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이나 ‘달팽이 여자’라는 말을 언론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조용한 퇴직은 직장을 조용히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맡은 업무만을 최소한으로 수행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조용한 퇴직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22년 뉴욕에 거주하는 20대 엔지니어가 TikTok에 17초짜리 동영상 메시지를 게시한 이후부터인데, 영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최근에 조용한 퇴직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이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노력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한다. 업무는 제대로 수행하지만, 일이 인생의 전부여야 한다고 하는 허슬 문화의 관점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일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는 노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즉, 조용한 퇴직은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일이 인생의 전부이며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허슬 문화(Hustle Culture)를 더 이상 따르지 않는 태도이다.
한편, 달팽이 여자는 성공을 쫓기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일하는 여성을 의미한다. 여성 창업자나 비즈니스에서 주체적으로 활약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여성을 의미하는 걸 보스(Girl Boss)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달팽이 여자라는 용어는 호주의 비즈니스 우먼 시에나 라드비(Siena Radby)가 2023년 <Fashion Journal>에 기고한 기사 “Snail girl era: Why I’m slowing down and choosing to be happy rather than busy(달팽이 여자 시대: 내가 바쁘게 사는 것보다 속도를 늦추고 행복해지는 것을 선택한 이유)”에서 유래했다. 라드비씨는 장식용 가방 브랜드 헬로 시시를 설립한 인물로, 기사에서 그녀는 과거 걸 보스를 자칭하던 자신이 걸 보스의 스타일을 버리고 더 여유로운 생활 리듬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달팽이 여자에 대해 여전히 야망은 있지만,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일하며 성공을 위해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건강이나 행복을 희생하지 않는 삶이라고 설명했다. 행복과 자기 관리를 최우선으로 삼는 달팽이 여자의 라이프스타일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으며, TikTok이나 Instagram 같은 소셜미디어에는 본인인 달팽이 여자인 것을 자칭하며 숲을 산책하거나 해변이나 방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또는 여유롭게 독서를 즐기는 영상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조용한 퇴직이나 달팽이 여자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일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최근 일본에서도 매스컴 등에 의해 조금씩 보급되기 시작하고 있다. 주식회사 마이나비가 20~59세 정규직을 대상으로 2025년 4월에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본인이 조용한 퇴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규직의 44.5%가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46.7%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50대(45.6%), 40대(44.3%), 30대(41.6%)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조용한 퇴직을 하고 있는 사람의 57.4%가 조용한 퇴직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고 응답했다. 얻은 내용으로는 ‘휴일이나 근무 시간, 자신의 시간에 대한 만족감’(23.0%), ‘업무량에 대한 급여액에 대한 만족감’(13.3%), ‘직장 내 좋은 인간관계’(12.7%)가 상위 3위를 차지했다.
한편, 2025년 3월 기업의 중간 채용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용한 퇴직에 대해 찬성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38.9%로, 반대한다는 비율 32.1%를 6.8%p 상회한 것으로 밝혀졌다. 업종별로는「IT·통신·인터넷 관련업」,「금융·보험·컨설팅업」,「운송·교통·물류·창고업」에서 반대보다 찬성이 많았다. 반면, 「부동산·건설·설비·주택 관련업」,「유통·소매업」에서는 찬성보다 반대 의견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상의 결과는 조용한 퇴직에 대한 평가가 업종 특성이나 직장 문화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현재 일본 내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향후 달팽이 여자라고 불리는 새로운 일하는 방식의 중요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출산이나 육아를 경험한 여성들이 달팽이 여자와 같은 일하는 방식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아직도 일본 사회에서는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이를 대가로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가 성공의 열쇠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일과 가정의 균형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잔업이나 휴일 출근, 야간 근무로 인해 소득이 증가하고 회사에 장시간 머무는 것이 우수한 사원으로 평가되는 현재의 시스템은 달팽이 여자와 같은 일하는 방식을 원하는 여성들의 노동 시장 참여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남성의 장시간 근로를 줄이고 가사나 육아에 참여하는 시간을 늘리는 동시에, 남성의 근로 방식도 일과 성공을 최우선으로 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에서 벗어나, 육아나 가사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노동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유연한 일자리’로 변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