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저성장 시대’를 맞았다. 미국의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고성장 시대의 환상은 깨졌다. 저성장 시대를 준비하라”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이제 우리 기업은 ‘저성장기’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른바 생존전략 수립에 대한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한국기업의 도전과제에 대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 우리와 유사한 상황을 겪은 일본의 사례를 분석하는 일은 의미 있을 것이다. 한때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 중 하나로 눈부신 성장을 보이면서 영원히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일본도 저성장기에 접어든 지 20년이 넘어가고 있다. 일본 기업들 역시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저성장 환경에서 1승 9패 전략으로 끊임없이 혁신과 도전을 추구한 기업이 있었다. 또한 숨어 있던 틈새시장을 공략하거나 일본 너머의 넓은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면서 불황 속 돌파구를 찾은 기업도 있었다. 반면 일본 경제를 이끌던 전자기업은 리더십과 혁신을 잃어버리고 투명성이 결여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 장기 저성장기의 패자 : 전자업체 일본 전자업체 하락의 3대 요인은 리더십, 신속한 의사결정, 혁신의 부재 1990년대를 전성기로 전세계 전자산업과 디지털 시대를 주도해온 일본 전자업계는 2000년대 초반에 들어 하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일본 전자업계 ‘빅3’로 불리는 소니와 파나소닉, 샤프의 순이익은 급격한 하락세를보이고 있다. 소니의 경우 2007년 3,600억엔 순이익에서 2011년 4,500억엔의 손실을 내는 등 2011년 기준 소니, 파나소닉, 샤프 3사 평균 5,300억엔의 손실을 냈다. 또한 이들 3사의 시가총액도 2007년 상반기 16조엔에서 5년여가 지난 2012년 11월 기준 2조엔으로 87.5% 급락하였다. 일본 전자업체의 몰락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리더십의 부재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전자업계에서 리더는 현재와 미래 시장의 트렌드를 빠르게 예측하고 이에 대한 전략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 전자업계 리더들은 디지털화에 대한 혁신적인 시각과 접근을 통한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고 타국의 경쟁업체가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할 때 내수시장에안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둘째, 신속한 의사결정의 결여이다. 일본 전자업계는 장기적인 성과를 목표로 전략을 수립하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과감한 투자 결정 이후 불거질 수 있는 책임 회피를 위해 관료화된 의사결정 체계를 고집했다. 복잡하고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는 해외시장 진출이나 제품개발에서의 기회를 놓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일례로 소니는 2004년 세계 최초 LED TV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투자와 전략 추진에대한 의사결정을 망설였다. 그 결과 후발주자인 한국에 LED 시장을 빼앗겼다. 셋째, 혁신의 부재이다. 일본 전자업체는 비용절감과 수익성에 치중한 반면 혁신을 위한 투자는 간과했다. 이는 브라운관 기술 개선에만 집착하다가 평판 TV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사례로 증명된다. 당시 일본 전자업계는 내수시장만으로도 높은 수익을 내다보니 세계적인 흐름을 외면하고 안주에 빠져 기술개발과 생산과정의 혁신을 무시했던 것이다. 혁신을 입히지 않은 내수형 제품에 대한 고집은 결국 자국의 전자제품 시장까지 빼앗기는 결과를 낳았다. 저성장 시대, 기업 투명성은 기업의 흥망을 좌우 장기 저성장 시대에 기업은 많은 위기와 또 그에 따르는 유혹을 만나게 된다. 이 가운데 한 번의 어긋난 선택이 기업의 흥망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는 기업 투명성은 선택의 요소가 아닌 기업 흥망을 좌우하는 필수 요소로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 그에 대한 사례로 올림푸스의 회계부정 사건을 들 수 있다. 92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인정을 받았던 올림푸스는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주가 폭락을 너머 회사의 기반이 흔들렸다. 2011년 10월, 올림푸스의 前사장 우드퍼드는 분식 회계 사실을 폭로했다. 조사 결과, 과거 1990년대 인수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1조6,000억원의 투자 손실을 은폐하기 위해 고위 경영진 주도로 회계 장부를 조작했음이 밝혀졌다. 2011년 11월 8일 올림푸스의 타카야마 슈이치 사장은 유가증권 투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인수합병 자문료 등을 이용했다고 인정했다. 