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Quiet Quitting을 대하는 자세 ]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다양성을 둘러싼 의문과 현실

요즘처럼 기업이 생존조차 힘들 정도로 변화가 극심한 상황에서도 여성고용 확대 등 다양한 인력을 확보, 유지하는 노력을 굳이 해야 하는가? 선진 기업들도 다양성 확대에 대한 요구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마당에 우리 회사도 그래야 하는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경영에 필수적인 일도 아니고 나중에 여건이 좋아지면 그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여성들은 아이가 생기면 회사에 시간을 온전히 다 쓰지 못하고, 험한 일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 아닌가?

직종이나 산업별로 차이가 커서 여성 고용을 확대하고 싶어도 전공자도 경력자도 부족하다. 남녀 구분 없이 동일한 인사 규정을 적용하면 충분하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력으로 조직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적인 의문이고 의견이다. 그러나 시각을 바꿔봐야 할 것이 있다. 능력이 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는 없는가? 경력단절 여성 비율이 고학력일수록 높은 것을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만 볼 수 있는가?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올해도 연속 9년째 꼴찌를 고수하고 있다. 여성 임원 비율 역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차별 없는 경영을 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윤리적 기준에서뿐만 아니라 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공정성은 기업 경쟁력의 기본

‘Quiet Quitting’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몸은 출근해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현상이다. 자신이 투입한 노력에 비해 보상이 작으면 불공정성을 느끼게 되고 노력을 줄인다. 기대하는 것을 얻기 어렵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직공정성은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차별이 존재하면 일과 능력을 통해 객관적으로 인정받기 보다는 조직정치를 하게 된다. 눈치 보기, 줄 대기, 아부하기, 일하는 척 하기 등과 같은 비생산적인 행동이 늘어나고 기업의 경쟁력은 약해진다. 시장은 냉정하고 차별은 반시장적이기 때문이다. 차별이 존재하는 기업이 존경받거나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가질 수도 없다. 대규모 집단소송의 피고로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한국 기업에서 여성 관리자와 리더 숫자가 적은 이유는 한국이 OECD에 가입한 시기가 가장 늦고 산업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 본격화가 늦은 것도 중요한 이유의 하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경제는 급격히 성장해도 인재 양성에는 장기간이 소요된다. 특히 연공서열적인 질서가 강한 한국 기업의 인사 관행상 관리자와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근속연수가 요구된다. 

최근 여성들이 기업에서 활동하는 정도가 양적, 질적으로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는 있지만 속도는 더디다. 성장 제일주의, 권위주의 시대의 위계적 통제와 복종, 장시간 근로와 휴가 없는 일 중심 문화, 직장에 대한 헌신으로 가정이 희생되는 일이 미덕으로 회자되고 신화와 전설로 뇌리를 맴도는 한 여성의 직장생활은 더욱 힘들어진다. 힘들면 마음도 멀어진다.

DEI의 중요성과 다양성관리 필요성

남성 중심적인 직장 분위기에서 임신과 출산의 당사자이자 육아와 돌봄과 교육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지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면서 온전히 직장에서 버티고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관행을 변화시키려는 고용평등법, 양성평등기본법, 채용절차 공정화법 등 법적·제도적 변화가 있어 왔고, 시대가 바뀌어 MZ세대가 등장했지만 조직문화의 변화는 느리기만 하다. 

그렇다고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포춘 500대 기업의 80% 이상이 ‘다양성과 포용(Diversity&Inclusion, D&I), 또는 다양성, 형평성, 포용(Diversity, Equity, Inclusion, DEI)’을 기치로 내걸고 인력다양성을 의도적으로 확대하고 다양한 인력이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경영환경이 좋아질 때를 기다리지 않고 선제적으로 다양성을 확대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은 남성도 일하기 좋은 직장이 된다. 포용성은 기업경영에 도움이 된다. 배경이나 성별과 무관하게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은 공정한 조직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기업으로서도 손해다.

