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최근 정부는 청년 고용대책의 일환으로 ‘스위스식 도제제도’를 들고 나왔다. 즉, 하루나 이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3~4일은 기업 현장에서 실습을 하는 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단기적으로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직을 늘리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반드시 대학을 졸업해 꼭 대기업에 가야 한다’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번 대책도 성공을 장담하기는 일러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박영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KRIVET, 이하 직능원)은“이번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부와 사회 전반의 총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며 “벌써부터 갖은 우려와 염려가 적지 않지만 산을 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뿌리 깊은 학력중심의 노동시장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며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학습모듈 및 국가역량체계(NQF)가 구축돼야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력수급 간 미스매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박 원장을 만나 능력중심사회 구현을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되는 NCS에 대해 들어 봤다. 다음은 박 원장과의 일문일답. 먼저, 구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직능원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소개해 달라. ■ 직능원은 1997년에 설립된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국책 연구기관으로, 국가 인재개발과 직업교육훈련에 대한 정책연구를 비롯하여 자격제도,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개발, 직업훈련기관 및 훈련과정에 대한 평가, 국가공인 민간자격 관리 및 운영, 직업·진로정보 및 상담 서비스 등의 다양한 연구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에 있어서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체제 구축과 자유학기제 관련 진로체험에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능력중심사회 만들기’를 목표로 개발해 온 NCS 254개와 학습모듈 468개가 얼마 전 공개됐다. NCS가 무엇이고, 학습모듈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설명해 달라. ■ NCS는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기술·소양 등의 내용을 국가가 산업부문별·수준별로 체계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분류 가능한 직무 833개 가운데 국가고시로 자격관리를 하는 분야를 제외한 777개의 NCS 개발을 올해까지 완료할 계획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완·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NCS학습모듈은 직무를 구성하는 10개 안팎의 능력단위들을 교육훈련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이론 및 실습과 관련된 내용으로 풀어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NCS가 현장의 ‘직무 요구서’라고 한다면, NCS 학습모듈은 NCS의 능력단위를 교육훈련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한 현장 매뉴얼, ‘해설사’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NCS 학습모듈은 구체적 직무를 학습할 수 있도록 이론 및 실습과 관련된 내용을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NCS와 NCS 학습모듈을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면. ■ 예컨대, NCS 노무관리 직무를 보면 노사관계 계획, 노사관계 교육훈련, 교섭준비 등 10개의 능력단위가 나온다. 그 중 단체교섭이라는 학습모듈을 보면 학습 1·2·3 단계별로 단체교섭 규칙 제정하기, 단체교섭 진행하기, 협약 체결하기 등의 능력단위 요소들이 제시돼 있다. 학습모듈의 내용은 이 요소별로 노동3권, 단체교섭권, 전임자급여금지 등 필요지식, 수행(학습)내용, 교수·학습 방법 및 평가들을 담고 있다. NCS가 기업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다고 보는가. ■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기를 쓰고 대학에 간다. 졸업하면 또 기를 쓰고 대기업을 노크한다. 자신의 능력이나 전공 따위는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 기업은 이런 사람들을 인재로 보지 않는다. 스펙은 스펙일 뿐이라며 직무능력을 본다. 이러니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취업준비생은 ‘열심히 했는데 왜 안 되지’라고낙담하고, 기업은 ‘바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체념한다. NCS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NCS에는 직무능력과 수행성·기준이 들어 있다. 따라서 NCS 대로 교육훈련을 받았다면 직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된다. 교육훈련의 목표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바뀌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선 NCS가 제시한 직무능력의 수준과 필요한 교육훈련, 자격, 경력에 따라 인사관리를 할 수 있어 한결 수월한 인력운용이 가능해진다. 직원은 승진에 필요한 직무능력 중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찾아 훈련이나 자격 취득을 통해 보완하면 된다. 굳이 대학에 진학할 필요가 없다. NCS가 정착되면 직무에 따른 표준임금이 고용시장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임금체계가 성과나 직무형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다. NCS의 구축으로 학력이나 학벌보다는 역량이 중시되는 열린 노동시장이 형성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청년 고용대책의 일환으로 들고 나온 ‘스위스식 도제 제도’ 또한 NCS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성패의 관건은. ■ ‘스위스식 도제 제도’란, 스위스식 도제(徒弟) 학교를 만들어 공부하면서 일하고 취업을 한 뒤에 대학 진학을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즉, 근본적인 취업구조 개선을 통해 OECD 평균(50.9%)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청년(15~29세) 고용률(39.7%)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이번 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나 투자 여부는 아직까지는 미지수다. 실제 정부 실태조사에서 10곳 중 3개꼴인 33.8%의 기업만이 스위스식 직업학교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일과 훈련을 함께 하기가 부담스러운데다 교육비 부담, 이직으로 인한 투자 손실도 걸린다는 것이다. 반면 스위스는 5만8000개의 기업이 연간 6조 원 가량의 도제교육 관련 비용을 부담할 만큼 기업들이 오히려 적극적이다.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한 이번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부와 사회 전반의 총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벌써부터 갖은 우려와 염려가 적지 않지만 산을 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특히 늦으면 늦을수록 국가의 유익은 줄고 부작용과 후유증만 커질 것이다. 