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기업들에게 ‘생존을 위한 키워드’를 딱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들으나 마나 십중팔구 AI다. 치열한 전투의 현장인 글로벌 시장, 다들 AI를 어떻게 접목시켜서 ‘고객 경험을 혁신’할 수 있을지 밤낮으로 고민하고 있다. 동시에 조직 내에서는 AI를 활용해 ‘업무와 프로세스의 효율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생성형 AI인 챗G-PT가 처음 등장한지 3년여가 지난 지금, 기업들은 어떻게 해서든 ‘AI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침몰하지 않고 기민하게 올라타는 것이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전략의 성공은 결국 이를 실행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아무리 뛰어난 AI 전환 전략이라 하더라도 이를 실행할 조직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중요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리더란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AI 시대에 조직이 직면하게 되는 3가지 과제를 리더십이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살펴본다.
과제 1. AI 리터러시 격차로 인한 갈등이 생겨났다?
‘AI 시대에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AI가 아니라 AI를 잘 쓰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문제가 조직 내에서 현실화되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즉,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간의 ‘AI 리터러시 격차’로 인한 문제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인 SAP가 전 세계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AI 리터러시 수준이 서로 다른 구성원들끼리는 성과 평가와 보상에 대한 기대치가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고 한다. 쉽게 말해, 같은 성과를 두고도 AI를 잘 다루는 사람은 “이건 기본이지”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 정도면 대단한 거 아닌가?”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결국 조직 내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쟤는 AI 덕을 보는 건데 왜 더 높은 평가를 받지?”, “나는 밤새 머리 싸매고 하는데 AI 쓰는 사람과 비교되니 억울하다”와 같은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팀워크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AI 리터러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리더들이 AI 리터러시라고 하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즉 주니어 구성원들이 더 높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왜냐하면 AI 리터러시는 단순한 툴 조작 능력을 넘어, ‘업무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AI에 정확한 목적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성원이 ‘보고서 작성 프롬프트’를 AI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형식(마크다운)대로 입력해도,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다. 프롬프트의 형식은 맞췄지만, 업무 맥락이 충분히 반영된 내용이 아니었단 얘기다. AI 툴은 사용자가 맥락을 구체적으로 입력할수록 양질의 결과물을 출력해낼 수 있다. ‘이 보고서가 어떤 목적을 위해 쓰이는지, 최종 독자는 누구인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지’ 등을 정확히 짚어줘야 AI도 제대로 된 답을 내놓는다. 즉, AI를 통해 업무 생산성을 ‘진짜’ 끌어올리려면 ‘AI 활용 기술’과 함께 ‘업무 맥락 이해’가 더해져야 한다. 따라서 기술 활용 능력은 높지만 업무 맥락 이해도가 낮은 주니어 구성원이나, 업무 맥락 이해도는 높지만 기술 활용에 서툰 시니어 구성원은 모두 AI 리터러시가 낮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리더는 AI 리터러시를 개인의 역량 문제로 치부하며 HR 부서의 교육 프로그램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리더는 AI 기술 활용에 능숙한 주니어 구성원과 업무 맥락 이해도가 높은 시니어 구성원을 의도적으로 ‘역량 페어링(Competency Pairing)’하여 협업하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주니어는 시니어로부터 업무적 사고 과정을 배우고, 시니어는 주니어로부터 효율적인 툴 활용법을 익혀 서로의 부족한 퍼즐을 채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또한, 기술적 활용도 능숙하고 업무 맥락 이해도 뛰어난 인재에게는 조직의 난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길 수 있다. ‘AI 챔피언’과 같은 타이틀을 부여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들은 다른 구성원들에게 롤 모델 역할이 되어 학습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다. 또 이들이 다른 구성원들에게 멘토 역할을 수행하면 조직의 연대감을 강화하고 AI 격차로 인한 갈등을 예방하는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과제 2. AI 결과물에 대해 ‘만족화’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AI는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을 내놓아 업무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킨다. 하지만 여기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바로 ‘만족화의 함정’이다. AI가 너무 빠르고 쉽게 답을 내놓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비판적 사고 과정 없이 AI의 결과물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후광 효과’에 빠지기 쉽다. 