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없는 조직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나를 관리하는 팀장이나 상사는 없다. 내가 할 일은 스스로 정한다. 손발이 맞는 동료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무실 어디든 내가 원하는 공간에 자리잡고 일할 수 있다. 상상 속 일터가 아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하프라이프 등 유명 게임을 개발한 발브 코퍼레이션의 실제 모습이다. 발브는 극단적 자율 조직을 추구한다. 가능한 많은 권한을 구성원에게 위임하는 것이 조직 운영의 핵심이다. 관리자가 없기 때문에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를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누구나 업무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개별 직원 또는 몇몇 직원의 열정이나 공동 관심사에서 비롯된다. 프로젝트 추진이 결정되면 함께 일할 팀원을 모집하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팀에 합류한다. 그리고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또 다른 프로젝트로 이동한다. 관리자가 없다고 성과관리에 문제될 건 없다. 발브에서는 전통적인 상사-부하직원 관계가 존재하지 않기에 동료 평가를 운영한다. 함께 일한 구성원이 서로의 업무 기여도를 리뷰하는 방식이다. 평가 퍼실리테이터 제도도 함께 운영하는데, 평가 퍼실리테이터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동료와의 협업 경험을 파악한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모든 직원은 자신의 업무 성과와 협업 태도를 피드백 받는다.

플랫 조직이란? 우리는 조직 형태를 말할 때 흔히 피라미드 구조를 가정한다. 전형적인 다단계 조직이다. 조직 내 계층이 엄격히 나뉘고 모든 권한은 상부에서 하부로 흐른다. 피라미드 정점에는 최고 경영자(CEO)가 위치한다. 바로 아래에는 CFO, COO, 사업 본부장 등의 고위 리더십이 자리하고, 그 아래로는 중간급 리더가 하위 팀을 관리한다. 각 포지션은 바로 위의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그 관리자는 다시 자신의 상사에게 보고한다. 이런 식의 조직 구조에서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 충실히 일하는 게 미덕이다. 조직 박스를 벗어나는 행동은 역할과 책임을 넘어선 일로 바라본다. 위계 조직은 중앙집권적이고 표준화된 관리, 통제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발브가 운영하는 조직 모습은 위계 조직의 반대편에 서 있다. 최고위 리더와 직원 사이에 중간 관리층은 거의, 또는 전혀 없다. 모든 조직의 박스는 최고 리더 아래에 나란히 배열된다. 어떤 개인이나 그룹도 다른 개인이나 그룹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 않다. 결국, 조직도는 가로로 넓게 펴진 평평한 모양이 그려진다. 이름하여, ‘플랫 조직’. 말 그대로 수평적 조직의 전형이다. 플랫 조직에 흐르는 핵심 철학은 분권화와 자율이다. 조직도상에 거쳐야 할 계층이 적기 때문에 정보의 병목을 피할 수 있다. 아이디어가 막힘없이 흐르고 의사결정이 신속해진다. 각 조직에서 발빠르게 실험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자율권을 가진다. 직원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해 선택권을 가진다.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데 이는 높은 업무 몰입으로 이어진다. 구성원들은 자신의 일에 오너십과 자율성을 가지기에 더욱 동기부여된다. 대기업에서도 플랫 조직은 유효할까? 작은 조직에서는 모두가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활발히 의사소통하는데 무리가 없다. 정보는 자유롭게 흐르고 사람들은 직책에 관계없이 의견을 공유한다. 그런데 조직은 성장하기 마련이다. 피자 두 판으로는 한끼 식사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팀원 수가 늘어나고, 프로젝트는 한 국가를 넘어 대륙을 넘나드는 순간으로 접어든다. 이내 순수하게 플랫 조직을 고수하는 것은 한계를 드러낸다.  조직과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커뮤니케이션, 권한 위임, 협업 등을 이전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만만치 않다. 이해관계자가 늘어나니 의견 일치에 도달하기 위한 끝없는 순환 대화에 빠지기 일쑤다. 소모적인 소통, 회의, 이메일로 민첩함을 잃어간다. 경영진 역시 업무 최전선과의 밀접한 접촉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어떠한 문제가 위기 상태에 도달해서야 그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적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하향식 개입으로 문제를 빠르게 처리하려드니, 조직의 창의성은 급격히 떨어져 버린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기업은 플랫 조직을 꿈꾼다. 스타트업은 물론, 내로라하는 여러 국내 대기업에서 수평적 조직 만들기를 핵심 경영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수평적 조직의 장점은 확실하다. 권한위임과 자율을 토대로 민첩하게 움직인다. 다만, 커져버린 조직 규모를 순수한 플랫 조직 방식만으로 온전히 감당해 낼지 의문이다. 훌쩍 자란 아이에게는 그에 맞는 옷이 필요하다. 몸집이 커졌다고 해서 다단계 조직만이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위계와 수평 간의 균형, 즉 ‘구조적 플랫함’을 찾아야 한다.

구조적 플랫함 구축하기

1) 명확한 가드레일, 넷플릭스 ’규칙 없음‘ 우리는 자유를 얘기할 때 방종을 우려한다. 직원을 믿고 권한을 주었지만 종종 도를 넘어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자유와 방종 간의 균형을 찾으려면 조직에서 허용하는 가드레일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 1만 3천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방대한 조직이다. 그런데 이렇게 큰 조직을 운영하면서도 통제보다는 자율을 우선하는 조직 운영을 펼친다. 비결은 명확한 가드레일이다. 여러 층의 위계 조직이나 엄격한 규정 대신 심플 룰을 사용한다. 이름하여 ’규칙 없음‘ 정책(’No Rules‘ Rules)이다. 쓸데없는 규칙으로 직원을 통제하기보다는, 회사에 이로운 방향인지를 구성원 스스로 판단해 자율적으로 일하도록 한다.  ’규칙 없음‘의 대표적 예로, 넷플릭스에서는 휴가 규정이 없다. 연간 사용할 수 있는 휴가 일수에 제한이 없으며, 휴가를 사용할 때 관리자 승인을 받을 필요도 없다. 구성원 스스로 판단해 언제든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다. 이러한 자율성은 직원에게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회사 경비를 사용할 때도 별도 승인 프로세스가 없다. ‘자신의 돈을 쓰듯이 쓰라’는 간략한 규칙을 제시할 뿐이다. 이러한 접근은 직원에게 큰 자유를 주지만, 동시에 회사의 자원을 책임감 있게 관리할 것을 기대한다. 이러한 규칙 없음 정책은 넷플릭스에 스타트업 못지않은 민첩성을 가져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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