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직무를 해 보고 싶습니다. 저를 채용(활용)해 주십시오!”
기업에서의 인사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인사를 기본으로 한 컨설팅사를 운영하다 보니 자주 접하는 장면이다.
한편 “SPHR, PHR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인노무사 1차에 합격했습니다” 또는 “HR 관련 모임 회장을 했습니다”, “모 기업 HR 부서에서 인턴을 했습니다”라며 인사 관련 구체적인 스펙과 실무전문성을 어필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인사업무는 누가 수행하는 것이 좋을까?
겸손하게 이야기해서 인사업무는 노동법과 근무하는 회사의 인사규정을 학습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판단력과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면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인사는 전문성을 요하는 기술직과 비교해 볼 때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실제 이러한 인식으로 여전히 많은 기업이 인사의 최고 수장 자리에 관련 전문가를 외부에서 영입하기보다는 사내의 인품 좋은 사람을 활용한다.
그러나 인사는 기술적 요소 말고도 마케팅, 재무, 영업, 생산, IT 등 경영의 다른 분야와 비교했을 때 분명 무언가 다른 특성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에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인사업무를 하는 것을 보다 보면 ‘인사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일을 더 잘할 것 같은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인사의 구루라 불리는 데이브 얼리치(Dave Ulrich) 교수가 그의 저서 ‘HR Champions’라는 책에서 (미래) 인사담당자의 역할을 전략적 파트너, 행정 전문가, 직원 옹호자, 변화 주도자라고 주장한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이렇듯 인사업무의 특징, 그에 필요한 인사담당자의 역량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의 자료와 분석이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기업환경에서 오랜 기간 HR담당자로 근무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의 컨설팅을 하고 있는 필자의 시각으로 본다면 과연 어떠할까? 이하의 글에서는 필자가 직접 경험했던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경영에 있어서 인사업무는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그러한 특징에 맞는 인사담당자는 어떠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지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인사업무를 수행하려는 새내기들이나 우수한 인사담당자를 선발, 활용하고자 하는 경영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1.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가장 먼저 인사업무는 ‘사람’과 관련된 직무로 무엇보다 인사담당자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필자가 만난 인사담당자 중에는 ‘사람에 대한 관심’ 없이 인사업무를 수행하는 이들도 있긴 했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인사 분야에 대한 전문성으로 업무능력을 인정받는 경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인사업무보다는 좀 더 적합한 업무를 찾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 대한 관심’을 화두로 삼자니 필자가 만난 인사담당자 A가 떠오른다. A는 고성과를 지향하는 핵심인재급 인물로, 그는 특히 ‘숫자’로 나타나는 ‘가시적 성과’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다. 한번은 여러 회사의 인사담당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A가 “우리는 구조조정을 해도 시원하게 합니다. 한 번에 수백 명씩 화끈하게 자르죠~”라고 자랑하듯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대부분의 인사담당자 표정이 일시에 굳었으며, 후에 따로 몇몇 인사담당자와 얘기를 주고받기로 그 이야기에 많이들 불편했다고 토로했다. ‘구조조정을 당한 임직원들은 이 회사에 청춘을 바친 사람들일 텐데’,‘그들도 가정이 있고, 자녀들 학업지원, 주택 대출 등의 경제적 문제가 많았을 텐데’라는 비슷한 생각을 하며 이를 A가 인사담당자로서 고려하지 않음이 안타까워서였을 것이다.
인사담당자가 추진하는 인사상의 모든 정책, 규정은 모두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구성원 개개인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내가 수행하는 업무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의사결정을 좀 더 심사숙고해야 하고, 심지어는 부득이 원칙에 예외까지 둘 수도 있다. 특히 채용, 승진과 같이 그 결과(당락)가 개개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업무는 담당자가 충분히 긴장하고 임해야 한다.
