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협업, 하이브리드 워크, MZ 세대의 가치관 변화 속에서, 많은 조직이 ‘조직문화 진단’이라는 도구로 조직의 현 상태를 점검한다. 조직문화 진단은 조직의 모습을 수치로 보여주고, 개선 계획의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하지만 화려한 보고서 뒤에 남는 건 실행 없이 방치된 점수뿐인 경우가 많다. 조직문화는 단순한 ‘측정’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살아 움직이는 집단 현상이다. 조직문화의 본질은 구성원들이 매일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는지를 통해 드러난다. 변화의 속도와 복잡성이 기존 방식의 효용을 무너뜨리고 있는 지금, 필요한 것은 진단의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는 일이다.
조직문화 진단의 한계
조직문화 분야의 거장 에드가 샤인(Edgar Schein)은 스스로를 프로세스 컨설턴트라고 정의할 정도로 분석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조직문화를 접근하는 실행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조직문화 진단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조직문화 진단은 피상적(Superficial)이고, 도움이 되지 않으며(Not to be helpful), 심지어 쓸모없다(Useless).” 샤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거를 통해 조직문화 진단이 가지는 한계점들을 지적하면서 조직문화 진단 자체로는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이슈를 절대로 밝혀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는 임의적인 질문이 갖는 한계이다. 조직문화는 사업 수행 방식과 복잡한 관계·시스템의 총합이며, 이를 진단하려면 1,000개의 질문도 부족할 것이다. 따라서 진단 설계자는 결국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간접적인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조직문화 진단은 이러한 간접적 추측에 근거한 임의적인 질문에 대한 현상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되지 않은 영역에서의 본질은 가려지거나 왜곡될 수 있다. 마치 가로등 불 아래서 열쇠를 떨어뜨린 취객이 불빛이 비치는 곳에서만 열쇠를 찾는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조직문화는 집단 현상인데 진단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조직에 대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의견의 합이나 평균이 절대로 집단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역동적인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마치 예비군 훈련장에서 목격되는 현상이나 행동들이 훈련 참여자 개개인의 의식수준의 합이나 평균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세 번째는 정적인 결과치(Static)로 역동적 현상(Dynamic)을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진단은 조직문화 프로파일 형태로 분석 결과를 제시해 준다. 이러한 프로파일은 진단이 이뤄지는 고정된 시점의 모습을 제시해 주는 것인 반면, 조직문화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에서 조직문화 진단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변화 활동이 실행되는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인 간격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에 조직 개편 등으로 인해 리더나 구성원이 바뀌는 일도 있고, 사업적인 특정 이슈가 발생하기도 한다. 조직문화가 집단 현상이라고 한다면, 소규모 단위 조직의 경우 구성원 한 사람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집단의 역동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동일한 한 사람의 구성원이라고 하더라도 내외부의 상황에 영향으로 인해 조직의 모습에 대한 인식의 정도는 매일 달라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실무적인 측면에서 일상적인 한계들도 반복된다. 조직문화 진단이 표면에 드러난 행동만 보고 더 중요한 암묵적 가정을 읽어내지 못하거나, 진단 과정이 개입 행위임을 간과해 부정적 정서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문제 중심 질문만 던져 오히려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거나, 맥락이 다른 조직과 직군에 동일한 설문을 적용해 현실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또, 진단 결과의 해석과 개선 방향이 일부 기획자의 손에만 맡겨져 구성원 스스로의 주도권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오늘날 조직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변화들 속에서 조직문화 진단의 한계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하이브리드와 원격 근무가 보편화되면서, 구성원의 일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거나 비공식적인 상호작용에서 조직문화의 단서를 찾는 일이 훨씬 어려워졌다. 디지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협업은 주로 메신저, 프로젝트 관리 도구, 화상 회의 플랫폼에서 일어나지만,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화의 질, 피드백 방식, 의사결정 흐름은 전통적인 설문으로는 포착하기 어렵다. 또한 AI 기반 협업 도구의 활용이 확산되면서 실행과 협업의 흔적이 중요한 데이터로 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진단 방식은 이러한 정교한 디지털 발자취를 분석에 반영하지 못한다. 게다가 조직 구조가 프로젝트 단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고정된 부서를 기준으로 한 진단은 실질적인 의미를 잃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의 주기는 더욱 짧아지고 있기에, 한 번의 연례 진단으로는 급격히 변하는 조직의 분위기와 구성원들의 관계적인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
조직문화 진단의 대안 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