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REPORT - 일본]

일본의 정년 후 재고용과 임금 문제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난 7월 20일 자동차학교에서 운전교습 지도사로 일하는 아오야마 하루히코씨(70세)가 제기한 ‘정년 후 재고용 시 기본급 삭감 관련 소송’에 대해 원심을 깨고 고등재판소에 재심명령을 내렸다. 기본급의 성질과 지급 목적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오야마씨는 60세 정년까지 근무한 뒤 촉탁직원으로 재고용 돼 이전과 같은 일을 계속했음에도 기본급이 대폭 감액돼 소송을 제기했다. 아오야마씨가 정년퇴직 당시에 받았던 기본급은 16~18만엔 수준이었으나 정년 후 재고용이라는 이유로 7~8만엔 수준으로, 1심과 2심에서는 정년 시 기본급 수준의 60% 미달부분이 불합리하다 하여 차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에 쌍방이 모두 불복, 상고했는데 그 결과가 최종적으로 나온 것이다. 이번 최종 판결에는 정년 후 재고용자 또는 정년 후 재취직자를 대상으로 급여를 보전하는 ‘高年齢雇用継続基本給付金’ 제도가 근거로 작용했다. 이 제도는 60세 이상 65세 미만인 자가 급여 수준이 60세를 기준으로 전보다 75% 미만일 때 급여를 최대 15%까지 보전해주고 있다.

일본의 정년제도 대부분의 일본기업이 정년제도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오해하기 쉬우나, 일본에서 정년제도는 법적으로 기업이 도입해야 할 필수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이다. 정년제도 관련 법조항은 기업이 정년제도를 도입하기로 했을 경우 지켜야 할 원칙 정도에 불과하다. 2013년에 시행된 ‘고령자 고용 안정법’의 개정 내용에 따르면, 정년연령을 65세 미만으로 정하고 있는 사업주는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거나 65세까지 ‘계속 고용제도’를 도입하거나 정년제를 폐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계속 고용제도’란 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고령자에 대하여 본인이 희망하면 정년 후에도 계속 고용하는 재고용 제도를 말하는데 2013년 이전에는 노사협정으로 그 대상자를 한정할 수 있었으나, 희망자 전원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으로 바뀌었다. 일본에 정년제도가 도입이 된 것은 메이지 시대 이후이며,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착이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55세 정년제도가 유지됐는데, 바로 그 55세 정년제도의 기원이 일본이다. 메이지 시대의 해군 퇴직 관련 조치(海軍退隠令, 1875년)와 연계된 법(官吏恩給法, 1890년)에 따르면 만 15년 이상 재직 후 60세를 넘길 경우 퇴직을 해서 퇴직연금(終身退隠料)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연금수급권 발생후 퇴직이라 할 수 있겠는데, 1896년의 해군조례에는 채용의 상한 연령이 45세, 그리고 55세가 업무종료 시점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55세는 당시 평균적으로 20대의 남은 수명이 40년을 넘지 않았을 시대의 숫자라고 한다. 즉, 평균수명이 60세라는 것을 전제로 55세에는 그동안 해오던 일을 접고, 남은 5년 동안은 일에 치이지 말고 살다 가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일본에서 연령에 의한 ‘강제 퇴직제도’라는 의미에서의 정년제도가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것은 1930년대 이후라고 한다.  일본은 평균 수명의 상승(1950년 기준 남성 58세, 여성 61세에서 1970년 남성 69세, 여성 74세로 상승) 및 총 노동력인구 감소를 이유로 1980년대에 정년 연령을 60세로 올리도록 노력할 것을 의무화했다. 또한 1990년에는 ‘정년 후 재고용 제도’를 의무화하고, 1998년에 60세 정년을 법제화했다. 2000년에는 65세까지의 고용확보 조치 노력을 의무화했고, 2006년에 이르러서는 65세까지의 고용확보 조치를 의무화했으며, 2013년에는 희망자 전원에 대한 65세까지의 계속고용을 의무화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4월에 개정된 ‘고령자 고용 안정법’에서는 70세까지 취업기회를 제공하는 노력을 의무화한 바 있다.