필자가 처음 인사업무를 수행하며 상사로 모셨던 인사 임원 B는 회사 내 특정 인물에 대해 불쑥 물어보고 필자가 바로 답하지 못하면 실망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들의 입사경위, 또는 인사평가 내용은 인사정보시스템을 조회해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라고 이야기해도, 오랜 인사 경력을 가진 B는 “인사담당자라면 늘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기간 인사업무를 경험하고 또 지금의 내 나이가 그때 임원 B의 나이와 비슷해지다 보니 당시 그분이 왜 그런 말씀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2. 정답은 없으니 모범답안을 탐구해야 한다
과거 필자가 재직하던 회사의 HR 자문교수였던 C가 자주 하던 이야기이다. 인사업무를 하다 보면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결론이 나기보다는, 무엇을 선택해도 속 시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정답이 없을 때가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일단 인사는 그 시대의 사회·문화 트렌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과거에는 옳았던 판단이 현재에는 아닐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인사제도는 서울에서는 무용지물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는 인사제도라 할지라도 우리 회사의 여건과 맞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기본적으로 업태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조직문화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앞에서 언급한 ‘사람’ 마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정답인양 그냥 밀어붙이다 보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따라서 제도 실행에 있어 부분적인 변형이나 또는 기준과 원칙에 부득이 예외를 적용하는 등의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과거 미국 인사관리학회 SHRM에 참석해 미국의 인사담당자들과 대화를 할 일이 있었다. 당시 미국의 HR 전문가들은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사내의 전문가로 CFO(Chief Financial Officer : 최고 재무관리자)를 꼽았는데, (다소 과격하게 ‘그들은 빌런 - 악당’이라고 표현하며 분개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CFO는 인사업무를 이해하지 못하며 종종 HR이 명쾌하지 못하고, 두리뭉실하게 일 처리를 한다며 비난한다고 한다. 경영의 모든 영역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법률과 숫자에 의거, 명쾌하게 결론을 내는 것을 지향하는 재무의 시각에서 인사는 많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미국도 우리와 다르지 않는 듯하다. 필자 역시 당시 재무담당자들과 언쟁을 많이 했던 경험이 있어 웃으면서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재무는 재무의 역할이 있고, 인사는 인사업무의 입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사는 업무의 특성상 정답만을 고집할 수는 없어 모범답안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사담당자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진 못하더라도, 많은 고민을 통해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탐구해야 한다. 또한 그 결론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나 부작용 역시 충분한 시간을 충분히 갖고 보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3. 오래 할수록 묵은 맛이 난다
10년 전 기술이 지금은 무용지물이 되고 있듯 새로운 기술을 무장한 젊은 전문가들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IT 분야만 해도 코볼, C 등 오랜 기간 활용했던 프로그래밍 언어가 자바로 대체되는가 싶더니 지금은 파이선이 새롭게 부상한다. 젊었을 때 뛰어난 코딩 능력을 자랑했던 개발자도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들면 프로그래밍은 젊은 직원들에게 넘기고 팀을 이끄는 관리자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 제일 뜨거운 AI와 빅데이터 관련 기술은 과거 전산과를 졸업한 전문가들도 생소할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 해외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던 임원 D가 필자에게 한숨을 쉬면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제가 배우고 활용했던 마케팅은 MASS 마케팅으로, 그때는 TV 라디오 전단 광고가 중요했어요. 지금은 인터넷, SNS, 바이럴이 대세가 되어서 제가 가진 전문성을 전혀 활용할 수가 없네요. 인사는 그렇지 않아서 좋겠어요!”
D 임원의 말처럼 인사 분야는 오래 할수록 ‘내공’이 쌓이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인사는 경영 환경의 변화에 둔감해도 괜찮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사람’을 다루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급격한 변화가 많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실제 채용에서 퇴직으로 이어지는 인사 영역의 일련의 과정은 본질적으로는 과거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인사는 처음에는 규정과 인사상 실무업무의 전문성을 쌓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겠지만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기업문화, 사원대표기구(노조) 등에 대한 이해까지 덧붙여지며 인사상 판단력에 깊이가 더해져 가게 된다. 필자는 지금도 고객사의 다양한 계층들과 교류하는데 젊은 인사전문가분들도 대단하지만 고위직의 경험 많은 인사책임자분들에게서는 대단한 지혜와 경륜, 그에 따른 판단력에 감탄할 때가 많다.
4. 주인공이 되려고 하면 곤란하다
인사담당자는 회사에서 주인공이 되기 힘들다. IT 회사라면 개발자가, 제조사라면 생산부서가, 마케팅/광고 회사라면 마케터가 아무래도 주력이며 그 기업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보통 인사담당자는 그들을 고객으로 삼고 지원하는 위치에 있게 되며, 따라서 ‘스탭부서’라고 불리게 된다. 인사담당자들은 임직원들이 몰입해서 성과를 내도록 지원하고 조력하는 일을 주로 한다. 따라서 그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신속하고 친절하게 응대하는 서비스 마인드를 보유하면 매우 좋다. 그래서 과거 큰 대기업이나 공장 등에서는 인사담당자 자리 배치를 마치 은행의 창구처럼 기다랗게 직원들을 응대하도록 설계한 곳도 있었다. 내부 직원들을 상대로 사내규정, 급여, 복리후생 업무를 면대면으로 쉽게 상담 안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창의력과 기획력이 출중했던 인사담당자 E가 떠오른다. 의욕과 열정에 많았던 그는 새로운 인사제도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에 업무 비중을 크게 두었다. 물론 모두가 그의 능력과 열정을 인정했다. 그러나 인사제도의 대상은 E가 근무하는 회사의 임직원들이다. 매번 설명회를 하고, 간담회를 하고, 파일럿 테스트에 시범운영에 계속 동원되다 보니 직원들은 엄청난 피로도를 호소하고 말았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 E는 항상 자신이 주인공이고 싶어 했던 것이다.
