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출간된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의『Lean In : Women, Work, and the Will to Lead』는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다. 이 책은 비록 출간된 지 한 달 남짓 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아마존 등 서점 판매순위 상위권에 올라있을 뿐 아니라 신문, 방송 등 각종 대중 매체에 서평이나 저자 인터뷰 등이 거의 매일 소개되고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이렇게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인 샌드버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페이스북(Facebook)의 최고 운영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로서 Google 및 미국 연방재무부의 고위직을 지낸 그야 말로 성공한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샌드버그가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여타 다른 성공한 여성들의 것과는 좀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성공한 여성들은 자신의 성공을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포장하면서, 누구든지 자신처럼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 넣는데 주력하고 있는 반면, 샌드버그는 비록 그녀 자신이 성공한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에게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을 매우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을 출간하기 전 그녀는 이미 “왜 성공한 여성 리더들이 많지 않은가?”라는 TED 강연을 통해 이러한 현실비판적인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그녀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차별, 즉,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는 현상은 시대에 따라, 혹은 국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유리천장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어 온 개념으로서, 주로 여성이나 소수인종들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누구든지 높은 리더십 포지션 (기업에서의 임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올라가는 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는 현실을 빗댄 표현이다. 미국사회가 여러 민족과 인종들이 섞여 있고, 또한 이들이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사회적 계층을 이루고 살아왔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인종이나 피부색에 대한 차별의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샌드버그의 주장에 따르면, 다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보다 더욱 심각하게 그리고 강하게 남아 있는 차별이 바로 남녀 성차별이라고 한다. 과연 성차별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수치들을 보면 명확해진다. - 전세계 195개의 독립국가 중, 국가 최고 지도자가 여성인 나라는 17개에 불과하다. - 전세계적으로 국회의원의 20퍼센트만이 여성이다. - 포춘500대 기업 CEO 중 21명만이 여성이다. - 이들 기업의 임원 중 14 퍼센트, 또 이사회(board of director) 멤버 중 17퍼센트만이 여성이다. 유리천장 효과(glass ceiling effect)를 학술적으로 검증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코터(David Cotter)에 따르면, 실제로 조직에서 여성들에 대한 평가는 직무와 관련성이 낮다(low job-relevant)고 말한다. 즉, 여성들이 승진을 하고 고위직에 발탁되는 비율이 낮은 것은 그들에 대한 평가가 직무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기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여성들의 경우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 즉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얼마전, 경제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에서는 OECD 국가들의 유리천장지수 (Glass Ceiling Index)라는 것을 발표한 바 있다. 유리천장지수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및 기회의 평등정도를 수치화 한 것으로서 남녀간의 대학생 비율, 여성의 노동참여율, 남녀간의 임금격차, 고위직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의 비율, 육아비 부담 등 5가지 항목을 근거로 하였다. 그 결과 OECD 26개국 중에서 뉴질랜드가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하여 남녀간의 평등이 가장 잘 실현된 국가로 지목되었으며, 미국은 조사대상국가들 중 중간 정도인 12위를 차지하였다. 한국은 조사 대상국가 중 가장 낮은 유리천장지수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와 같은 유럽의 복지국가들, 혹은 이 조사에서 4위를 차지한 캐나다에 비해서 현저히 열악한 여성 차별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를 최초로 명문화 한 법률은 1964년의 인권법(Civil Rights Act of 1964)이다. 이는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국가와 같은 항목들과 더불어 성별에 따른 고용상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기본법이다. 이 밖에 미국에서는 임신차별금지법(The Pregnancy Discrimination Act of 1978) 및 동등임금법(Equal Pay Act of 1963)과 같은 법률을 통해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부당한 차별을 막고, 궁극적으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 받고, 같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마련되었다. 먼저 임신차별금지법은 임신한 여성도 임신을 하지 아니한 다른 근로자들과 동일하게 대우받아야 함을 규정하고 있으며, 동등임금법은 본질적으로 같은 종류의 일, 즉 동일한 기술, 노력, 책임이 요구 되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남녀 근로자의 임금이 같아야 함을 규정하고 있는 법으로서, 성별에 따른 임금의 격차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한 제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제도들은 가시적인 차별을 금지하는 정도의 소극적 수단이라는 한계가 있다. 