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부녀지간이다. 잔소리와 간섭이 끊이질 않는 꼰대 아빠. 그런 아빠를 우주에서 제일 싫어하는 반항기의 딸. 둘은 함께 산다. “제발 뒈져!” “빌어먹을 아빠!”란 독설과 증오 언어를 습관처럼 내뱉는 딸. 정말 딸 맞나? 딸 맞다. 어느 날 우연히 개발된 ‘2일간만 죽는 약’을 삼키고 가사(假死) 상태가 된 아빠. 놀란 딸은 아빠 비서에게 돌연사 이유를 캐묻는다. 탐탁지 않은 표정의 비서는 입을 뗀다.
“네가 그렇게 죽으라고 해서 그래.”
“(경악하며) 거짓말!”
“언령이란 게 있어, 말의 힘이란 대단한 거야!”
순간 온몸이 경직된 딸은 그간 아빠를 향해 쏟아낸 무수한 폭언을 떠올린다. 말투가 현재 자기 이미지의 뇌관이었음을 자각하고 그 무게와 책임을 통감한다. 하마사키 신지 감독의 코미디 영화 <한번 죽어 봤다>의 한 장면이다.
뭐, ‘언령(言靈)’이라고? 우리 국어사전에선 찾을 수 없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많이 접한 이들에겐 낯설지 않을 게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엔 ‘영적인 힘’이 담겨있어 그게 현실에 영향을 준다는 뜻의 단어다.
고대부터 일본인들은 세상 만물엔 신령이 존재하는데, 특히 말엔 영험한 힘이 깃들어 있어 사람에게 행복이나 재앙을 가져온다고 믿어왔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언령과 깊은 인연(?)이 있다. 유학 시절 현지에서 구입한 최초의 책이 바로 ‘언령’이 들어간 제목이었다. 당시 우리의 넘사벽 롤모델이었던 일본. 그런 나라에 회자되는 낯선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랬거늘, 이게 웬일? 책 속엔 모르는 용어 천지다. 결국 끝까지 읽어내진 못했다. 언령이란 단어가 지닌 무게감 때문이었을까 이사 때도 책은 꼭 챙겼던 걸 기억한다.
지금도 필자 아이 셋 중 누군가 상스럽거나 듣기 불편한 말을 하면 “말엔 영혼이 담겨있단다. 고운 말을 쓰면 좋겠다”고 점잖게 타이른다. 터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함부로 내뱉지 말라는 아빠의 엄중한 경고와 제어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굳이 ‘언령’을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 씨가 된다”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처럼 비슷한 개념이 우리에게도 존재한다. 서양의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Speak it into existence)”는 표현도 긍정적 자기 암시와 말의 힘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 말한 게 실제 이뤄진다는 건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주창한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에도 잘 드러난다. 처음엔 터무니없었던 말이 예언 반 기대 반으로 점차 현실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수긍한다면 ‘1승 2무’가 아닌 ‘3전 무패’라고 소리 높여라.
평소 내가 쏟아낸 말은 단순히 언어란 소통 도구를 넘어 실제 의식과 행동, 삶에 영향을 미친다. 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며, 행동이 결국 내 삶을 꾸린다. 대의(大義)는 심오한데 말이 경박해선 안 되는 이유다. 하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읊었다.
더해 공자는 ‘세 번 신중히 생각한 후 입을 떼라(三思一言)’고 가르쳤다. 비록 무의식적 돌출 발언이라도 그엔 필히 책임이 따르는 법. 실없는 말이 송사 간다. 입은 갖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口禍之門)이니 말조심하라는 경종이다. 현재의 내 말이, 미래의 내 현실이라면 과언일까! 말이 그대를 지배하게 둬선 안 된다.
글_김광희 창의력계발연구원장 /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