뿌리 깊은 학력 차별과 전 정권의 유사 정책 실패도 넘어야 할 산이다. 우리나라 학부모 93%는 자녀가 4년제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기 원한 반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된다는 응답은 1.1%에 불과하다. 마이스터고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산학 협력 연계교육과 산업체 중심의 현장실습을 강화하는 이번 정책이 원활히 수행되어 유능한 젊은 전문기능인 육성과 청년 고용대책이 활성화되기를 고대한다. 고용노동 분야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문제점과 발전 방향을 짚어 달라. ■ 청년들이 실제적으로 취업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은 영어점수 등 스펙 쌓기에 많은 시간과 투자를 하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을 위한 변변한 일자리가 많지 않고, 오랜 기간 다니던 일자리를 그만 두면 자영업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닫힌 노동시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는 노동시장 진입 초기에 어느 일자리에서 시작하느냐 하는 것이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다. 대기업에서 시작하면 중도에 대기업을 퇴사하여도 중소기업에 취업하거나 연관된 자기 사업을 하기가 상당히 용이하다. 공무원으로 시작하면 평생 고용이 보장되고, 퇴직하여도 유관기관에 일정기간 취업이 보장된다. 청년들이공무원, 공공기관 그리고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몇 년씩 취업 재수, 삼수, 사수를 하는 이유이다. 삼성전자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후 LG전자나, 현대자동차, 혹은 공공기관에 들어가는 일은 흔치 않다. 회사별로 내부 노동시장의 철옹성을 쌓아 놓고, 고유의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인적자원관리를 하기 때문에 기업특수적(Firm-Specific) 인적자원의 질은 높을 수 있으나, 다른 기업에서 현재 직장에서의 보수에 상응하는 역량 발휘나 생산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고령 퇴직자가 반듯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이유이다. 여성들이 육아나 다른 가사 부담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가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면, 과거의 직장 경력은 그다지 고려되지 못하고 새로이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청년들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장기간 비경제활동 후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여성근로자의 구직자로서의 역량을 평가할 객관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였는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중소기업에서 오래 일하다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혹은 국가기관)으로 별 어려움이 없이 더 좋은 조건으로 옮길 수 있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다가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였을 때 자신의 역량에 맞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조기 퇴직자가 무작정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없애기 위해서는 열린 노동시장이 구축되어야 한다. 열린 노동시장은 구직자들이 자신들의 역량에 따라 경제활동과 비경제활동, 그리고 직장을 어려움이 없이 옮길 수 있는 시장이다. 열린 노동시장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직장을 구할 때는 학력이나 학벌, 직장 내에서는 (승진이나 전보 시에) 연령이나 근속기간이 중요시되는 현재와 같은 고용 관행을 바꾸어야 하는데, 앞에서도 강조했던 NCS가 유효한 대체수단이 될 수 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활성화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 한국은 최강의 노동강도가 아닌 최장 근로 시간이 문제다. OECD 다른 국가는 근무 시간이 짧지만 근무 중에 개인적 일은 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의 휴식 없는 삶은 일하는 방식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일하는 방식이란 개개인의 워크 스타일이 아니라 일하는 구조의 문제다. 한국은 일이 사람 중심으로 발생한다. 개별 사람에 의존해 일을 처리하는 구조라, 항상 집에 가지 못하고 회사에 있어줘야 한다. 이 같은 사람 중심형 워크 시스템은 사람이 없으면 대체인력이 전혀 없는 문제, 육성된 후임자가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자신이 없어도 일이 돌아가게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즉, 일하는 방식을 사람 중심에서 직무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직무 중심으로 시스템을 개편하면 A가 4시간 일하고 B가 4시간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이들의 재취업 활성화를 위한 정부나 기업차원의 노력은 아직은 기대에 못 미치는 듯 하다. ■ 여성 유휴 인력 문제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으로 해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지금 세대 기혼 여성은 일을 할 수 없다. 젊은 여성이 일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제도 개편이 불가피하다. 공공기관의 경우 육아휴직을 3년 쓰고 나서 다시 풀타임으로 복귀하면 개인에게도 회사에도 좋지 않다. 즉, 개인의 역량이 감소해 있어 기업은 피해고, 3년이 지났다고 일과 삶의 병행이 가능해진 것도 아니다. 또 그 정규직 여성이 3년간 휴직하는 동안 퇴직한 게 아니므로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데, 회사 차원에서 기존 정규직만큼 대우해줄 수가 없어 이것도 좋지 않다. 그런 상황보다는 출산 휴가를 예컨대 3년에서 1년으로 대폭 줄이더라도, 역량이 무뎌지기 전에 신속히 복귀하되 시간선택제로 주2~3일 근무하면서 2일은 비정규직이 보완하면 회사는 그들 사이에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교육훈련 효과도 있고, 급여도 줄일 수 있다. 시간선택제 등 WLB 관련 제도가 활성화되면 커리어우먼과 기업 모두에 궁극적으로 더 낫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한다면. ■ 청년일자리에 관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청년일자리 문제는 청소년기부터 단계적으로 진로교육 및 취업교육을 제공하는 독일이나 스위스 등 일부 나라를 제외한 웬만한 나라가 안고 있는 공통된 문제이다. 실례로, 영국에서는 최근 “Catch 22”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기업입장에서는 경험이 있는 직원들을 구하는 반면 직원들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취업이 안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다. 따라서 젊은이들도 진로에 대한 명확한 설계 없이 무턱대고 대학에 진학하기보다는 관심 분야로의 취업을 먼저 하고 나중에 진학을 하는 선취업·후진학도 진지하게 고려해 볼 것을 주문하고 싶다. 선취업·후진학은 젊은이들이 현장을 직접 경험하면서 필요한 이론적인 고갈, 기술 업그레이드 등 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위한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업현장에서 실제로 일해 보면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즉, 선취업에 방점을 두라는 것은 일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다보면 앞으로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학습이나 학력 등 스스로에게 더 맞춤화된 교육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