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이트그룹 HR Consulting]
■ 직급체계 개편 배경
2017년부터 300명 미만 사업장에도 60세 정년이 적용되면서 많은 기업이 고령화와 함께 나타나는 ‘승진적체’ 이슈를 마주하고 있다. 승진적체는 본질적으로 사회 고령화보다 기업의 성장이 멈추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면 조직 규모가 커지고 인력을 보강하며 상위 직급자 수요도 늘어 승진적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경제적으로 저성장기에 진입하며 기업의 성장도 더뎌졌고 이로 인해 승진적체는 심화됐다.
승진적체로 급여 상승폭이 줄어듦에 따라 직원 사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젊은 주니어 인력의 채용이 줄다보니 연차가 높은 인력도 일반 실무자와 같은 마인드셋(Mind-set)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연차가 오른 인력들은 자연스럽게 매너리즘에 빠지고 젊었을 때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비율도 증가하게 된다. 결국 기업의 생산성은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슈와 문제점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기업이 선택한 대응방법이 직급체계 개편이다. 직급체계 개편은 크게 직급을 세분화하는 방법과 직급을 통폐합해 단순화하는 방법이 있는데, 최근 많은 기업의 개편은 대부분 직급 단순화에 치우쳐 있다. 기업들은 왜 직급 세분화보다 단순화를 택하는 것일까.
■ 직급체계 세분화의 장단점
우선 직급체계 세분화의 장단점을 살펴본다. 직급체계를 세분화하면 그만큼 승진 단계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승진심사 통과 인력들은 자부심과 성취감, 그리고 무엇보다 승진가급을 통해 임금이 높아진다. 그만큼 업무에 관한 동기부여도 커진다. 그럼 왜 기업들은 직급을 세분화하지 않는 것일까?
국내 기업의 일반적 승진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역량보다 더 크게 고려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연공서열적 연차다. 대부분 기업 문화에서는 냉정하게 직원 역량과 성과를 비교하기 보다는 누가 더 연차가 높은 선배인지가 중요한 고려 요소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같은 직급 내에서 연차가 높은 직원을 먼저 승진시켜 주려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상대고과 평가 제도를 대부분 채택하는 현실에서 승진을 목전에 둔 직원에게 상위고과를 몰아주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은 역량과 성과에 따른 경쟁보다 본인의 승진 순서가 오기를 기다린다. 승진을 통한 동기부여 메커니즘 작동이 반감되는 것이다. 우수 인력이 상위고과를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도 크게 줄어든다.
기업 입장에서 승진 단계가 많은 것은 대상자가 많아지고 인건비도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물론 승진가급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구성원의 동기부여가 떨어져 승진제도 취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 방법을 잘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승진율을 과거처럼 높게 유지하면 인력구조의 역피라미드화가 심화된다. 상당수 직원이 부장/차장 직위를 받지만 실제 업무는 대리/과장급과 똑같을 수밖에 없다.
■ 직급통폐합 B사 사례
위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기업이 대학졸업자 기준 직급을 2~3단계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B사도 이러한 배경 하에 기존 7직급 5직위체계를 2직급 2직위체계로 전환했다.([그림])
B사도 승진적체가 심해짐에 따라 과거보다 구성원들의 승진 시기가 늦춰지고 설사 승진해도 상위직급 초임 임금을 받는 구조가 됐다. 승진하고도 임금 상승폭이 반감되는 이슈도 있었다. 승진적체가 심해지니 구성원들은 오히려 직급 통폐합을 선호하고 차라리 성과주의 체계를 도입해 역량과 성과에 따라 임금인상 폭이 높아지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직급을 2단계로 과감하게 축소한 배경은 첫째, B사의 경우 조직 규모가 약 1천명이라 팀별 인원규모가 많지 않고 팀원들의 수행 역할이 팀장을 제외하면 시니어와 주니어로 구분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둘째로 직원들의 성장학습 곡선을 봤을 때 재직 10년이 넘으면 경험의 차이는 있어도, 지식의 차이는 크지 않다는 판단, 셋째 대리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으면 승진시키고, 과장부터 엄격하게 인력을 필터링해야 한다는 의견, 넷째 차장부터는 이미 승진적체가 심해 과장~부장까지는 직급을 통폐합해도 직원들의 수용성이 높다는 이유 등이었다. 이 때문에 3단계 구분보다는 2단계 구분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모였다.
아울러 직급을 통폐합하면서, 과거 승진적체 때문에 대리/과장 등 직위를 사회적 통념보다 오랜 기간 사용하는 것 보다는 한국사회에서 많이 채택하는 책임, 선임 등의 호칭을 구성원들이 선호해 여러 호칭 옵션 중 하나로 선택하게 됐다. 내부적으로는 책임 매니저, 선임 매니저 등 직위를 나타내는 것 보다는 상호 존중하는 상징적 문화 정책을 위해 ‘매니저’라는 호칭으로 통일해 사용했다.
물론 직위/호칭에는 개인적 선호가 있기에 갑론을박이 많았다. 특히 나이 많은 고참이나 임원은 직원들을 ‘매니저’로 부르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HR에서는 부르고 싶은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부름을 받는 직원의 입장에서 선호하는 호칭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결국 ‘매니저’라는 호칭을 채택했다.
B사 직급을 2단계로 통폐합해 단순화한 후 과거 과장/부장급 내에서는 승진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결국 연공서열에 의한 연차에 관계없이 개인의 역량과 성과에 따라 평가를 하는 구조적 환경이 조성됐다. 즉 평가 정보의 신뢰성이 과거보다 개선됐고, 이것은 다시 개인성과 차등에 따른 임금인상률 차등의 정당한 근거가 됐다. 직급체계 개편으로 평가의 타당성과 신뢰성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상당부분 개선 효과는 있었다.
■ 직급과 별개 역량등급제 운영
B사는 직급은 2단계로 통합하되, 개인의 처우와 관계없이 절대평가로 인력들의 역량등급을 구분해 해당 인력이 어느 정도의 경험과 역량이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경력개발 및 인력배치 참고 정보로 활용했다. 아울러 인력의 역량등급이 파악되니, 결국 기능별 조직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간접적으로 파악하게 된 것도 부수적인 효과를 얻게 돼 중장기 인력계획 수립에 도움이 됐다.
■ 직급체계 개편방향은 상황에 따라 접근
결론적으로 직급체계 개편과 방향성은 사회경제적 배경 하에 큰 흐름은 있으나, 기업들이 처한 상황 또한 조금씩 다르다. 때문에 각 기업들은 ▲상황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하고 ▲직급을 세분화하는 것이 좋을지 통폐합하는 것이 좋을지 ▲통폐합하면 몇 단계로 해야 할지는 따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직급체계 개편은 단순히 직급/승진의 이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평가와 보상, 경력개발, 인력계획 등 인사의 많은 다른 분야와 함께 얽혀 있어 ‘휴리스틱(Heuristic)’한 접근이 아니라 ‘홀리스틱(Holistic)’한 접근방법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글 _ 정현각 인싸이트그룹 부사장 /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