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오래전 일이기는 하나 2005년 미국의 저명한 비즈니스 잡지인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에 “Why we hate HR?”이라는 매우 자극적인 제목을 표지로 한 기사가 발표되었다. 심술궂어 보이는 어린 소녀가 가련한 표정의 인형을 거꾸로 쥐고 이리저리 흔드는 듯한 모습의 표지 그림은 HR과 직원의 관계로 대비되어 발표되자마자 많은 사람 (특히 인사 담당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기사를 작성한 사람은 키스 해몬즈(Keith Hammonds)라는 당시 잡지의 편집장으로 기사의 주요 내용은 경영환경은 지식경제로 한창 이전하고 있는 데 반해 인사담당자들은 여전히 과거의 인사운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즉 HR 담당자들은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너무 효율성만을 중시하다 보니 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종종 망각하며, 직원 및 경영진으로부터 HR의 가치를 증명받지 못한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HRBP는 조직이 사업수행에 적합한 인적역량을 보유할 수 있도록 채용, 평가, 보상, 인력운영, 조직개발 등의 영역에서 인사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사업경영에 대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경영진을 전략적으로 보좌하고 실행해서 인재에 대한 투자 대비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HRBP라는 개념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 후반으로 패스트 컴퍼니에 실린 기사의 시점과 맞닿아 있는데, 해당 기사의 취지가 인사기능을 폄하하는 목적보다는 인사기능의 새로운 역할 즉 운영자의 관점이 아니라 비즈니스 동반자로서의 HRBP의 등장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현재의 경영환경과 HRBP 필요성 국내 기업의 경우 최근까지 HRBP의 도입률이 외국계 기업에 비해 활발한 편은 아니었다. 즉 상당수의 국내 기업이 최근까지도 인사 기능을 중앙에서 관리하고 사업부에는 제한된 인사운영 (예: 채용 진행, 평가제도 운영, 발령 조치 등) 정도의 기능만을 허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즉 운영모델이다. HRBP 도입이 외국에 비해 더딘 이유는 공채로 채용을 진행하고, 보상/처우의 사업부별 차별적 운영은 자칫 노조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HRBP를 사업부 혹은 기능조직별로 운영하는 부분에 대해서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우리 기업의 의사결정 관행이 소수의 최고 경영진에게 몰려 있고 탑다운으로 의사결정이 되는 현실에서 HR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약사항을 가지고 있는 중에 구성원들에 대한 인사적 니즈를 차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현장중심 HR의 필요성이 급격히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모든 일상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현실에서 세대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구성원들의 다양한 니즈에 인사에서 HRBP 운영을 통해 좀더 차별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아울러 상사의 갑질, 직장 내 성희롱과 같은 다양한 인사적 문제가 대두되는 현실에서 담당 HRBP가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현장밀착형 인사는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 우선적 요인이 되고 있다. HRIS 및 HR Analytics의 도입으로 인사팀의 업무에 있어서도 변화가 생긴 부분도 HRBP 체제 운영에 청신호를 주고 있다. 즉 급여계산이나 평가/채용 운영 등 인사담당자가 손에서 놓지 못하던 운영성 업무들은 Shared service로의 이전이나 시스템(HRIS, Robotics Process Automation:RPA) 도입 등을 통한 자동화로 바뀌어 지면서 기존의 HR인력을 활용하는 데 여유가 생긴 부분도 간과할 수 없는 포인트이다. 또한 다양한 HR 지표들이 회사내 데이터베이스로 쌓이면서 이를 어떻게 고부가가치 지식으로 활용할 것인가가 기업의 새로운 경쟁력이 되는 마당에 HRBP의 활용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을 발하고 있다.