남성과 여성간의 고용상의 차별은 여성 노동에 대한 가부장적인 시각을 통해 재생산되는데, 이렇게 여성에 대한 편견이 지속되는 한 아무리 제도를 통해 규제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편견은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한 가지 예로서 콜로라도 대학(University of Colorado) 경영대학의 핵크만(David Hekman)이 수행한 연구를 보면,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백인남성이 이야기 할 때 더욱 높은 신뢰도를 보였다고 한다. 또 직업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조직의 상층부 고임금 직종들은 남성에게, 이와는 반대로 승진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저임금 직종은 여성들에게 적합하다는 고정관념이 매우 강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더욱이 미국에서도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도 보편화 되어 있고, 특히 육아에 대한 부담이 남성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조직의 일에 사용해야만 하는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따라서 이렇게 사회적ㆍ문화적으로 형성되어 온 유리천장은 한두 가지 제도를 고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고,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보다 근본적인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간파하고, 이의 변혁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운동이 페미니즘(Feminism)이다.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은 여성이 경험하고 있는 사회, 경제적인 억압을 인식하고 이러한 차별의 구조적 근원을 탐구한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필연적으로 그러한 구조적 억압을 낳은 원인을 철폐할 것을 요구함으로서 하나의 사회적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1900년대 초반 여성 참정권 운동(Women's Suffrage Movement)과 1960년대의 동등임금운동(Equal Pay Movement), 혹은 낙태권(abortion rights)등은 그동안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던 여성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으로 발전돼 왔다.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결코 여성에 대한 동정심이나 남성들의 자비심에 의해 확보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투쟁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전리품으로 인식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의 사례로서 릴리레드베터법(Lily Ledbetter Fair Pay Act of 2009)을 들어 볼 수 있다. 이 사례는 굿이어타이어(Goodyear Tire)에서 일하던 릴리 레드베터라는 여성근로자가 1998년 퇴직을 앞두고 자신이 이 회사에 근무할 때 받았던 임금이 남성 근로자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면서 이것이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인권법을 위반하였다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 소송을 제기한 시점이 고용주의 차별적 행위가 최초로 발생했던 시점, 즉 임금을 처음 지급했던 시기에서 180일이라는 공소시효(statue of limitation for filing)를 초과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었다. 이 판결에 대하여 당사자 뿐 아니라 노조나 노동단체에서 강력히 반발하였고, 민주당(Democratic Party) 등 정치권 일부에서도 공소시효의 기산시점이 최초의 차별행위가 시작되었던 때가 아니라 임금이 지급되는 매시점에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대체입법을 추진하였다. 이렇듯 이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공소시효의 기산시점을 둘러싼 논쟁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차별이 여러가지 법적, 사회적 제도에 의해 오히려 정당화 되고 있는 노동현실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 간 투쟁의 성격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오바마 정부가 2009년 릴리레드베터법의 입법을 주도함으로서 이 사안은 노동계의 승리로 막을 내렸는데, 이 사례를 통해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서 매우 고통스러운 투쟁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의 사회적 성취는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라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철폐함으로서 확보될 수 있다고 하는 샌드버그의 주장은 따라서 또 다른 형태의 페미니즘적 선언(Feminist Manifesto)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샌드버그 본인은 이러한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 듯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유리천장을 철폐하기 위한 샌드버그의 제안은 기존의 페미니스트들과 사뭇 다르다. 그녀는 각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유리천장’을 먼저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예를 들어 “성공을 위해 일하라,”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진정한 (남성)파트너를 확보하라,” “절대로 (직장을) 그만두지 말라”와 같은 것들이다. 즉, 기존 페미니스트들처럼 기존체제의 구조적 개혁을 주장하기 보다는 오히려 각 개인들이 이러한 체제 속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애초에 그녀가 유리천장이란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주장한 것에 비추어 보았을 때 실망스러운 제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현재의 구조와 시스템의 수혜자 일 수밖에 없는 성공한 여성으로서의 한계라고 볼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사회구조가 결코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의 인식에 기반하여 타협을 택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오늘도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차별과 맞서고 있는 여성 근로자들, 특히 OECD 국가 최하위의 차별적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한국의 여성 근로자들의 힘겨운 땀방울에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 2013년 4월호, 제98호
- 입력 -0001.11.30 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