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인사란 들판에서 한 송이 꽃을 찾으라면 필자는 자신 있게 ‘채용’이라 말할 것이다. 좋은 회사가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Right People, Right Bus’, 즉 적합한 사람을 적합한 자리에 선정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삼성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바 있다. “내 생애의 80%는 사람을 뽑고 관리하는 데 보냈다. 1년의 계(計)는 곡물을 심는 데 있고, 10년의 계(計)는 나무를 심는 데 있으며, 100년의 계(計)는 사람을 심는 데 있다” 사람을 뽑고 키우는 일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현실에서의 채용은 사용자와 근로자 간의 온도가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백 년 계획은 고사하고, 입사 한 달 만에 채용 여부를 두고 노동위원회를 찾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이 중 가장 흔한 유형은 회사는 그만두라고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근로자는 출근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다. 필자가 노동위원회 심판을 검토할 때, 4건 중 1건은 해고도 사직도 아닌, 도대체 누가 먼저 그만두라고 했는지조차 불분명한 아리송한 사례였다.  노동위원회는 제출된 서류를 바탕으로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가 적극적으로 관련 증거 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이를 통해서만 주장에 대한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회사는 인사 운영 과정에서 자사가 제정한 인사 매뉴얼을 준수해야 한다. 절차와 시기를 철저히 지켜야만 인사 조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위원회 심판위원들이 신청인과 피신청인보다 약 20cm 높은 위치에 자리하는 것은 모두를 공정하게 대하겠다는 법치주의의 상징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 최근 노동위원회 판정 사례들을 통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검토해 보자.

사례 1. 채용 내정, 그 책임과 절차의 무게

근로자: 지금 와서 그렇게 하시면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두 달 전에 회사에서 보내주신 채용 내정서에 연봉과 입사일자까지 명시되어 있었고, 저도 그 내용을 확인하고 서명까지 했잖아요. 어제는 입사 예정일까지 알려주셨고요. 채용담당자: 네, 그때는 입사하는 데 변수가 없었던 게 맞는데요, 그런데 차년도 사업계획에서 부서별 정원이 확정되면서… 제가 드릴 말씀이 별로 없습니다. 근로자: 저는 회사와 이미 합의가 된 사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채용담당자: 말씀하신 내용 모두 맞습니다.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지만, 채용 내정서에 서명하신 것과 입사일을 특정해서 안내드린 것도 다 맞습니다. 하지만, 채용 계획이 변경되면서 해당 포지션을 더 이상 채용하지 않기로 한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근로자: 저는 회사 인사담당자분의 말을 믿고 모든 절차를 진행한 건데, 이제 와서 이러시면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채용담당자: 정말 죄송합니다.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노동위원회는 이 사건을 부당한 채용 내정 취소로 판단했다. 회사 측이 근로자에게 채용 내정서와 입사 예정일을 명시한 서류를 발송했으며, 녹취를 통해 입사 예정일을 재확인한 사실도 명백했기 때문이다.  과연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채용 내정에 따른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 제27조에 따르면, 해고 사유와 그 시기는 서면으로 통지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 이 원칙을 채용 내정 취소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채용담당자는 부서 정원 변경에 따른 채용 취소를 주장하고자 했지만, 단순한 전화 통화로 채용 취소를 통보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 되었다. 취소 사유가 명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명시한 서면 통보라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 측은 부당한 채용 내정 취소에 따른 급여 전액을 부담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채용 취소에도 해고와 동일한 절차적 정당성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긴 사례다.

심판위원: 회사가 A직원의 본채용을 거부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노무사: 회사 수습 평가에 따라 75점 이상이면 수습 통과, 65점 이상 75점 미만이면 수습 연장, 65점 미만일 경우 본채용 거부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A직원의 수습평가는 1차와 2차 평가를 합산한 결과 64점으로, 같은 시기에 입사한 다른 직원들의 평균 점수(80점 이상)와 비교할 때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어서 본채용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심판위원: (제출된 평가표의 점수를 직접 계산하며) 잠시만요, A직원의 1, 2차 총점수는 137점으로 평균 68.5점입니다. 그리고 다른 수습사원들 B 평균 점수 82.5점, 수습사원 C 평균 점수 84점, 수습사원 D 평균 점수 81점으로 제출해 주셨는데, 제가 직접 계산해보니 B는 68.5점, C는 68점, D는 64.5점으로 이들도 모두 수습 연장이나 본채용 거부에 해당하는 점수네요.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다른 직원과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점수를 부풀려 제출한 것 아닌가요? 조사관님, 이 내용을 회의록에 남겨 주세요. 노무사: (당황해 잠시 말을 못 잇다가) 자료에 오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판위원: 심판 당일까지도 근로자들의 점수조차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사례 2. 수습 평가의 허점, 계산 실수로 드러난 절차의 허술함 실제 사례라고 하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주지하다시피 수습 제도는 본채용 전에 근로자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사용자가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다. 수습 평가의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고, 그 기준에 따라 채용 여부를 결정할 권한은 사용자에게 있다.  이번 사례에서 회사는 왜 잘못된 수습 평가표를 제출했을까? 타 근로자와 비교함으로써 피신청인의 낮은 평가 점수를 입증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평가 기준과 그 결과가 공정한지가 한눈에 이해될 수 있어야 했는데, 이미 집계에서부터 오류가 발생한 평가 자료로는 기준의 적정성을 입증할 수 없다. 이번 사례는 수습 평가의 공정성뿐 아니라 평가 자료의 신뢰성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평가표의 단순한 계산 실수가 회사의 정당한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 것으로, 평가 절차와 자료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노동 분쟁을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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