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의 경영 전략에도 변화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올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이 미국 내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Diversity, Equity & Inclusion) 경영에 미친 영향은 그 어느 때보다 극적이다. DEI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 기업 경영의 중요한 화두였다. 특히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기점으로 많은 기업이 조직 내 DEI 개선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담당 부서를 신설해 관련 정책과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이 DEI 정책을 비판하고 축소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미국 내 기업의 DEI 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기업들은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준수해야 할 책임이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 사업 성공과 지속적인 혁신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전략 역시 필요하다. 이와 같이 복잡해진 법적, 경영적 환경 속에서 미국 내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그리고 DEI 정책에서 실제로 가장 크게 변하고 있는 부분과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DEI에 제동을 건 트럼프의 행정명령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DEI 정책을 “불법적이며 비도덕적인 차별”이라고 비판하며 연방 정부 기관과 정부 계약 기업의 DEI 프로그램을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 조치는 연방 기관 내 DEI 관련 부서를 해체하고, 다양성과 형평성을 지지하는 기존의 행정명령들을 철회하고, 공공 예산이 다양성 교육과 프로그램에 사용되지 않도록 규제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또한 인종 및 성별 다양성 목표를 폐지하고, 다양성 수치를 기반으로 한 고용 및 승진 정책을 중단하라는 지침도 담고 있다. 이번 행정명령은 정부와 계약을 맺고 있는 기업들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하고 있는 한편, 노동부와 법무부의 감독 권한을 강화해 민간 기업의 DEI 정책이 불법적인 “역차별”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지 감시하도록 하여, 공공 부문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에도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1) 이 조치는 2023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학 입학에서 소수집단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을 금지한 판결과도 맞물려 있다. 실제로 이 판결 이후 DEI 프로그램을 겨냥한 보수 단체들의 소송이 급증하면서, 이미 작년부터 기업들의 DEI에 대한 지지가 소극적으로 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번 행정명령은 DEI 정책이 법적 리스크를 초래할 가능성을 더욱 높여 기업들이 기존의 정책과 프로그램을 재검토하는 것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미국 내 기업들의 반응: 축소하거나, 수정하거나 또는 강화하거나
트럼프 정부의 행정명령 이후 미국 기업들의 대응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DEI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폐지한 기업들이 있다. 메타는 DEI 부서를 전격 해체했고, 아마존은 “DEI와 관련된 낡은 프로그램과 문서들을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겠다”고 발표한 뒤 연례 보고서에서 채용 및 공급자 다양성 목표를 제외했다. 구글 역시 기존에 공개했던 다양성 목표를 더 이상 발표하지 않기로 하고 웹사이트에서 다양성과 형평성에 관련된 용어들을 삭제했다. 월마트는 2020년 발표했던 1억 달러 규모의 인종 형평성 프로그램을 종료했고, 타겟 역시 흑인 직원과 공급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성 프로그램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은 보수적인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에 따른 소비자들의 반발이 현재 진행형이다. 3월 7일부터 일주일간 아마존 보이콧이 실시되었고, 타겟의 소비를 40일간 중단하는 보이콧이 3월 5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DEI가 법적 논란의 대상이 되었지만, 소비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다양한 인재 풀을 확보하는 것이 사업 성과와 직결된다는 점을 많은 기업들이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당수 기업들은 명칭과 운영 방식을 수정하고, 특정 정책을 축소하며 DEI 전략을 조정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변화는 다양성과 형평성이라는 용어를 지우고 포용과 소속감을 강조하는 것이다. 맥도날드는 기존의 ‘다양성과 포용성’ 부서를 ‘글로벌 포용팀’으로 개편했고, 많은 기업들이 인종 및 성별 기반의 프로그램을 보다 중립적인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메시지로 리브랜딩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다양성을 환영하는 문화를 여전히 강조하는 한편 임원 평가 항목 중 DEI 목표를 제외했는데, 법적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내부적 가치를 유지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한편, DEI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며 기존 입장을 더욱 강화하는 기업들도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JP모건 등은 DEI가 여전히 기업의 혁신과 경쟁력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공개적으로 다양성 및 포용성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애플의 경우 주주총회에서 DEI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축소하자는 제안을 공식적으로 거부했고, 코스트코 주주들 역시 사내 DEI 정책의 리스크를 점검하라는 제안을 부결시켰다. 가치경영을 중요하게 여기는 파타고니아 또한 공개적으로 다양성 이니셔티브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를 표명해 그동안 보여준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행보를 이어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