’는 응답이 36.8%였다. 3. 일본의 고용 시스템 혁신과 한국기업에 주는 시사점  1) 100세 정년 가능케 하는 일본의 고용 시스템 혁신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기업의 고령자 활용 필요성 및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기존 고용제도로는 기업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일본 사회에 확산되어 있다. 신규 대졸자의 일괄채용, 종신고용, 연공서열 임금제도 등을 골자로 한 일본식 고용시스템은 그동안 혁신을 거듭해 왔으나 아직도 많은 기업에 남아 있다. 또한 젊은 신규 직원의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기업으로서는 고령 근로자를 활용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한 과제다. 연금 및 의료보험제도가 붕괴되지 않도록 유지하고 재정적자를 감축하기 위해서도 ‘70세 현역사회’ 구축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신고용제나 연공서열제를 유지하면서 70세까지 고용을 연장할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은 65세까지 고용 연장에 주력하면서 60세 이상 고령자의 임금을 크게 삭감하는 재고용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직능급제도를 도입해 직책정년에 도달한 50대부터 자연스레 임금이 감소하도록 하는 제도를 활용해 왔다.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직책·직능에 급여를 지급한다는 개념으로, 직능급제도는 중요한 개혁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령자의 취업 의욕을 키우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국가적 과제다. 건강 상황 등을 고려하면 아직 현역으로 일을 할 수 있는데도 60~65세 이후 산업현장을 떠나는 근로자의 비중이 높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기준 65~69세 일본 남성의 잠재취업률(건강 상황 등 고려)은 86.2%에 달하는데, 실제 취업률은 52.5%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도 최근에는 고령 근로자의 근로의욕과 학습을 촉진하는 한편, 전체적인 보수 및 고용제도의 혁신을 모색하고 있다. 수시채용, 인력의 조기 신진대사, 호봉제 폐지 등을 통해 고령자와 젊은 층을 구별하지 않고 생산성에 맞게 보수를 주는 공통의 제도 정착을 꾀하고 있다. 채용, 승진, 고령자 재고용 기간 등의 전체 과정에서 근로자가 연령에 관계없이 서로 협력·경쟁하면서 마지막까지 생산성과 기술 향상에 주력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2)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과 과제  취업플랫폼 사람인의 여론조사에서 ‘정년 후에도 일하고 싶다’는 비율은 50대 이상(94.8%)에서 제일 높았지만 40대(89%), 30대(86%), 20대(78%) 등 모든 연령층이 정년 후에도 더 일하길 원했고 선호하는 은퇴 연령은 평균 72.5세였다. 퇴직 후 한국인의 주요 선택지 중 하나였던 자영업 사장님의 길도 점점 험난해지고 있다. 자영업은 망하거나 본인이 스스로 사업을 접기 전에는 은퇴가 없다는 게 최대 장점이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란 정책 리스크, 코로나19 사태라는 대형 천재지변을 겪으면서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도 정년제도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건설적인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 기업들도 가속화하는 디지털 혁신과 고령화에 대응하면서 전문 기술을 장기적으로 꾸준히 강화하기 위해 조직·인사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혁신할 필요가 있다. 생산성에 맞는 보수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가진 젊은 인재를 발탁하고, 외부에서 구하기 힘든 전문지식 및 기술을 장기적으로 축적할 수 있도록 조직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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