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세상의 언어가 된 지금, 사람들은 일제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전략의 첫 줄에는 AI가 올라온다. 언론에서는 AI가 일의 판을 바꾼다는 문장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내보낸다. “AI를 쓰지 않는 기업은 5년 뒤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전망도 흔하다. 실제로 눈앞에서 기계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인간이 몇 시간 걸릴 일을 몇 초 만에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이 진짜 바뀌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런데 기업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희망찬 전망과는 사뭇 다르다. “AI를 도입했는데, 이상하게 예전보다 더 바쁘고 피곤해졌어요!” AI가 일을 대신 해줄 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오히려 일이 더 많아진 듯하다. 이는 단순한 체감이 아니다. 글로벌 프리랜서 플랫폼 업워크(Upwork)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77%는 AI 도입 후 오히려 업무량이 늘었다고 답했다.1)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검토하고 보정하거나, 새로운 툴을 익히는 과정에서 추가 업무가 생겼기 때문이다. 자동화의 약속 뒤에는 ‘검증’이라는 새로운 업무가 생겼고, 효율의 이면에는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미세한 조정의 시간이 숨어 있었다. 사실 이런 일은 낯설지 않다. 1990년대 말, 인터넷이 막 확산되던 시기에도 웹사이트만 있으면 매출이 폭발할 거라는 환상이 있었다. 많은 소매 기업이 앞다퉈 홈페이지를 열었지만, 고객은 복잡한 UI와 불편한 결제 시스템 때문에 장바구니를 포기하곤 했다. ERP 시스템도 마찬가지였다. ERP만 깔면 모든 게 자동화된다는 홍보에 많은 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이 매뉴얼을 붙들고 밤새 데이터를 입력해야 했다. IT 투자는 늘었지만, ROI는 기대에 못 미쳤다. 시스템 설치 자체보다, 프로세스와 인력 운영 방식의 재설계가 있을 때만 효과를 발휘했다. 기술은 일의 속도를 늘 앞당겼지만, 그 속도 속에 있는 사람의 리듬은 매번 다시 맞춰야 했다. 인공지능도 그렇다. AI는 분명 강력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변화가 완성되지 않는다. 기술이 일을 바꾸는 순간, 사람의 일도, 일의 구조도, 업무의 흐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은 효율이 아니라 피로를 만든다. AI가 진짜 가치를 가지려면, 기술과 함께 일하는 사람의 역할이 다시 그려져야 한다.
사람과 기술을 잇는 설계자, HR
결국 기술의 과제는 ‘도입’이 아니라 ‘적용’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부서가 HR이다. 2026년을 눈앞에 둔 지금, HR이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AI를 도입할까, 말까?”가 아니라, “사람과 기술이 함께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설계할까?”이다. 많은 사람이 AI 문제를 기술로 정의하지만 기술은 언제나 ‘결과’를 만드는 도구이지, ‘문제’를 정의하는 주체는 아니다. 예를 들어 고객 불만의 원인이 “AI 상담 봇이 없어서”가 아니라, “환불 과정이 너무 복잡하게 느껴진다”는 데 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AI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프로세스 단순화다.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면 기술은 늘 엇나간다. HR은 이 지점을 바꿔야 한다. 문제를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에서부터 정의하는 역할, 그것이 HR의 본질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전환은 일을 과업(Task) 단위로 바라보는 관점의 이동이다. 우리는 흔히 ‘직무(Job)’ 중심으로 일을 정의하지만, 예를 들어 ‘마케팅 매니저’라는 직무 안에는 이미 수십 개의 세분화된 과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중에는 데이터 정리나 리포트 분석처럼 AI가 잘할 수 있는 일도 있고, 협상이나 감성적 설득처럼 사람이 훨씬 잘하는 일도 있다. 이렇게 일을 과업 단위로 쪼개면, AI와 사람이 어떻게 협력할지가 보인다. 세계적인 컨설팅사 맥킨지는 이를 Task-Level Redesign이라 부르며, 이를 AI 시대의 핵심 전략으로 꼽는다.2) AI를 단순히 직무 대체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HR의 역할은 달라진다. 채용과 보상만 관리하는 부서가 아니라, 일의 방식을 설계하는 ‘워크 디자이너’가 된다. 어떤 과업을 AI에 맡기고, 어떤 과업을 사람이 맡을지, 직원 교육은 어떻게 이뤄질지를 설계하는 것이다. HR은 이제 사람과 기술이 함께 일하는 구조를 디자인하는 부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올라가야 하는 것이 거버넌스다. AI를 도입한 기업들이 공통으로 부딪히는 벽이 있다. “우리 회사에서 이 AI 도구를 써도 괜찮을까?”이다. AI 사용 규정이 모호하고 책임이 불분명하면 직원은 불안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AI 거버넌스다. ‘AI 스프롤(AI sprawl)’이라는 말이 있다. 부서마다 다른 도구를 들여오고, 인증 기준이 제각각이며, 보안 규칙이 뒤늦게 덧대지는 현상이다. 마치 집 안에 콘센트를 닥치는 대로 늘린 뒤, 나중에 전기 배선을 점검하려고 하니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상황과 같다. 한 글로벌 보고서는 이를 “AI 거버넌스 격차는 시한폭탄”이라 경고했다. 기술은 앞서가지만 제도와 책임 체계는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3) AI 거버넌스는 특정 부서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IT만 담당하면 사람의 경험이 놓치기 쉽고, HR만 주도하면 기술적 이해가 부족하다. 윤리·법무·보안·HR·IT가 함께 앉아 설계해야 하며, 그 중심에는 HR이 있어야 한다. HR은 사람이 안심하고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부서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길, 하나의 방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