HRBP와 기존의 인사역할과의 차이 HRBP는 기존의 인사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다소 다르게 운영되므로 HRBP로서 갖추어야 하는 역량도 기존의 인사역할과 구분되고 있다. ([표 1] 참고) 가장 큰 차이는 HRBP는 사업부에 배치되어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즉 전사를 대상으로 인사의 특정 업무(예: 보상, 복리후생, 채용 등)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 조직에 파견되어 해당조직을 위해 인사의 전반을 운영하는 소위 “미니 CHRO”의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본인이 속한 사업부의 총괄임원과 CHRO 양쪽을 상위 매니저로 두게 되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결이 다른 두 명의 시어머니를 두는 구조이므로 이해관계자를 잘 다루는 역량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가 1차 보고자인가에 따라 사업부의 입김이 셀지, 인사부서의 입김이 셀지 결정이 되기도 하지만 사업부의 관점과 인사의 관점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가면서 인사정책을 펼쳐 나가는 경험은 미래의 CHRO 후보뿐만 아니라 CEO 후보자로서 매우 유용한 커리어 경험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로 HRBP가 기존의 인사역할과 다른 점은 위에서 내린 지시사항을 그대로 실행하는 역할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이슈를 파악하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유용한 어드바이스와 컨설팅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즉 직급에 의해 지시를 하는 사람과 지시를 받는 역할을 구분하는 대신, 본인이 속한 조직을 가장 낮은 계층부터 높은 곳까지 속속히 파악하면서 인사적 관점에서 투자가 필요한 영역, 리스크로 판단되는 영역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이에 대한 솔루션을 고민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필자가 관찰한 HRBP 기능이 잘 정착된 외국계 기업의 경우 주요직무에 대한 채용 시 HRBP가 반드시 인터뷰를 진행하고, 우수 인재가 특정 조직 내에서만 머물게 되어 성장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사업부 임원 및 본사의 최고 경영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다. 우리 사업조직에 적합한 인재를 어느 풀에서 확보할 것인가, 현재 보유한 고용주로서의 브랜딩은 적합한가, 재직중인 구성원들을 어떻게 동기부여하고 생산성을 올릴 것인가, 현재의 인건비는 적정한가 등과 같은 경영진의 고민에 대해서 인사적인 전문성을 가지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적 지식, 회사의 전략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세 번째로 기획과 실행을 동시에 담당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외부에서 고용한 HR 컨설턴트는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지만 운영은 내부 인사부서의 몫이 된다. 내부 인사부서는 운영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업부서 간의 차이를 반영하거나 환경의 변화에 따른 제도의 유지보수를 하는 데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HRBP는 사업부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사적인 변화가 있으면 이를 과감히 실행에 옮기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를 위해서는 본인의 안전지대(comfort zone)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어느 정도 계산된 범위 내에서 리스크를 부담할 수 있는 담력을 가져야 한다. 즉 높은 사고력과 실행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HRBP의 업무가 너무 운영적이고 실행에 치우쳐서 HRBP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HR 스태프를 산하에 배치하는 경우도 규모가 큰 조직일수록 자주 관찰되고 있다.
어떻게 HRBP를 육성할 것인가? HRBP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공감한다 하더라도 실행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일차적으로 기존의 인사부서 인력 중 즉시 HRBP의 역할을 수행할만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인사 출신의 인력을 HRBP로 전환 배치할 경우 직무명만 바꾸지 말고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마인드셋이 바뀌고 필요한 스킬을 다져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표 2] HRBP 육성과정 프로그램 참고) 비 인사출신의 인력을 HRBP로 육성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이 또한 단기간 내에 HR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갖추기가 쉬운 여정은 아니다. 단기간에 HRBP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국내에 있는 외국계 기업에서 HRBP 경력이 있는 경력자나 컨설팅 출신 인력을 채용하는 경우도 고려해 볼만하다. 우리 기업들도 HR 기능을 운영과 기획, 노무 등으로 나누고 HRBP와 유사한 개념의 사업부 HR을 배치하여 외국계 기업들의 HR 체계와 유사한 구조와 기능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CHRO가 되기 위해 과거에는 노무관리나 인사 주재원, 인사기획의 경험을 중요시했다면 앞으로는 HRBP 역할 수행경험을 통해 사업과 전략을 이해하고 사업 파트너로서 구체적인 임팩트를 만들어 나가는 사례가 더욱 중요시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