이는 일본 최대 회계부정 사건으로 ‘일본판 엔론 사태’로 비유되며 전세계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올림푸스의 회계부정 사건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주가폭락과 그에 따른 투자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금융청의 과징금, 무엇보다 회사 이미지의 추락이 매출감소로 이어져 올림푸스는 회사의 존립 자체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더 나아가 일본 언론들은 올림푸스의 분식회계와 유사한 사례가 다른 일본 기업들에도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며 본 사건으로 인해 일본 전체 기업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다고 평가했다. 일본 장기 저성장기의 승자 일본전산, 인재경영과 본업 중심의 M&A를 통해 매출액 15배 성장 일본 장기 저성장기의 패자와는 달리 저성장기를 극복하며 지속성장하는 일본 기업들도 적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전산이다. 일본전산은 1973년 교토의 시골 창고에서 직원 4명의 소규모 전자 모터업체로 시작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은 특유의 인재경영을 펼치며 M&A를 통한 기술 확보를 기반으로, 일본전산을 설립 39년 만에 계열사 140개를 거느린 글로벌 모터 전문 제조업체로 성장시켰다. 일본전산의 인재경영의 특징은 “인재는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이다”라는 인재양성 철학에 있다. 이를 기반으로 직원을 채용한 뒤 혹독한 트레이닝을 실시했다. 강한 인내심과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 신입사원을 실전현장에 바로 투입했으며, 성과위주의 철저한 MBO(Management by Objective)를 실시하여 목표와 성과를 달성시켰다. 이러한 노력은 세계 초인류 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일본전산은 또한 차별화된 M&A 전략을 수행했다. 1984년부터 매년 1건 이상의 인수를 추진하여 2012년까지 인수한 총 35개의 회사를 모두 경영 정상화시켰다. M&A 전략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먼저 인수 대상 분야와 기업에 대해 철저히 사전준비를 한 후, CEO가 인수 대상기업 발굴에 직접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기술력은 있지만 경영이 악화된 기업에 한정하여 M&A를 진행했다. 인수한 기업에는 일본전산의 기술을 신속히 전수하고 내부 생산비율 향상, 공동설계, 공동구매, 원가관리 강화 등을 통해 피인수 기업의 수익성과 본사의 수익성을 함께 향상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는 적극적 통합전략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장기 저성장기에도 매출액이 15배 성장하였으며, M&A를 통해 기술의 디팩토 스탠더드(De Facto Standard)를 확보하면서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창출했다. 특히 일본전산은 본업인 모터 관련 기술력 확보를 위해 본업 중심의 M&A를 실시하여 전체 매출의 70%가 모터 사업에서 창출되고 있다. 특히 하드드라이버용 모터부문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70%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패스트리테일링, 리더의 도전정신과 제품과 유통의 혁신 두 번째 성공기업은 유니클로 브랜드 등을 보유하고 있는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이다. 작은 양복점에서 시작한 패스트리테일링의 성장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시가총액 추이를 분석한 결과, 경쟁업체는 1990년 대비 2012년 97% 감소한 반면, 패스트리테일링은 1995년 기점으로 1,361%라는 높은 증가를 보였다. 유니클로는 1984년 6월 히로시마에 1호점을 시작으로 현재 8개 국가에 836개 점포를 거느리는 글로벌 체인으로 성장했다. 사양화된 의류업에 후발주자로 진출한 패스트리테일링의 놀라운 성장에는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1승 9패 전략’의 도전정신과 제품 및 유통에 대한 혁신이 있었다.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은 상징적이다.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1997년 시장 확대를 목표로 ‘패이크로’, ‘스포크로’ 라는 브랜드 의류를 판매하다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또한 2002년유기농 야채판매점을 했다가 28억엔의 손실을 보고 사업을 중단했던 경험도 있다. 이러한 실패에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난 1승 9패라도 좋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내 성공비결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도전정신을 지녔다. 제품 혁신도 있었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폴라플리스 재킷 ‘후리스’, 보온내의 ‘히트텍’ 등 저가이면서도 고기능성 제품을 출시하여 제품의 혁신을 이루어 냈다. 유니클로의 폴라플리스 재킷 ‘후리스’는 일본경기 침체가 심각했던 1998~2000년 당시 3,650만장이 팔려나가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웠고, ‘히트텍’의 경우 2008년 가을에 출시되어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휩쓴 불황기에도 2,800만장이 판매되었다. 