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법정. 원고와 피고 사이에 설전이 오간다. 대체 누가 어떤 ‘사건(내용)’을 두고 벌이는 갑론을박일까?
| A. “당일 통보는 이의신청 권리를 행할 수 없어 잔혹하고 위헌이다.” B. “사전 통보는 심적 안정을 해친다. 애당초 통보 받을 권리도 없다.” A. “과거엔 사전 통보함으로써 심적 안정을 꾀했다.” B. “전날 통보해 자살한 사례가 있다. 원활한 집행을 위해선 당일 통보가 합리적이다.” A. “그 사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말해 달라.” B. “답변이 필요치 않다.” |
위 주장 중 A는 사형수(원고)이고, B는 정부(피고)이다. 논점의 핵심은 사형 집행에 관한 ‘통보 일정’이다. 사형수는 사형 집행 사실을 당일 알려주지 말고, 적어도 전날이나 며칠 전엔 알려주는 게 옳다고 어필한다. 이에 정부는, 사형수는 당일 집행 통보를 감수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 일본에선 희한한(?) 소송과 판결이 있었다. 확정판결을 받은 사형수 2명이 형 집행을 당일이 돼서야 알려주는 건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위헌이라며, 2021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제도 시정 및 위자료 청구 소송에 대한 1심이 열렸다. 피고측은 “형 집행 1~2시간 전 통보할 필요도 없고, 당일 즉시 형장으로 데려가는 형식도 문제없다”고 언급하며 되레 “당일 통보는 사형수를 배려한 것”이라고 팽팽히 맞섰다.
법원은 “사형 확정자가 집행 시기를 사전에 알 권리는 보장돼 있지 않다. 당일 통보는 사형수의 심적 안정과 원활한 집행 측면에서도 합리적”이라며 정부 손을 들어줬다. 이에 원고측은 “매일 사형 집행 공포를 느끼는 사형수의 고통을 생각지 않은 판결”이라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소송 배경엔 1997년을 끝으로 지금껏 사형을 집행치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거의 매년 사형을 집행해 왔다는 사실이 있다. 근래 10년을 보면, 2015년 3명·2016년 3명·2017년 4명·2018년 15명·2019년 3명·2021년 3명·2022년 1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20년과 2023년만 집행이 없었다.
과거엔 사형수에게 집행 하루 전 그 사실을 알려줬다. 이에 사형수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못 견디고 자살하는 사례가 생기자 당일 통보로 바꿨다. 사형수는 집행 당일 1~2시간 전에야 비로소 자신의 마지막 날을 알게 됐다.
정부 주장에 각을 세우는 쪽은 “애초에 사형은 생명을 빼앗는 형벌이기에 집행까지의 기간은 형벌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편다. 미국의 경우 늦어도 며칠 전, 빠르면 한 달 전 형 집행을 사형수에게 통지한다며,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한 현지 여론은 “타인의 존엄성을 빼앗아 놓고(살인), 자신의 존엄성을 운운하는 것엔 큰 위화감을 느낀다”는 주장이 대세다. 지인(일본인)은 “누군가의 미래는 지워놓고, 자기 미래는 살펴달라니 가당치 않다”며 필자의 다음 질문을 막아버렸다.
묻는다. 사형수에게 형 집행 사실을 당일 알려주는 게 부당한가, 아닌가?
(여담 하나. 사형수에게 당일 형 집행을 통보하는 건 ‘집행을 꺼리는 교도관이 사전 휴가 쓰는 걸 막자는 취지’란 설도 있다. 교도관도 당일에야 비로소 본인이 집행자란 사실을 안다. 한 생명을 뺏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비록 흉악한 사형수일지라도.)
글_김광희 창의력계발연구원장 /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