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규진 서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1960년대 이후 히피 운동, 신자유주의, 글로벌리즘 등의 흐름에 따라 비교적 현대에 개인주의(Individualism) 개념이 등장했다고 언뜻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개인주의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학적·정치적 논의의 본격화는 근대 이후에 시작되었는데 개인의 능력을 강조한 르네상스 시대, 법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끈 계몽주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On Liberty)을 거쳐 시대와 사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한국에서 개인주의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1990년대에는 이기주의와 비교하여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이기주의자’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어감이 좋지는 않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공동체를 중요시하며, 개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을 조금은 이기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회적 윤리·도덕 기준에 맞춰 일종의 가면을 쓰고, 실제 본인의 생각과는 다르게 모범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건강한 개인주의가 자리 잡기 힘든 문화적 배경이 아닐까 한다. ‘개인의 자유, 권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개인주의의 기본 전제를 강조하면 이기(利己)를 쫓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진정한 개인주의의 완성은 ‘타인’, ‘공동체’에 대한 인정과 이해에서 출발한다. 『이토록 다정한 개인주의자』를 펴낸 함규진 교수의 “내가 잘 되려면 너도 함께 잘 되어야 해”라는 미소 띤 한마디에서 우리 시대 개인주의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 다정함이 묻어난다.  정치철학과 윤리교육을 연구하며 다양한 집필 활동을 이어온 함 교수는 최근의 저서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연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깊이 탐구했다. 그가 말하는 ‘다정한 개인주의’란 무엇이며, 개인과 조직 나아가 사회가 어떻게 건강한 소통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누었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의 번역가이자 수많은 역사 관련 서적을 집필한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독자를 위해 간단한 이력과 더불어 근황을 소개해 달라.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2012년부터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 집필, 강연 등 대중에게 역사와 철학, 정치사상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근래 『이토록 다정한 개인주의자』를 출간했는데,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와 공동체의 조화를 모색하는 방법을 다양한 철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제시하는 책이다. 현재는 『피에 젖은 땅』으로 잘 알려진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Timothy Snyder)의 적극적 자유에 관한 책의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행정학에서 정치외교학으로 전향 후 정약용의 정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배경이 궁금하다. 처음 행정학을 전공했지만, 점차 정치학의 본질적 질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치학과 행정학의 분리를 말하자면 미국 28대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이 떠오른다. 행정이 실질적인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이라면, 정치는 그 정책을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행정학은 정책의 아웃풋(output)을 중시하지만, 정치학은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과정, 즉 인풋(input)을 다룬다. ‘왜 정치가 필요할까, 왜 어떤 사람은 정치로 이득을 보고 어떤 사람은 불이익을 받을까, 심지어 전쟁과 학살까지 왜 일어나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정치철학을 공부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역사 속 인물들을 접하다 보면 저마다 매력이 있는데, 특히 정약용이 강조한 민본주의적 사고와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은 현시대에 가장 적합한 비전이 아닐까 한다. 정약용은 현실 정치의 개혁을 고민한 실천적 사상가였다. 단순히 이론에 그치지 않고,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거나 깡그리 뒤엎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상황을 바탕으로 정책과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노력을 실천했다. 이러한 관점이 정치철학 연구와 윤리교육에도 영향을 끼쳤다.

역사와 윤리교육, 이들의 연결고리가 있다면.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연구함과 동시에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윤리는 결국 역사 속에서 형성된 가치 체계를 다루는 것이므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윤리교육이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와 실천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역사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윤리교육은 옳고 그름을 가르치기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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