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초불확실성 시대의 생존 키워드: 변화를 주도하는 ‘조직문화'
지금의 기업 환경은 ‘초(超)불확실성’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듯 험난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 우리 기업들은 무엇을 방향점으로 잡고 달려 나가고 있을까? 답은 올 초 신년사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두 키워드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본원적 경쟁력’과 ‘인공지능’이다, 본원적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특정 산업군 내에서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stuck in the middle)를 벗어나 확실한 경쟁우위를 점한다는 의미다. 즉, 기업들은 생존에 대한 우려를 떨쳐내고 지속성장을 해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편, 작년 초 포문을 열었던 인공지능의 공격에 대해 올해는 본격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도 강력하다. 기업들은 생성형 AI를 각자의 제품과 서비스에 결합해 고객의 경험을 혁신함은 물론 사내 업무 혁신에도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본원적 경쟁력 강화든 AI의 도입이든 새로운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탄탄한 조직문화다. 구성원들을 새 전략에 맞춰 한 방향으로 정렬시키고 실행력에 박차를 가하려면 개방성과 유연성이 높은 건강한 조직문화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문화는 아침 식사로 전략을 먹는다(Culture Eats Strategy for Breakfast)’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AI의 도입은 새로운 인재 영입을 필요로 하는 변화이기도 하다. 잡플래닛이나 블라인드 등을 통해 기업 내부의 은밀한 속사정도 쉽게 접근이 가능해진 요즘, 유능한 인재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문화가 아니라면 인재 영입부터 쉽지 않다. 지금 조직문화를 단단히 챙겨야 하는 이유다. 좀 더 변화와 혁신에 적합하게, 좀 더 매력적인 일터로 보일 수 있게,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왜 지금 조직문화에 관심을 덜 쏟는가? 조직문화란 무엇일까? 쉽게 말하자면, 회사마다 있는 고유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발소리조차 신경 쓰일 만큼 조용한 느낌이 드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산만한 듯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곳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회사의 직원뿐만이 아니라 방문객까지도 그 분위기에 맞춰 행동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조직문화는 그만큼 강력하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누구나 따라하게 되는 조직의 분위기, 그것이 바로 조직문화다. 경력사원으로 새로운 조직에 입사하게 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문서나 매뉴얼에 나와 있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정신적 운영체계’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측정이 어렵기 때문에 조직문화는 종종 성과에 휘둘리는 경우가 생긴다. 조직의 성과가 좋을 때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시행되며 주목받는 어젠다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성과가 조금만 나빠져도 제일 먼저 예산 삭감의 타깃이 된다. 그러다 실적이 악화되면 결국 조직문화가 문제였다고 비난의 화살이 꽂히기 도 한다. 요즘 조직문화가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홀대받고 있다면 이는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기업들이 저조한 성과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어려운 경영 환경을 뚫고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또 AI를 통해 새로운 혁신을 꾀하기 위해 조직문화 개선은 더욱더 관심을 쏟아야만 하는 과제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조직문화 개선의 성공을 위해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무엇일까?
1. 레시피는 각기 달라야 한다! 조직문화의 개선을 원하는 이유를 물으면 결국 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성과 창출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직문화는 단 하나의 정답이 없다. 각각의 기업에 맞는 조직문화가 있을 뿐이다. 애플은 시장 지향적인 조직문화, GE는 리더십 지향적인 조직문화, 월마트는 오퍼레이션 고도화에 집중한 조직문화로 고성과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Spencer Stuart는 조직문화를 총 8가지의 스타일로 소개했다. 배움(Learning), 목적 (Purpose), 배려(Caring), 질서(Order), 안전(Safety), 권위(Authority), 결과(Results), 기쁨(Enjoyment)이 그것인데 기업마다 다른 이상적 조합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각 회사에 적합한 문화를 정의하고 조직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합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조직문화 개선의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요리의 레시피와도 같다. 궁합이 잘 맞아 맛과 영양을 배가시키는 조합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서로 상충되어서 맛과 영양을 떨어뜨리는 조합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면서 동시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챙겨가자고 한다면 구성원들은 혼란스럽고 모순된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 조합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함께 하고자 할 때 상충이 된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레시피가 추가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조직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문화의 조합,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크게 3가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업의 본질이다. 우리 비즈니스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올까에 대한 고민이다. 게임회사는 창의성과 빠른 실행력이 경쟁우위를 점한다. 건설회사는 매 뉴얼 준수와 세밀한 관리력이 생존을 결정짓는다. 당연히 두 회사의 조직문화는 같을 수도 없고 같아도 안 된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시대와 기술의 변화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은 인공지능이 전통 산업의 생태계를 완전히 뒤흔드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순종, 성실, 근면에 기반한 문화로는 안 된다. 창조와 혁신을 불러올 수 있는 문화가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은 구성원이다. 현재 구성원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MZ 세대. 이들은 성장을 우선하고 투명성과 공정을 중요시한다. 또 자신의 생각을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이런 세대와 함께 일 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가 과거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 그렇다면 이제 선택해야 한다. 지금 우리 기업은 업의 본질, 시대와 기술의 변화, 구성원이라는 세 요소를 놓고 봤을 때 어떤 조직문화의 조합이 필요한지 말이다.
2. 조직문화의 얼굴은 리더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가 20년 동안 관찰한 조사 결과, 조직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했던 기업 중 70%는 실패 했다고 한다. 실패의 원인은 조직문화와 함께 전략, 리더십, 조직을 같이 통합해 다루지 못했다는 것. 특히 조직문화와 리더십이 따로 노는 경우를 주의해야 한다. 조직문화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이와 반대되는 사람들을 리더 자리에 승진시키게 되면 어떨까. 사실상 ‘변화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구성원들에게 던져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존 리더들 또한 예외를 두지 않고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줘야 한다. 국내 어느 글로벌 기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회사는 수평적인 문화를 강조하며 복지에도 차등을 두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임직원들이 이용하는 주차장 공간이 부족해졌을 때 이들이 한 선택은 복불복 제비뽑기였다. 그런데 우연히 대표가 ‘불복’에 걸려 자기 차를 가지고 다닐 수 없게 된 상황이 벌어졌다. 이후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대표는 당연히 결과대로 행했다. 말로는 수평적인 문화를 얘기하면서 리더가 이를 지키지 않고 예외를 두려 한다면 그 조직문화는 위선이 되고 기만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위계적인 조직문화에서는 리더가 되면 ‘특별하게’ 주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책상이 커졌고 직장인의 꽃이라 불리는 임원이 되면 별도의 방이 주어졌다. 주차 공간도 엘리베이터도 임원 전용이 마련돼서 아래 구성원들과 동선도 달라졌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수평적인 문화와 공존하기 어렵다. 요즘 많은 기업이 수평적인 문화로의 변화를 내세우면서 리더십과 관련된 부분에서 과감한 변화를 꾀하지 못해 조직문화 개선이 더디거나 삐걱거리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