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성과관리를 보다 ‘역동적’으로 바꾸고 있다. 연초 목표 수립과 연말 평가로는 급변하는 사업 환경에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일찍이 내려졌다. 하지만 자원과 기술의 한계로, 목표 달성을 위한 업무 진행상황의 추적, 인력 및 프로세스 조정, 우선순위 결정, 책임 강화 등 성과관리의 본래 목적을 이루는 조직은 드문 것이 현실이다. 허나 최근 들어 다양한 성과데이터의 실시간 파악 및 분석, 이를 바탕으로 한 예측에 이르기까지 AI의 지원이 가능해지면서 이러한 목적 달성에 보다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AI를 통해 수동적이고 사후적이었던 성과관리 방식에서 능동적이고 사전적으로 기민하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성과관리가 진화하고 있다.
급변하는 업무 환경에 따른 성과관리의 진화
성과관리는 투입되는 자원에 비해 실제 성과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오명 하에 무용론이 수시로 대두되었으나, 폐지되는 대신 변화하는 산업 및 업무 여건에 따라 변모해왔다. 『Performance Appraisal and Management』의 저자인 케빈 머피 리머릭대 교수는 “성과평가가 사라진다기보단 전통적인 성과평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효과적인 성과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노동시장의 활력에 따라 성과관리에 대한 고용주와 구성원의 주도권이 달라졌고, 경쟁과 협업의 중요성에 따라 제도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2010년대 이후 디지털화가 가속되면서 협업과 구성원 성장의 가치가 강조돼 왔다.
특히 AI의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지금,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고 성과를 측정하며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사람과 AI의 협력이 강화되면서 이를 통해 집중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 수립과 과제 발굴, AI 활용에 따라 향상된 생산성 측정, AI 기술 습득과 적용을 위한 교육 수요 확대 등이 그 이유다.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구성원들의 높아진 잣대 역시 AI를 통해 평가자의 편향을 줄임으로써 충족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성과관리 곳곳에 활용되는 AI
AI는 이미 성과관리의 곳곳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목표 및 지표 간의 관계를 분석해 보다 정렬된 조직 및 개인 목표를 수립한다든지, 적시에 적절한 성과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코치 역할을 수행한다든지, 구성원의 미래 성과를 예측하는 등 AI가 활용된 사례를 함께 살펴보자.
우선, 목표 및 지표 설정에 대한 AI 활용은 상대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경영대학원이 발행하는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2023년 공동으로 3000여 명 임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분의 2에 해당하는 조직이 관리자의 판단에 따라 핵심성과지표(KPI)를 설정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이 가운데 KPI가 조직과 개인의 성과 개선에 기여했다는 응답은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KPI 설정에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응답한 조직의 무려 90%가 새로운 KPI 설정 방식이 조직성과 향상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목표로 삼은 결과물(strategic outcome)을 얻는 데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찾는 데 AI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성과 매개변수를 AI로 검토해 성과를 좌우하는 요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조직에 가장 큰 가치를 제공하는 KPI를 파악해 우선순위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토코피디아는 페타데이터에 달하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플랫폼 내 거래건수, 거래액 증가라는 회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입주기업 품질’이라는 KPI를 도출했다. 토코피디아는 이 KPI를 추적하면서 각 입주기업의 주문이행률, 판매 상품 수 등을 통합한 신뢰도를 수치화해 구매자와 판매자의 연결을 강화하고, 각 가맹점에 운영 개선을 위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데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AI는 예측력이 높은 선행지표를 도출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다. 여기서 선행지표는 조직이 행동(action)을 통해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목표 달성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지표를 의미한다. 