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소환한 HR 역할, 지금은 HRBP 시대
: 이미 도래한 미래로의 전환
현실과 다르게 인재개발의 가치는 역사상 최고점 글로벌 혁신 기업에서 인재개발의 주체는 매니저다. 과거 연수기관에서 HRD(Human Resource Development)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던 인재개발 활동들이 이제는 업무 현장에서 매니저에 의해 직접 실행된다. 매니저 코칭, 소그룹 퍼실리테이션, 성과 피드백, 구성원 인정 프로그램 등과 같은 직무역량과 관련된 주요 인터벤션들이 이제는 매니저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며, 그들의 실행력에 인재개발의 효과성이 좌우된다. 미국 대학의 학위 과정 명칭 변화에서도 이러한 경향성이 반영되고 있다. HRD 전문가 양성을 주된 교육 목표로 했던 인재개발 석사 과정명에서 HRD가 점차 빠지고 ‘Organization’, ‘Leadership’, ‘Change’와 같은 단어들이 포함되고 있다. 이는 경영전문대학원(MBA) 프로그램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단위 조직 내 인재개발을 위한 리더십 및 소프트 스킬 향상에 대한 매니저들의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HRD 전문가 협회인 ATD(Association of Talent Development)는 더 이상 HRD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Talent Development를 기반으로 교육훈련을 포함한 다양한 인재개발 관련 인터벤션을 포괄하려고 한다. HRD라는 용어는 대중적으로도 확실히 자리잡지 못했고, HR의 하부 기능으로서의 Training and Development(T&D) 또는 같은 의미지만 유럽에서는 Learning and Development(L&D)가 일반에서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언어는 현실을 반영한다. 교육훈련, 조직개발, 경력개발 영역에서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내었던 HRD 조직은 미국 주요 기업에서 사라지고 있다. GE 크로톤빌 같은 HRD 전문성을 대표하던 주요 기업들의 사내 대학들은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소멸했다. HRM과의 헤게모니 경쟁에서 강조되던 선행적이고 포괄적인 HRD의 접근에 대한 요구는 자취를 감췄다. 결국, 많은 HRD 부서가 짧았던 영광의 시대를 뒤로하고 과거의 교육훈련 부서로 되돌아갔다. 반드시 운영해야만 하는 필수교육에 한정되는 HRD의 축소된 역할을 준수 훈련(Compliance training)이라고 부르며, 더 부정적으로는 주변부 훈련(Marginalized training)이라고도 표현한다. 이는 HRD가 더 이상 전략적인 도구로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필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순 서비스 제공자로 전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기술 혁신의 시대는 인재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전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인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반도체 기술의 미래는 뛰어난 인재들이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율적인 조직문화에 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사업의 성공을 견인할 수 있는 핵심 인력들과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혁신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소속 기업을 인수해버리는 ‘인재인수’(Acquihiring)가 빈번하다. 조직 효과성 향상을 위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요구, 피플 애널리틱스 같은 새로운 분석 방법론들이 도입되는 등 기업 경영에서 인재개발의 가치는 역사상 최고점에 도달했으며, 계속해서 급상승하고 있다.
HRD 현실과 이상의 괴리, 원인은? 그렇다면 HRD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기업의 최고 경영진은 불확실성 속에서의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 특정 원인이 의도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논리 구조를 필요로 한다. 이를 ‘원인-결과에 대한 믿음(Cause-effect belief)’이라고 부른다. 즉, 최고 경영진은 인재개발에 대한 투자가 사업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조직 성과를 향상시킬 것이라는 명확한 매커니즘을 요구한다. 그러나 HRD는 최고 경영진에게 원인-결과에 대한 믿음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해왔다. 결국, 전략적 인재개발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을 갖춘 HRBP(HR Business Partner)라는 조직 혹은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HRBP는 경영 전략의 수립 과정의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인적자본의 투자 대비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HR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구성원들의 일상 업무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 현장의 매니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미국 주요 기업에서는 혁신적인 인재개발 활동을 전개하는 소수의 HRBP관점에서의 HRD와, 준수 훈련만을 담당하는 주변부 HRD로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HR 및 채용 관련 대표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링크드인에 게시된 미국 기업의 HRD 관련 채용 공고를 분석한 권기범과 윤승원의 최신 연구는 HRBP 관점에서 HRD가 수행해야 하는 핵심 활동으로 전략적 인재 계획(Strategic talent development), 피플 애널리틱스(People analytics), 성과 컨설팅(Performance consulting), 학습 솔루션 개발(Learning solution development)을 제안했다. 또한, 채용 공고의 직무 기술서를 텍스트 분석하여 네 가지 핵심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현업에서의 중요 행동(On-the-job behaviors)이 도출되었다. 전략적 인재 계획의 중요 행동은 최고 경영진 회의에 당연직으로 참석해 인재개발 관련 이슈를 정기적으로, 그리고 인적자본 관련 이슈 대응 필요 시 수시로 보고하는 것이다. 피플 애널리틱스는 인재개발 관련 핵심성과지표(KPI)를 최고 경영진의 성과 평가 항목으로 정기 모니터링하고, 이를 인재개발을 위한 전사적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활용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성과 컨설팅은 사업 목표 달성과 직결된 주요 조직의 경영진과 협력하여 직원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이를 저해하는 Pain Points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학습 솔루션 개발에서는 구성원들의 학습과 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는 솔루션에 대한 에듀 테크 에반젤리스트로 조직 내에서 인식되며, 구성원들의 스킬 개발을 위해 적시에 솔루션을 적용하고 업무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HRBP에게 요구되는 중요 행동 HRBP관점에서는 전통적인 교수체계설계나 교육평가 레벨 5 모델 같은 학술지식을 기반으로 한 행동이 필수 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HRBP에게 요구되는 중요 행동은 기존 HRD의 행동 양식과 어떻게 다른가?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SAP의 CTO(Chief Talent Officer)였던 제니 디어본은 HRBP관점 HRD의 차별적인 특징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HRBP는 최고 경영진과 사업상의 Pain Points를 공유하며 이를 함께 해결하려고 한다. 최고 경영진에게 사업상의 어려움이 있을 때 그 고통을 나누고 힘을 보태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사업은 사업대로 두고, 자신은 주변부에서 준수 훈련 프로그램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둘째, HRBP는 최고 경영진의 영향력을 직접 그리고 공개적으로 위임받는다. 인재개발과 관련한 이슈에 대해서, 최고 경영진은 “내게 묻지 말고 HRBP에게 문의하라”며 HRBP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는 최고 경영진이 HRBP의 전략에 대한 확고한 원인-결과 믿음 그리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HRBP의 실행 역량에 신뢰가 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HRBP는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공중 지원(Air cover)을 제공받는다. 마치 전장에서 지상군이 진격할 때 공중 지원이 없으면 백병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최고 경영진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HRBP가 현장의 매니저들과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 이는 HRBP의 성공에 결정적인 요소로, 조직 내 전략적인 포지셔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