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가 당신에게 맞지 않는다면 2,000달러를 받고 떠나십시오.”
저마다 인재들을 끌어오기 위해 현금 보상을 지급하며 인재확보전을 치르던 가운데 정반대의 방법을 택한 회사가 있었다. 온라인 신발 판매 플랫폼 자포스(Zappos)의 고(故) 토니 쉬 창업자는 온보딩(입사 후 적응 및 교육) 기간을 마친 신입 직원에게 마지막 관문으로 이 같은 미션을 줬다. 이른바 ‘오퍼(The Offer)’ 제도로 4주간의 집중 온보딩 기간 후 회사와 맞지 않거나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을 경우 보상금을 받고 떠나도록 했다. 실제로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신입 직원은 평균 3% 미만에 불과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효과는 컸다. 회사를 이해하고 난 뒤 비전에 공감하고 함께할 사람만 남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공유하면서, 선택으로 남은 직원들이 더 큰 소속감을 갖게 됐다. 이후 아마존에 인수된 뒤에도 독자적 조직문화를 가진 조직으로 오랫동안 남아있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내보낼까

이는 사람을 잘 뽑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자포스의 원칙을 보여준다. 2,000~4,000달러 수준에서 직원을 이탈시킨다면 가장 가성비 높은 조직문화 보전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자 속도에 쫓겨 평범한 직원을 들이는 순간, 그는 또 다른 평범한 인재를 끌어모으고 팀 전체가 평균 이하의 문화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경계하는 차원이다. 일단 ‘평균의 함정’에 빠지면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중간관리자군이 늘어나면서 조직 전체에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높인다는 우려는 최근 들어 빅테크 사이에서 새로운 정리해고(레이오프) 바람이 부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창사 50주년을 맞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5월 전체 인력의 3%에 해당되는 6,000명을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2023년 경기 침체에 대응해 1만 명 규모의 정리해고를 진행한 이후 최대 규모로, 이번 정리해고의 주 타깃은 중간관리자 계층으로 꼽혔다. 이어 지난달에도 영업 조직을 중심으로 전체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밝혀 직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아마존도 나섰다. 앤디 제시 아마존 CEO는 AI를 회사 인력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물류 네트워크 운영에 활용해 일부 일들을 대체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향후 수년 내 AI 도입 여파로 회사의 전체 인력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을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이 뉴스는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일으켰지만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다. 그가 앞서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를 보면 제시 CEO의 행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읽힐 수 있다. 그는 2023년 말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를 통해 각 부문에서 2025년 1분기까지 중간관리자 대신 개인 기여자(실무자·Individual Contributor) 비율을 최소 15%씩 높이라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제시 아마존 CEO는 이에 그치지 않고 ‘관료주의 소원수리함(Bureaucracy Mailbox)’이라는 장치를 만들어 관료주의를 유발하거나 불필요한 프로세스가 있다면 이를 신고할 수 있게 했다. 소원수리함에 올라온 사항은 제시 CEO가 직접 검토하고 조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 
