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KDIN 포럼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의 달인 6월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를 맞아 성소수자의 직장 내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공유되었다. 직장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고 소셜미디어, 방송 등 여러 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김기환 씨와 김규진 씨가 성소수자의 직장 내 경험과 포용적인 직장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LGBTQ+(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모든 성소수자) 친화적인 직장 분위기 조성 방안에 대한 KDIN 멤버들 간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성소수자의 일터, 내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곳 ‘퀴어노동권포럼’이 2023년 직장생활 중인 성소수자 4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1%가 직장 내 누구에게도 커밍아웃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5명 이상의 동료에게 커밍아웃한 이들은 4%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은 커밍아웃을 하지 못해 답답한 순간으로 ‘성소수자임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할 때’(66.8%), ‘연애나 결혼에 대한 질문을 들을 때’(64.3%), ‘나의 일상과 연애, 가족 상태 등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싶을 때’(52.7%) 등을 꼽았다. 이는 국내 성소수자 직장인의 대부분이 자신의 정체성을 철저히 숨긴 채 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소수자 직장인들은 자신의 일상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정체성을 감추기 위해 꾸며야 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과 불안감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이들은 회사를 안전하고 포용적인 공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 인권단체 ‘다움(다양성을 향한 지속 가능한 움직임)’의 2021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폭력이나 위협, 괴롭힘이 걱정되어 정체성을 드러내기 꺼려지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직장’이라 답한 이들이 66.3%에 달했다. 같은 조사에서 직장 동료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42.5%나 되었다. 또한, 성소수자 청년의 절반 이상이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인해 남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직장은 어떤 곳인가? 성소수자들이 마음 놓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하고 포용적인 직장 환경은 어떤 곳일까? 성소수자 직장인들이 일터에서 커밍아웃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소수자 친화적인 직장 분위기다. 성소수자에 대한 구성원의 인식, 포용적인 기업 정책, 성 중립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 등 다양한 요소가 모여 성소수자 친화적인 일터를 만든다.   직장에서는 은행원으로, 소셜미디어에서는 동성 커플 채널 ‘망원동TV’의 유튜버로 활동하는 김기환 씨는 직장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 데 있어 지지적인 태도를 보여준 동료들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입사했을 때 게이로서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우연히 그의 유튜브 채널이 알려지면서 사내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으나, 팀원들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성소수자 직원들까지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보호받고 있음을 느끼고 안정감 있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김기환 씨의 모습을 보며 다른 성소수자 동료들도 커밍아웃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었다.  국내 동성 부부 최초로 아이를 출산한 퀴어 인플루언서이자 외국계 소비재 기업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김규진 씨는 성소수자를 위한 사내 제도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여 줄 수 있는 기업을 찾아 인턴십을 4회나 진행한 끝에 현재의 직장에 입사했다. 그의 팀원들은 레즈비언이라는 그의 성 정체성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었다. 한국에서 동성혼이 법률상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신혼여행 휴가와 경조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김규진 씨는 사내 다른 성소수자들이 섣불리 ‘오픈리(openly,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젠더 이력 등을 타인이나 사회에 스스로 드러내 밝히는 것)’ 퀴어로 살아가야 겠다고 결심하지 못하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성소수자 포용성을 높이고자 하는 사내 제도의 부재 때문이었다.  모든 성소수자 직원이 지지적인 동료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 규정이나 성소수자 권리 보호를 위한 조직 등 구체적이고 명확한 제도가 없으면 직장 내에서 성소수자 포용성을 높이기 어렵다. 그는 성소수자 포용성을 인재 관리의 우선순위로 삼는 기업의 노력과 정책 수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직장 분위기 조성을 위한 방안 세션 끝에는 국내 기업에서 성소수자 친화적인 직장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여러 KDIN 멤버들은 성소수자 인권 증진 노력에 대한 업계 사례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기업이 성소수자 인권 증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를 사내 DEI 전략의 우선순위로 삼거나 관련 제도를 도입하는 등 구체적인 방안을 실행하는 데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멤버는 동성 파트너에게 이성 배우자와 동일한 경조사 혜택을 제공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친(親) 성소수자 정책이 고객들에게 반감을 주어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국내 기업의 LGBTQ+ 포용 실태 조사와 더불어 관련 제도를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기업들도 성소수자 지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거두고 실행에 옮길 작은 노력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기업들이 LGBTQ+ 포용성을 강화하고 싶어도, 이를 실행할 사회적 분위기와 법적·제도적 기반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성소수자 포용성 강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리더의 의지라는 조언도 있었다. 조직 내 변화를 이끌 주요 의사결정자가 LGBTQ+ 커뮤니티를 이해하고 포용성 개선 노력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위 경영진이 성소수자 포용성을 DEI 전략의 우선순위로 삼고 조직 상층부 주도의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등 제도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공유되었다. 또한, 리더급 인사들이 포용성 강화를 위한 사내 논의를 꾸준히 이어가고 대내외적으로 LGBTQ+ 포용성을 증진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이 있었다.   LGBTQ+를 위한 직원 리소스 그룹(ERG·employee resource group) 운영의 중요성도 언급되었다. ERG는 직원이 주도하여 만드는 자발적인 그룹으로, 국적, 나이, 종교, 성 정체성, 장애 등 공통 요인을 공유하는 직원들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소수 집단에 속한 직원들은 다양한 교육과 네트워킹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어떤 종류의 다양성을 가진 사람이든 조직 안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2022년 딜로이트의 ‘직장 내 성소수자 포용성 - 글로벌 관점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직장인의 82%가 연대(allyship) 덕분에 직장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할 수 있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대의 사례로 가장 많은 응답자가 꼽은 것은 LGBTQ+ ERG에 대한 동료들의 지원이었다. ERG는 성소수자 직원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대하는 직원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에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해외에 여러 지사를 두고 있는 몇몇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장에서 성소수자 관련 이슈에 대한 논의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성소수자 직장인들이 일상의 주된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긴장 속에서 일하고 있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제도적 변화와 조직 내 정책 변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성소수자에 대한 개인의 인식 변화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직장 분위기는 결국 직장 내 구성원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가치를 되새기는 것부터가 성소수자 포용성 강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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