오랜 관행으로 인해 누적된 차별이 있다면 그것을 해소하는 것이 공정이고 정의이다. 출발선 맞추기는 특혜가 아닌 공정과 상식에 속한다. 장거리 경주를 하는 운동장에서 출발선이 다르다고 시비를 거는 스포츠는 없다. 

다양성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많다. 서로 다른 관점과 아이디어, 정보를 가질 수 있고, 인적 네트워크도 넓어질 수 있다. 시장에 대한 다각적 이해, 예를 들어 여성 소비자에 대한 이해와 설득은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다. 다양성은 사업에 필요한 이점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기반 역할이 가능하다.

DEI 즉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을 실현하는 것이 곧 다양성관리라 할 수 있다. 차별을 없애거나 방지하고 다양한 인력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포용하는 것이 다양성관리의 요체다.

DEI 실천 방안

경영은 사람 간 차이로 인한 갈등은 줄이고 차이를 활용한 협동을 통해 조직목표를 달성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다양성관리를 내포한다. 리더는 다양성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다양성관리를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집단주의적 문화의 온정적인 가부장적 리더십은 개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는 기업문화나 다양성에 대한 포용과 거리가 있다. 

엇비슷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지휘관이 아니라, 저마다 개성 있는 사람이 자유로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큰 그림을 함께 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이자 코치로서의 리더십이 각급 리더에게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다양성을 확보하고 관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공정한 조직 만들기, 사회적 정당성 확보하기, 다양한 인력을 사업에 활용하기, 상호 학습을 통한 조직역량 강화,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 장기적인 안목으로 다양성을 이해하고 관리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재 제도와 관행, 조직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는 활동이 요구된다.

다양성에 친화적인 제도와 관행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든 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 가능한 답은 없겠지만 관련 있는 내용을 보면 [표 1]과 같다. 실무적으로는 각 항목을 평가해 다양성관리 수준을 측정하는 다양성 스코어카드(Diversity Scorecard)를 도입해 운영해 볼 수 있다. 

다양성 분위기(Diversity Climate)는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미래의 잠재적 종업원을 인적 자산으로 끌어들이고 활용하며 존중하는 포용적 분위기다. 다양성에 대한 개인들의 태도가 모여 다양성에 대한 집단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다양성 분위기가 좋은 집단은 다양성에 대한 편견을 제거 대상으로 보며, 구성원의 태도와 행동이 일관성 있게 다양성에 대해 공정하고 열려 있는 집단적 심리상태를 갖는다. 비유사성이 불편하지 않으며 차이를 환영한다. 다양한 인력들이 자존감과 효능감을 갖고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과업을 수행하며 대인관계를 유지한다.

차이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조직의 목표를 공유하며 집단 간에도 상호협동과 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다양성 분위기 측정은 여러 방식이 있으며 신뢰성과 타당성이 검증된 도구를 선택해 현상을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들은 다양성으로 인한 차별과 위법행위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인사부서 또는 법무 및 준법감시 부서, 감사 부서 등에서 부수 기능으로 이러한 역할을 수동적으로 수행하는데 머물러 있다. 다양성을 능동적으로 활용해 사업 활동에 접목하거나 새로운 학습 기반으로 활용하는 차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담자나 별도 조직 설치가 곤란한 중소․중견 기업의 경우에는 인사부문 또는 인사담당자가 다양성관리에 대한 책임을 갖고 소기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업무를 분장할 필요가 있다. 다양성관리 책임자는 다양성에 전략적 시각을 갖고 다양성 관련 현황을 파악해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 경제의 전개, 재택‧원격근무의 확대, 환경과 사회 및 지배구조를 고려한 경영(ESG 경영)의 중요성 증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기업의 다각적 역할, 지속가능한 사회 구축을 위한 제반 요구들은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경고를 던지고 있다.

자본시장 역시 이 같은 요구를 민감하게 반영해 기업을 평가하고 있다. 준법경영 차원을 넘어 새 시대의 새로운 요구라는 관점에서 다양성을 해석하고 관리 방식을 모색해야 할 때다. 


글 _ 성상현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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