예전 같으면 며칠씩 고민하고, 자료를 찾고, 동료들과 논쟁하며 ‘최적의 해결책(Optimal Solution)’을 찾으려 했겠지만, 지금은 AI가 제시한 ‘적당히 좋은 해결책(Satisficing Solution)’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충분히 괜찮은 답’에 만족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가장 좋은 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노력 대비 괜찮은 수준이라면 거기서 그만 생각의 에너지를 끊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만족화라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해 성급하게 받아들인 AI 결과물이 만일 ‘환각(Hallucination)’ 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 리스크에 대한 결과는 오롯이 조직이 감당해야 한다. 얼마 전 이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실제 사례가 있었다. 세계적 회계 컨설팅 그룹 딜로이트가 호주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AI가 지어낸 가짜 판결문 등 오류가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딜로이트는 오류를 인정하고 보고서 작성 용역비를 일부 돌려주기로 했다. 문제는 금전적 손해가 다가 아니다. 신뢰가 생명인 컨설팅 업에서 이 같은 사건은 향후 브랜드 파워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에 언론에서는 ‘대형 컨설팅 회사 대신 챗G-PT를 구독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여론의 반응을 다루며 이번 사건이 AI 기술 사용에 따른 위험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우리 조직에도 이런 불상사가 없으려면 AI 시대의 리더는 ‘일을 잘하게 만드는 사람’을 넘어, AI의 결과물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교차검증자’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 구성원이 AI가 만든 결과물을 가져왔을 때 단순히 “괜찮네”라고 넘어가지 말고 한 번 더 확인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4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1) 본인의 생각이나 결론에 반대하는 관점이나 비판적 의견도 AI에게 요청했는지 2) 같은 질문을 말만 바꿔서 다시 물어봤을 때 AI의 답이 일관됐는지 3) AI가 보여준 숫자나 표가 맞는지 직접 계산해 보거나 예시 데이터를 넣어 확인해 봤는지 4) AI가 말한 핵심 내용이나 숫자를 다른 출처에서도 확인해 보았는지 그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리더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이 서로의 AI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개선하는 토론 문화도 적극 조성해야 한다.
과제 3. AI가 벌어준 시간을 어떻게 쓰도록 할까?
AI를 활용해 단순·반복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게 되면 구성원들에게 여분의 시간이 생겨난다. 이 시간은 어떻게 쓰이는 게 바람직할까? 스탠퍼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AI를 활용해 시간을 아껴 ‘더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한다고 한다. 문제는 마음만 그렇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 유휴 시간을 어영부영 흘려보내거나 아니면 기존에 하던 일을 계속 더하는 식으로 썼다.
따라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유휴 시간을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도전과 혁신에 투자하도록 동기부여하는 것이다. AI가 정형화된 업무를 맡을수록, 인간은 창의적 문제 해결, 전략 수립, 공감 등 인간 고유의 영역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해, AI 시대의 리더십은 기존의 ‘관리 중심적’ 리더십에서 벗어나 구성원의 잠재력을 북돋우는 ‘사람 중심적’ 리더십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구성원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을 때, 리더는 이 아이디어를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대신 ‘사고를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종종 초기에는 거칠고 불완전한 ‘저해상도 아이디어’의 형태를 띤다. 따라서 리더는 질문과 격려를 통해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고해상도 아이디어’로 구체화하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새로운 도전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실패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려면 리더는 실패를 ‘관리해야 할, 부주의함에 의한 실패’와 ‘장려해야 할, 실험적 시도에 의한 실패’로 명확히 구분해 줘야 한다. 그리고 좋은 실패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들이 AI가 절약해 준 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 즉 조직의 미래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도전 과제에 쓰게 될 것이다.
기술이 아닌, 기술과 사람의 조화에 달린 미래
AI 시대의 혁신은 기술 도입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과 사람 사이의 조화에 달려 있다. 즉, ‘AI(Artificial Intelligence)+HI(Human Intelligence)=ROI’라는 공식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조직의 HR 담당자라면 AI라는 환경 속에서 인간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리더십을 조직 전체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그래야 AI 대전환에 성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뤄지는 단단한 문화적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