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REPORT - 미국]
강력한 공감대를 만드는 스토리텔링은 마케팅뿐 아니라 모든 경영활동에서 그대로 빛을 발한다. 스토리의 주인공, 즉 인물이 누구인지도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의 키포인트가 될 것인데 이번 호에는 미국 언론사의 ‘올해의 인물’을 통해 새해 흐름을 점쳐보려 한다.
TIME 선정 ‘올해의 인물’ - 전시의 대통령으로 변신한 전직 배우
주지하듯 TIME은 미국의 주요 뉴스지 중 하나로 1923년 창립돼 지난해 100주년을 맞이한 주간지다. 특히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이 소개되는 연말 특별호는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는다. 올해의 인물 선정 기준은 한 해 동안 좋든 나쁘든 뉴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로, 그야말로 그 해 스토리의 주인공을 찾는 셈이다. 초기에는 히틀러나 스탈린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바 있다.
새 시대를 연 변곡점이 된 2022년 TIME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누구였을까? 바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그로 대표되는 ‘우크라이나의 투혼(The Spirit of Ukraine)’이다.
그렇다면 그가 주인공이 된 데는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올해의 인물 취재를 위해 우크라이나로 향한 TIME 기자는 인터뷰가 있기 직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탈환한 도시 헤르손으로 향하는 대통령과의 동행 길에 “러시아가 암살을 시도하고 경호원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는데 그는 왜 지금 그곳으로 가는가”라는 의문에 이러한 답을 적는다.
“정보전쟁은 젤렌스키의 전문 분야다. 푸틴이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도시로 들어감으로써 이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는 러시아의 선전론자들이 몇 달 동안 전쟁을 정당화하는데 써 온 정복과 제국주의라는 이야기에 흠집을 내는 것이다.”
TIME 편집장 역시 “이 이야기는…용기가 두려움만큼이나 쉽게 퍼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세계에 상기시켜 줬다”며 기억할만한 가장 선명하고 명쾌한 선정이었다고 언급했다.
젤렌스키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이 2023년 새 시대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혁신의 시대 주인공이 되려면 변신은 필수’라고 하겠다.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된 2019년 그가 지금과 같은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라고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영국의 BBC와 미국의 CNN을 포함한 주요 언론사들은 그의 당선을 보도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코미디언, 우크라이나 대통령 당선’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도 그럴 것이 41세에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까지 젤렌스키는 코미디언이자 그가 소유한 방송국에서 제작한 연속극 <국민의 일꾼>에서 역사교사 역을 맡았다.
정치경력도 없는 전직 코미디언이 대통령의 역할을 잘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곳곳에서 제기된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나라에서 이 젊고 전문성이 없는 대통령이 전 세계가 주목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젤렌스키가 전쟁 발발 초기 미국의 피신 제안을 거절하며 “피신할 수단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가 됐다. 전시 대통령으로의 변신과 용기도 물론이지만, 정보전 스킬을 십분 활용하며 우크라이나 투혼의 상징이 된 것은 젤렌스키가 보여준 새 시대 리더십의 모습이라고 본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선정된 올해의 인물(?)은 ‘우크라이나의 투혼’이다. 전쟁 직전까지 마케터로 일했던 한 여성의 글에서 러시아에 맞선 우크라이나인들의 절절한 투혼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이 막 발발한 지난해 2월말 필자의 링크드인에도 그의 포스팅이 게시됐다.
‘하루 만에 마케터에서 (화염병을 만드는) 바텐더로’라는 제목의 포스팅은 그야말로 마케팅 전문가의 스킬을 보여준다. 개발자가 군인으로, 택시 운전사가 긴급 구호인력으로 그리고 마케터가 화염병을 제조하며 러시아에 맞서고자 전선에 뛰어드는 변신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의 투혼이 2023년의 인사에 시사하는 점 역시 변신과 용기인 것이다.
‘올해의 영웅’ - 이란의 여성들
2022년 TIME은 올해의 인물에 더해 별도호로 이란의 여성들을 ‘올해의 영웅’으로 선정했다.
가족과 함께 여행하던 22세의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바로 쓰지 않고 있었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게 구속되고 의문사하면서 이를 계기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촉발됐다.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의 주역은 이란의 젊은 여성들이다.
보수적인 이슬람 정권의 강제 진압과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사형선고로 지금까지 4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상당수는 아직 미성년자인 10대 청소년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그야말로 ‘영웅’인 것이다.
이 역시 계묘년 새해의 흐름과 변화하는 트렌드, 새 시대의 ‘이야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관습에서 벗어나 히잡을 벗어던지고 머리를 자르는 변신,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는 젊은 – 또는 어린 - 이란 여성들의 용기에서 새 시대 영웅의 모습을 엿본다.
그렇다면 새 시대의 리더십은 젊은 세대만의 것일까? 아니다. 본인은 평생 히잡을 썼고 앞으로도 쓰려하지만 히잡을 벗어던지는 딸을 응원하고 어린 손녀만이라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란의 할머니 역시 이 시대의 리더이기에 ‘이란의 젊은 여성들’이 아니라 ‘이란의 여성들’이 올해의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새 시대의 이야기 그리고 계묘년 영웅이 되려면
2023년 계묘년은 검은 토끼의 해다. 전 세계적으로 설화들을 살펴보면 토끼 특히 검은 토끼는 변화와 혁신, 삶과 죽음의 순환인 부활의 상징이다. 부활절의 이스터 토끼는 물론이고,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서 토끼는 달로 상징되는 삶의 순환고리, 다산성과 죽음과 연관된 동물이다. 이집트 문명에서도 토끼 여신 웨넷은 부활, 재탄생, 죽음 후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영원한 삶을 상징했다.
한국의 달토끼 설화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중국 등 12지신을 이야기하는 나라에서 토끼는 4계절 중 봄에 해당되는 동물로 얼어붙은 땅을 깨고 나오는 새로운 삶을 상징한다. 팬데믹, 전쟁, 불황…어떤 어려운 환경도 헤쳐 나가는 변신과 부활을 꿈꾸기에 딱 맞는 해다.
2022년은 호황에서 불황으로 꺾이는 분기점이었다. 이런 반전 분위기를 아주 실질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빅테크들의 연이은 정리해고 움직임이다. 새해에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서 어떻게 ‘영웅’이 되는가, 즉 새 시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정도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지를 모색해야 한다. 환경이 이렇게 불안하면 사람이나 조직이 움츠러들고 몸을 더 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TIME의 올해의 인물과 올해의 영웅에서 읽은 새 시대의 이야기는 용기와 변신이다. 이에 더해 이런 환경에서 조직이 살아남고 성공하려면 리더 한사람만이 아닌 구성원 모두가 필요에 따라 이전에 해본 적이 없는 분야로도 역할을 바꿀 수 있고 이에 맞게 변신해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전시에 빛을 발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나 목숨을 위협하는 핍박 속에서도 영웅으로 떠오른 이란의 여성들처럼 조직 또한 성공으로 향해 나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계묘년, 혁신과 부활의 상징인 검은 토끼의 해, 용기 있는 변신으로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