결과적으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2009년 8월 결산에서 1년간 매출 6,850억엔, 영업이익이 1,086억엔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의 실적을 냈다. 유니클로의 또 다른 비결은 중간유통의 혁신이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자사에서 제조한 상품을 직영 매장에 공급 및 직접판매하는, 제조업과 유통업의 통합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앤 혁신으로 원가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고품질의 제품을 저가에 제공하는 것이 가능했다. 다이킨, 차별화된 글로벌화로 세계 에어컨 시장 평정 또 다른 일 본 의 성공기업으로는 차별화된 글로벌화(Globalization)로 고성과를 달성한 다이킨 공업을 꼽을 수 있다. 다이킨은 에어컨 및 공조기기 회사로 1990년대 내수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일본업체와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였다. 이를 통해 2006년 이후 해외 매출이 내수를 압도, 해외 매출 비중은 1994년 14%에서 2011년 61%로 증가하여 성공적인 글로벌화를 이루어 냈다. 그 결과 다이킨은 글로벌 유수 에어컨업체로 등극할 수 있었다. 다이킨의 차별화된 해외시장 진출 전략은 첫째, 중저가 시장의 공략이다. 고가 시장을 집중 공략한 소니, 도시바 등의 가전업체와 달리 다이킨은 신흥국 중소규모 도시를 집중 공략하여 중저가 제품으로 시장을 파고들었다. 부품 현지조달과 기능 간소화는 이러한 ‘저가격 실현’을 가능하게 했다. 해외시장 진출 두 번째 전략은, 현지기업을 인수하거나 조인트벤처를 체결한 부분이다. M&A에 소극적이던 일반적인 일본기업에 반해 다이킨은 해당국 기업과의 M&A 또는 조인트벤처를 통해 현지 유통망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다. 2006년 말레이시아의 종합 공조 업체인 OYL을 2,320억엔에 인수해 매출 1조엔이 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또한 중국 대규모 가정용에어컨 제조기업인 그리(Gree) 전기와 직접 경쟁 대신 2008년 합작사 2개를 설립해 중국 공급망을 단기에 확보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전략은 적극적인 현지화이다. 적지 않은 일본기업은 해외 진출 시 현지화 의지가 부족한 편이었지만 다이킨은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을 펼쳤다. 당시 많은 일본기업들이 중국시장을 수출거점으로 개편한 것과 달리 다이킨은 현지 인력 확대및 주요 상품 개발, 마케팅 권한을 이양하여 현지화를 심화시켰다. 이러한 전략은 중국시장에서의 점유율이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일본기업의 실패요인은 ‘경직성’, 성공요인은 ‘유연성’ ‘위기는 기회다’라는 잘 알려진 말이 있듯이, 앞서 살펴본 일본의 승자 기업은 장기 저성장기라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고 성장했다. 반면 일본의 패자 기업은 구조적 관성, 관료주의, 복잡한 시스템 등의 실패요인으로 인해 기업의 ‘경직성’을 겪은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기업의 몰락을 야기시켰다.

일본 전자업체의 구조적 관성은 외부적으로는 기업이 변화하는 환경을 인지하지 못하고 과거의 경영방식이나 관행을 지속하게 만들었다. 내부적으로는 관료주의적 풍토와 권위적인 조직체제를 만들어 도전과 혁신을 등한시한 채, 기존 방향대로만 조직을 이끌어 가는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관료주의와 복잡한 시스템으로 인해 보고체계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되었고, 이는 기업들이 빠르게 의사 결정을 하고 변화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결국 빠른 대응이 더욱더 요구되는 저성장기에 일본기업들은 구조적 관성, 관료주의, 복잡한 시스템으로 인해 기업이 경직성을 초래했고, 결국 경쟁 시장에서 점차 도태되게 된 것이다. 또한 올림푸스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장기 저성장기에는 기업 투명성이 더욱더 필요하다. 적잖은 기업이 저성장 시기에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음에 따라 횡령, 분식회계 등과 같은 유혹을 받는다. 만약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면 기업의 신뢰가 무너지게 되고, 급기야 기업의 몰락까지도 바라보게 될 수 있다.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기업은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쌓지 못하게 되고, 신뢰를 얻지 못한 기업들은 도산의 위기까지 이를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회계분식, 비리, 불공정 관행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통해 한 단계 높은 윤리 경영을 실천하여 소비자들이 신뢰할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반면, 성공한 일본기업의 요인을 살펴보면, 도전과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 인재경영, 차별화된 글로벌화, 기술중심의 M&A가 꼽혔고 이는 복잡한 환경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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