정년 및 정년후 재고용 관련 일본기업의 대응 총무성의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취업자 중에서 60세 이상 비율이 21.6%로 과거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 및 외국인 노동력 유입대책 미비로 인해 만성적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기업의 입장에서 시니어 인재의 활용은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정년 후에도 일에 대한 의욕과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고령자들의 선택이기도 하다. 다만 서두에 소개한 재판결과에서 보듯이 정년 후 재고용의 경우 결과적으로 정년 전과 같은 일을 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급여수준이 하락하는 경우가 많아 인재유출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임금제도 자체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7월 20일 자 TV도쿄 뉴스에 따르면 교토시 소재 TOWA(반도체 제조장치 회사)에서는 정년 후에 재고용 된 사원의 경우 과거에는 급여수준이 정년 이전의 50~70% 수준이었으나, 2022년 3월부터는 같은 일이라면 급여수준을 동일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임금제도를 개정했다고 한다. 재고용자를 대상으로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인사평가도 실시해 평가를 잘 받으면 정사원과 마찬가지로 급여도 올라가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도 한다. 동사 인사담당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는 기술계 직종의 경우 7배에서 10배 정도의 구인배율이라는 시대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이며, 이미 사내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원들이 동 제도를 통해 더 오래 활약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정년 후 재고용은 인재부족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숙련 기술자의 지식이나 스킬이 젊은 사원들에게 이전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코스트가 아니라 중요한 경영판단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 제도로 바뀌고 나서 정년 대상자의 약 90%가 재고용 돼 활약 중이라고 한다. 일본처럼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임금제도 하에서는 정년을 연장하거나 퇴직 전과 같은 임금수준으로 정년 후 재고용을 유지하는 조치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더 가중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고령자들이 아날로그 시대에 축적했던 지식이나 기능의 진부화가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령자의 경험을 높게 살 이유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할 IT 관련 기업의 경우 디지털화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은 고령자 인력을 우대할 경우 즉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사원들의 모티베이션(motivation)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근 일본에서도 리스킬링 붐이 일어나는 등 고령화 인력들의 재교육 및 IT 적응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는 있으나 어려서부터 디지털 세상과 함께 살아온 젊은이들과 같은 수준의 디지털 리테라시를 갖추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장애요인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일본이 범세계적으로 ‘Japan as No.1’이라 일컬어지며 잘 나가다가 버블이 꺼지며 고꾸라지기 시작하던 1990년대에 상당수의 일본 기업들이 ‘세컨드 커리어 연수’ 또는 ‘40대 연수’라는 이름으로 당시로서는 꽤 특이한 교육훈련을 실시한 적이 있다. 진짜 목적은 조기 희망퇴직을 장려하려는 것이었겠지만, 명목상으로는 제2의 인생설계를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지지하는 어느 글에서 정년제도 자체가 사원들에게 찾아올 수도 있는 새로운 기회를 차단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보고 꽤 솔깃했던 기억이 있다. 인간은 어떤 계기가 없을 경우 좀처럼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인간’으로서의 커리어 중기에 해당하는 40대쯤에 충격적인 연수기회를 통해 한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는 설명에 자신도 모르게 설득당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중에서도 IMF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임원이 되기 전단계인 부장급을 대상으로 (연령상으로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자아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비슷한 교육과정을 운영한 사례가 있다.

맺음말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수명에 대한 고려 없이 55세 정년제도를 계속 유지하다가 2013년에야 비로소 60세로의 정년연장이 법제화됐다. 일본이 자국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것에 맞춰서 정년제도를 개정해 오는 동안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정년제에 의한 고령 노동력의 강제적 배제를 이용해 종업원들의 평균연령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만 그런 지는 모르겠으나, 직업의 귀천을 그다지 따지지 않는 것 같은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대기업 및 특정 직업에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어서 젊은이들의 구조적 및 마찰적 실업이 많고, 고령자가 일하는 모습을 그리 좋게 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는 관계로 정년 후 재고용 제도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 우선은 늘어나는 평균수명을 고려한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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