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제104대 총리로 선출되면서 일본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다카이치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국방, 첨단기술, 사이버 보안, 핵에너지 등 전략적 산업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출과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정책 기대감 속에 시장은 재정 및 투자 확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반응했고, 주가는 사상 처음으로 장중 5만 엔을 돌파한 데 이어 10월 31일에는 역대 최고치인 52,411엔을 기록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정책인 ‘사나에노믹스(Sanaenomics, サナエノミクス)’는,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의 긴축 재정 기조에서 벗어나 아베노믹스식 적극적 재정 운용으로 전환해 강한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제안한 사나에노믹스는 ‘대담한 금융완화’와 ‘기동적인 재정출동’이라는 두 축은 아베노믹스와 동일하지만, 세 번째 화살을 ‘민간 활력을 끌어내는 성장전략’에서 ‘대담한 위기관리 투자 및 성장투자’로 전환한 점이 특징이다. 이는 정부가 주도해 분야별로 관민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미래 성장과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구상이다. 즉 사나에노믹스의 핵심은 ‘책임 있는 적극적 재정’이라는 개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단기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확대가 아니라, 10 ~ 20년 후 일본 경제를 더욱 견실하게 만들기 위해 성장 잠재력이 높은 분야에 재원을 계획적으로 배분하겠다는 전략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반도체와 AI, 에너지, 방위 등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분야에 대한 중점 투자를 비롯해, 교육·인재 육성, 지방의 산업 기반 정비 등 국가 경쟁력과 국민 생활 안정을 떠받치는 영역에 재정 지출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10월 24일 오후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첫 소신 표명 연설에서 “성장률 내에서 정부 부채 증가율을 통제하고,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을 낮춤으로써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고, 시장 신뢰를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는 선거 이전부터 GDP 대비 정부 순부채 비율을 낮추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혀왔다. 여기서 말하는 순부채(Net Debt)란 정부의 전체 부채에서 정부가 보유한 금융자산을 차감한 값으로, 정부의 실질적 재정 건전성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일본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36.1%로 G7 국가 가운데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GDP 대비 정부 순부채 비율은 133.9%에 그쳐, 다른 G7 국가들과의 격차는 크게 축소된다. 일본의 GDP 대비 정부 순부채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정부가 막대한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연금 적립금과 외환보유액을 들 수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기탁한 국민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는 GPIF(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의 2024년 말 적립금은 무려 258.7조 엔에 달한다. 또한 2025년 10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1조 3,473억 달러(약 207조 엔)에 이르고 있다. 또한 최우선 과제인 물가 상승 대책과 관련해 다카이치 정권은 ‘생활의 안전 보장’을 내세우며, 물가 상승으로부터 국민의 생활과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위한 첫 조치로 일본 정부는 가솔린 잠정세율(리터당 25.1엔)을 올해 12월 31일부로 공식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가솔린 잠정세율은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시절 도입된 제도로, 제7차 도로정비 5개년 계획(1973~1977년)의 재원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당시 고도 경제성장기에 따른 인프라 수요의 급증과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이후의 재정 악화가 그 배경으로 작용했다. 일본 정부는 국제 유가 상승과 엔화 약세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가솔린 잠정세율 폐지로 인한 휘발유 가격 인하가 가계의 소비 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세수 감소에 따른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 또한 여전히 크다. 일본 정부는 이번 잠정세율 폐지로 인해 연간 약 1조 엔 규모의 세입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체 재원 마련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정책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중·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근로소득 세액공제(Earned Income Tax Credit)’의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국민의 소득을 파악한 후, 그 수준에 따라 감세와 급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소득세 납부액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하고 공제되지 않은 부분은 급여 형태로 보전하는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제도를 실제로 도입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소득을 어떻게 정확하게 파악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문제다. 한국과 달리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없는 일본에서는 현재 국가가 개인의 소득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체계가 미비한 실정이다. 코로나19 이후 보급률이 높아져 2025년 10월 기준 79.9%에 이른 마이넘버카드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근로소득 세액공제 도입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카이치 총리는 ‘연수의 벽’의 상향 조정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기존 103만 엔에서 올봄 160만 엔으로 인상되었으나, 다카이치 총리는 “물가에 연동하는 형태로 추가 인상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연수의 벽은 일정 수준의 연소득이 넘으면 소득세와 사회보험료 등이 발생해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제근로자 등이 근무시간을 조정해 추가 근무를 포기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는 개인의 소득을 늘리고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득세가 발생하는 수입의 기준을 기존의 103만 엔에서 160만 엔으로 끌어올려, 2025년부터 적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 정부는 에너지 자급률 100% 달성을 목표로, 원자력 발전 재가동과 태양광 등 국산 에너지의 보급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심화되는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근로시간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경제계의 목소리에 부응할 수 있는 노동제도 개혁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다카이치 정권의 경제 대책에는 중장기 성장 전략, 즉 구조 개혁과 관련한 새로운 시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재정 지출의 확대에 따라 재정 파탄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완화적인 금융정책이 지속될 경우, 외환시장에서 엔화 약세가 심화되어 수입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단기적으로 경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쌀과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 가격의 안정이나 하락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 경제를 다카이치 총리가 어떻게 이끌어갈지, 사나에노믹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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