필자가 고객사를 상대하다 간혹 E와 같은 열정적인 인사담당자들을 만나곤 하는데, 항상 농담 반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인사가 너무 부지런하면 직원들이 고생하니 적당히 쉬엄쉬엄하시라!”
상당히 뼈 있는 농담이라 할 수 있다.
5. 비교적 보수적이다
필자가 만난 뛰어난 인사담당자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서 보수는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라는 의미는 아니고, 변화와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고, 새로운 제도나 규정 도입 시 신중하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했던 열정적인 인사담당자 E와 같이 지나치게 개혁적인 마인드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다 보면, 임직원들이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인사담당자는 너무 발 빠르게 선진적인 제도를 도입하기보다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다른 회사의 성공 또는 실패 사례를 연구하고, 직원들이 충분히 적응할 시간과 여유를 두고 추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즉 빠른 제품 생산주기를 가져야 하는 연구 생산부서, 시장의 트렌드와 새로운 소통채널을 기민하게 반영해야 하는 마케팅 홍보부서와는 조금 다르다. 다시 말해 ‘속도’보다는 ‘안정성’, ‘적응성’을 우선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6.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라
인사업무는 제도나 방침을 기안해서 결재를 받으면 즉시 실행이 가능한 여타 부서의 업무와는 다르다. 아무래도 여러 계층의 이해관계를 직간접적으로 건드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의 이해와 공감이 무척 중요하다. 실제 이러한 과정을 등한시하게 되면 야심 차게 기획해 어렵게 경영진의 승인을 받은 제도라고 할지라도 노조나 노사협의회 등 사원대표기구의 반대로 무산되거나 축소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즉, 인사에서 추진하는 대부분의 과업은 현업 부서장들의 공감과 참여 없이는 효과를 보기 힘들다. 따라서 과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설명회는 기본이고, 아예 제도 수립단계에서부터 공감을 위한 워크숍과 교육, 의견수렴 및 참여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이럴 때 인사담당자가 여러 이해관계자와 평소 소통을 잘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아무래도 추진하는 전략과 정책이 그들의 지지를 받아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즉 인사업무는 그 내용이 아무리 선진적이고 합리적이고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어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으며,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인사담당자의 친화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인사담당자는 평소 구성원들과 신뢰를 구축하며 그들의 호감을 사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7. 인사담당자들은 경쟁자라기보다는 동업자들이다
경영을 하다 보면 경쟁사 동종 부서 또는 같은 분야 전문가들과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할 일이 많다. 제조업의 경우 신기술 특허전쟁이 비일비재하고, 마케팅 역시 정보전이 치열하다. 따라서 회사 간 보안이 매우 중요하며, 심각하게는 소송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인사제도와 정책은 서로 공유한다고 해도 그 회사의 업태 기업문화에 맞지 않으면 즉시 활용은 불가하다. 따라서 타 회사의 인사제도는 서로 왕성하게 교류를 해도 기업의 핵심 경쟁력엔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영향은 없다(물론 핵심인재 처우나 임금테이블 같은 민감한 정보 교류는 곤란하다).
따라서 각사의 인사전문가끼리는 비교적 부담 없이 서로의 전문성, 경험, 성공· 실패 사례 등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리하며 바람직하다. 필자의 경우도 과거 인사담당자로 재직 시 새로운 인사제도 도입에 앞서 늘 해당 제도를 먼저 도입, 실행한 기업의 인사담당자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물론 반대로 필자가 다른 회사의 담당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경우도 많았다. 컨설팅을 하고 있는 지금도 여러 국내외 회사들의 성공· 실패 사례들을 담당자들 간 적극적으로 교류하도록 하여 경영·인사 부문 발전에 미력이나마 이바지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지금까지 인사업무가 가진 고유의 특성, 그리고 인사담당자라면 갖추어야 할 역량에 대해서 나열해 보았다. 정리해 보면 ①실무전문성도 좋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 ②정답이 없더라도 모범답안을 찾아볼 것, ③길게 보고 끈기 있게 경력을 쌓아갈 것, ④남을 배려하고 겸손할 것, ⑤고객인 임직원들의 적응 속도에 보조를 맞출 것, ⑥구성원들과 신뢰를 구축하여 호감을 살 것, ⑦인사 동업자들과 협업할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모쪼록 본 내용이 인사업무를 수행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