메타 역시 팀장이 주로 3~4명의 팀원을 관리하는 체제에서 중간관리자 간소화를 추진해 7~8명으로 늘렸고 이 과정에서 조직의 위계(레이어)를 절반 이상 줄였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조직의 조각을 나눠보니 의사소통 지연이 줄어들었고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피터의 법칙 예외지대? 느리게 뽑고 내보내지 않는다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에서 팬데믹 기간 앞다투어 뽑았던 사람을 내보내면서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진통을 오래 겪었다면, 이 같은 레이오프 바람에서 무풍지대인 곳이 하나 있다. 보통 ‘느린 채용과 빠른 해고(Hire slow, Fire fast)’가 일반적인 경향이라면 ‘느린 채용과 더 느린 해고(Hire slow, Fire rarely)’로 명성이 자자한 엔비디아다. 
레이오프를 실행하는 회사에서 공통적으로 염려하는 것은 ‘사람들은 무능해질 때까지 승진한다’는 ‘피터의 법칙’이다. 이는 1969년 교육학 박사인 로렌스 피터가 발표한 경영 이론으로, 반세기 넘게 다양한 조직에서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다. 첫째, 뛰어난 실무자가 반드시 훌륭한 관리자로 성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둘째, 조직 내 사다리에서 올라갈수록 리더십에 필요한 능력이 달라지는데 필요로 하는 능력과 실제로 개인이 갖춰가는 능력 차이가 점점 벌어진다는 게 핵심이다. 회사가 규모를 키우고 경제가 성장 국면에 있을 때는 많은 이들이 문제 삼지 않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국 사람만을 관리하며 무능해지는 매니저를 줄이고 이를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들 위주의 가벼운 조직으로 이끌겠다는 방향 전환이다.
사람은 결국 무능해질 때까지 승진한다는 이론과 다르게 ‘해고 없음’을 지향하는 엔비디아는 ‘사람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게 특징이다. 젠슨 황 CEO는 지난해 스트라이프의 창업자 패트릭 콜리슨과의 대담에서 엔비디아가 사람을 자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는 “사람은 배울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해고보다는 그 사람을 교육시키는 것을 택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장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해고는 해고 당사자의 책임이기보다는 기회를 주지 못한 리더의 책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이같이 덧붙였다. “사람들이 위대함으로 거듭나도록 고문(Torture)하는 쪽을 택합니다. 위대함은 어느 날 갑자기 ‘아하’하는 깨달음에서 오는데 그 직전에서 포기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위대한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 젠슨 황의 ‘고문’을 마주한다. 누군가는 이탈하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오늘날 엔비디아의 핵심 인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브라이언 카탄자로 엔비디아 응용딥러닝 연구 담당 부사장은 한때 엔비디아를 떠나 앤드류 응 미 스탠퍼드대 교수와 바이두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2년 만에 다시 엔비디아로 복귀했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두고 이같이 술회했다. “젠슨은 함께 일하는 내내 일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때때로 젠슨을 두려워했지만 동시에 그가 나를 굉장히 아끼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구성원을 어느 시점의 상태와 성과로 단면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는 태도는 엔비디아 구성원에게 심리적 안전감과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팬데믹 이후 압도적인 주가 상승으로 엔비디아 직원들은 근속 연수가 단 3~4년만 되어도 많은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고 장기 근속 직원들은 준은퇴의 삶을 살 수 있는데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재무적 자원봉사자(Financial volunteer)’라는 명칭까지 나왔다. 엔비디아의 지난해 다양성 리포트에 따르면 연간 이직률(Turnover rate)은 2.7%로, 반도체 업계 평균(17.7%)을 한참 밑돈다. 