후행지표는 매출, 품질평가 점수, 고객만족도 등 목표 달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신용평가회사 익스페리안도 AI를 성과관리에 적용한 다양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에 따르면, 익스페리안은 AI를 통해 고객전환율이란 선행지표를, 신용보고서 열람 빈도, 활용 기능 등을 통합한 고객참여지수로 교체했다. 이에 따라 단순히 거래액이나 주문 수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지수에 담긴 고객의 의도를 이해하고 기능 개발 우선순위를 결정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머서에 따르면, 익스페리안은 또 성과에 대한 회사의 철학, 가치관, 사업목표를 학습시킨 AI 코치가 구성원과의 대화를 통해 업무, 사업과 연관된 목표를 설정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AI는 부서 간 협업 증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프랑스 주류기업 페르노리카는 재무부서 KPI인 수익과 영업·마케팅부서의 KPI인 시장점유율을 AI를 통해 유기적으로 관리한다. 미디어 광고 등 마케팅 지출의 변화가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AI로 동시에 평가할 수 있게 되면서, 각각의 KPI를 극대화하느라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갈등 상황에 놓이거나 더 큰 목적이나 장기적인 가치를 희생하지 않고도 둘을 연계해 최적화하는 데 주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싱가포르 DBS 은행은 고객 여정에 놓여 있는 여러 동인과 측정 지표를 AI를 통해 분석한 결과, 고객경험, 직원경험, 수익성, 위험성 등 네 가지 범주로 전략적 성과를 최적화하는 목표를 수립했다. 이에 따라 각각의 목표를 책임지는 목적 조직을 구성해 지표를 도출하고, 이를 지속 검토하는 방향으로 AI를 목표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IBM은 구성원의 과거 성과, 사내 커뮤니케이션 채널 참여 등의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퇴사 시기 등을 예측하는 AI 시스템을 개발했다. 또, 팀원이 승진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전달하고 이때 취해야 할 조치를 제안하기도 하고, 퇴사 가능성이 높은 팀원에게 대화를 시작할 만한 좋은 아이디어를 던지기도 하는 등 더 적극적인 직원유지 전략을 펼칠 수 있도록 관리자를 지원한다.
AI 활용의 향후 전망 및 과제
AI가 앞으로 이끌 변화가 집중될 영역은 성장과 몰입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미국인적자원관리협회(SHRM)에 따르면, 성과데이터와 개인의 포부를 바탕으로 최적의 경력 경로와 개발 기회를 제안하고, 자연어 처리(NLP)와 감정 분석의 통합을 통해 구성원의 몰입 문제를 감지하고 해결하는 데 AI가 더욱 적극 활용될 전망이다. 예를 들어, 슬랙, 팀스 등 협업툴에 기록된 데이터를 분석해 구성원의 감정과 협업 품질을 파악하고 이상 징후를 포착하거나 인정과 칭찬이 필요한 성과를 관리자에게 알리는 등의 방식이 활용될 수 있다.
다만 AI 도입과 관련해 인사담당자는 이중고를 겪기 쉽다. 레몬베이스가 올초 발행한 ‘평가 및 성과관리 트렌드 2025’에서도 짚었듯이, 인사담당자는 AI에 대해 HR 업무에의 도입뿐 아니라, 구성원의 ‘AI 리터러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AI 리터러시는 AI 기술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은 물론, 조직과 개인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레몬베이스가 2024년 12월 6일부터 18일까지 인사담당자 39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복수 응답)에서 ‘성과관리 트렌드 중 시급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변화’로 △HR 업무 자동화를 통한 효율성 증대에 초점을 맞춘 AI 활용 확대를 꼽은 응답자가 127명, △구성원 대상 AI 리터러시 교육 필요성 증가를 선택한 응답자가 73명에 달했다.
AI를 성과관리에 도입하는 조직의 인사담당자 역시 성과관리의 어떤 영역에 AI를 적용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관리자와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교육하는 것도 과제로 주어진다. 우선, 조직은 성과관리를 위해 수집하는 데이터와 데이터 분석 방법, 이러한 분석 결과가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 목표 달성을 위한 업무 진행상황 파악, 성과 피드백 요약 등을 통해 높아지는 가시성과 정확성, 효율성 등 AI 도입의 이점도 잘 설명하는 것이 좋다.
AI를 도입하면 평가자의 편견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나,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편향까지 답습할 가능성이 있다. AI 자체의 편향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AI는 어디까지나 ‘지원 도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당부를 덧붙인다. 성과에 대한 판단을 AI에 전적으로 맡겨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관리자의 맥락에 대한 이해, 구성원의 상황에 대한 공감에 AI의 조력이 더해질 때, 보다 공정한 성과관리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