인터뷰보다 중요한 것, “어떻게 살아왔는가”

엔비디아는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과거 행적과 추천인의 의견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젠슨 황 CEO는 “지원자에게 물어볼 질문을 오히려 추천인에게 물어보면서 그 사람에 대해서 파악한다”고 말했다. 젠슨 황이 과거 행적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평판이라는 자원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담에서 한 가지 조언을 던졌다. “당신은 인터뷰를 잘 보거나 망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쌓은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좋은 과거를 만드세요.” 준비한 면접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보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게 젠슨 황의 오래된 믿음이다. 이는 자신이 패스트푸드점 데니스에서 화장실 변기 닦이 아르바이트를 할 때부터 늘 지키고 실천한 원칙에 가깝다. 이로 인해 2023년 진행된 인재 채용의 40% 이상은 사내 인재의 추천으로 진행됐다. 믿을 만한 인재를 천천히 선별하되 이미 엔비디아 문화와 맞는 인물이 소개하는 인재를 우선 고려하는 전략이다. 채용 과정에서도 엔비디아의 비전과 현실을 좋은 점뿐만 아니라 나쁜 점 심지어 추한 부분까지 솔직하게 공유한다는 입장을 전한다. 엔비디아가 뽑는 인재상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꼽힌다. 린지 듀란 엔비디아 채용 담당 부사장은 “엔비디아에서 일하려면 기술에 대한 열정이 있고 복잡한 문제를 푸는 일을 즐겨야 한다”며 직함보다 일이 중요한 곳이라고 언급했다. 
채용 과정에서도 팀 매니저와의 인터뷰, 기술 패널 인터뷰, 동료와의 컬처 핏 면담이 진행되는데 독특한 단계가 있다. 최종 면접 단계에서 다른 조직의 직원과 편하게 15분간 대화할 수 있는 ‘인사이더 챗(Insider Chat)’으로 이 단계는 평가에는 반영되지 않고 지원자가 엔비디아라는 회사와 조직문화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일종의 상견례 자리다. 지원자가 공식 면접 분위기에서 못다 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실질적으로 회사와 본인이 맞을지를 파악하게 하는 기회가 된다. 이처럼 엔비디아의 채용은 단지 ‘검증’이 아닌 ‘상호 선택의 과정’이다. 회사 역시 지원자로부터 자신들을 검열당한다는 생각으로 열린 태도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이해와 합의는 단단한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해 인재 유지(retention)과 몰입도 측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준다.
이 같은 채용 방식은 단순히 ‘느리다’는 것과는 다르다. 정확하고 정제된 기준으로 적합한 인재를 거르고, 거른 이후에는 오래 함께 가기 위한 전략이 명확하다. 엔비디아가 지향하는 바는 ‘많은 인원’이 아니라 ‘정예 인원’이다. AI 패러다임 전환을 이끈 주역들이 불과 몇십 명이라는 것이 그 증거다. 엔비디아식 채용은 빠르게 사람을 들이고 필요 없으면 곧바로 내보내는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처음부터 오래 볼 사람을 찾고, 그들에게는 헌신과 성장을 이끌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젠슨 황 CEO가 말한 사람은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사람을 자산으로 여긴다’는 말이 조직의 언어가 아닌 실행의 지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한다. 

리더가 1번 채용담당자

국내 기업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부분이 사람을 해고할 수 없다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엔비디아식 느린 채용과 느린 해고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먼저 빠른 채용보다는 빠른 검증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채용 속도를 높여야 할 일이 생기더라도 검증 기준은 낮추지 않는 구조 설계가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형식적이지 않은 상호 선택의 단계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컬처 핏을 위한 커피챗이라든지 사내 추천 강화를 비롯해 다층적인 추천인 검증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특히 평판 관련 AI 서비스 등의 발전으로 솔직한 피드백을 직접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이를 적용해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중요한 부분은 해고 대신 직원을 계속해서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고민하는 것이다. 성과가 부족한 직원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해당 직원이 잘할 수 있는 조직 내 다른 역할이나 학습-피드백 방식을 고민하는 구조가 지속 가능할 수 있다. 인사평가가 끝이 아니라 직원의 재배치와 학습의 출발점이 되도록 회사의 교육제도나 승진 제도를 설계하고 동시에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재교육에 담긴 부정적 뉘앙스를 과감히 지우고 리더의 지원하에 근속 연수가 오래된 직원도 IC로서 새롭게 역할을 할 수 있는 관리자 승진 이외의 트랙에 대해 회사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적게 뽑더라도 ‘인재 밀도’를 유지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 인원수가 사세를 보여주고 경쟁력을 나타낸다는 오랜 믿음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인재 밀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시총 1, 2위를 다투는 MS와 엔비디아의 직원 수 규모는 각각 22만 8,000명과 3만 명으로 8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하지만 이들이 내는 생산성은 엔비디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게 현실이다. 이를 위해 채용 KPI가 ‘입사 후 핵심성과자 비율’ 등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가 직접 채용을 챙기며 느린 채용의 일원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팀에 어울리는가’의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재의 성장은 좋은 인재를 뽑은 이후의 문제다. 저커버그 메타 CEO는 직원을 뽑을 때 마지막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고 한다. “내가 반대로 이 지원자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일까?” 리더에게도 누군가를 뽑는 것은 큰 무게감과 의미가 담긴 질문이 될 수 있다. 리더는 그 조직의 가장 오래된 채용 담당자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과 10년을 함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이 팀은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같다. 채용은 사람을 뽑는 일이 아니라 회사를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그 속도를 결정하는 철학이 조직의 인재 밀도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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