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김 다이어리

드디어 때가 됐다. 5월, 그 이름도 어마무시(?)한 ‘전사 워크숍’. 부서나 팀 단위의 행사는 장소나 차량 정도만 섭외해서 결제 올리면 끝이지만 창립기념일, 시무식과 함께 인사팀의 3대 연례행사로 꼽히는 전사 워크숍은 준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언제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아서 시종일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누군가는 이 과정을 산고의 고통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행사에 전반적인 진행을 맡기면 편할까 싶지만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 한 팀장님 말씀이 예전에 뭣 모르고 대행사에 맡겼다가 임직원 욕을 원 없이 드셨다고. 어차피 업무의 연장이고 누군가에게는 원치 않는 술자리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일정이니 아무리 밥상을 잘 차린들 만족하는 직원이 몇이나 될까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딱 욕먹기 십상인 일이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어쨌든 우리 인사팀에게 전사 워크숍은 쓴 물 삼켜가며 곱이곱이 넘어야 하는 큰 산임에 틀림없다. 특히나 올해는 부진한 영업실적과 내부 조직개편 등 이런저런 일들로 조직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다운되어 있는 상황이니 1박 2일 짧은 일정에도 많은 것들이 녹아있어야 한다는 본부장님의 깊은 고뇌를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비용은 최소로 들이면서 회사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 조직개편 이후 여전히 어색한 본부 간 소통과 팀 단위 구성원간의 친밀감 강화 등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5월 말 일정을 위해 4월초부터 회의를 거듭하고 있지만, 마땅히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지 못하고 지지부진이다.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는 것 같은데, 우리끼리 끙끙거리지 말고, 임직원 대상으로 설문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어휴, 괜히 일 벌리면 골치 아파. 좋은 의견 하나 건지려고 쓰레기를 떠안을 수는 없지.”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회사가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것도 아닐 뿐더러, 긍정적인 내용보다 부정적인 것들이 훨씬 많다고. 회사 사정 나쁜데 그냥 가지 말자, 거기 숙소는 최악이다, 밥이 맛있어야 한다, 어쩌고저쩌고. 시설에 대한 바람이 클 뿐이지, 진짜 워크숍다운 워크숍을 누가 바라고 의견을 내 놓겠어? 그냥 예전이랑 똑같지만 않으면 성공하는 거야.” “그래, 이미 숙박이나 기본적인 것들은 다 정해졌고 임직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두세 개만 나오면 되는데 괜히 오픈했다가 전체가 흐트러질 수 있어.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고. 안되면 평범하게 가야지 뭐. 강사 초빙하고, 팀워크 프로그램 몇 개 넣고.” 몇 달째 공석인 인사팀 대리 자리를 대신해 재무팀 우현 대리님과 고객지원팀 미리 씨, 나, 인사팀장님 이렇게 넷이서 준비하고 있는데, 너무 새로운 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서 안 되고, 평범한건 늘 해왔기 때문에 식상하다고 빼고, 이렇게 우리끼리도 만장일치가 안 되니 거 참. 원하는 바가 제각기 다른 대표이사 외 225명의 직원들을 만족시킨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버려야지만 풀리는 일이 바로 워크숍인가 보다. “나 너무 욕심 나. 뭔가 하나 빵! 하고 터지는 걸 해 보고 싶은데. 뭐 생각나는 거 없어?” “터지긴 뭐가 터져. 워크숍이 무슨 스티브 잡스가 하는 아이폰 런칭 행사냐? 본부장, 팀장 있는데 네가 왜 오버야? 그냥 시키는거 하고 맘 편히 있어. 좋은 의견 낸다고 반영될 일도 없지만. 1박 2일 워크숍 한 번으로 회사가, 사람들이 바뀌냐?” 늘 내 의견이나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 친구지만 항상 바른 말만하니 또 뭐라 대꾸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 특별한 뭔가가 필요한 일이 아니고 무난히, 무사히 끝나야 하는 일이지. 그런데 인사팀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욕심이 난다. 최근에 벤처기업이나 젊은 대표이사가 이끄는 회사 문화를 보면 회사 내부 소통을 위한 작고 큰일에 시간과 비용을 많이 쓴다고 했다. 나 역시 이왕 돈 들여 하는 거라면 임직원이 모두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행사, 워크숍을 기획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돈 쓰고 욕먹는 게 제일 바보 같은 짓 아닌가. 고등학생 토론 프로그램과 몇몇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보며 하루, 이틀 머리를 굴려본다. “신형, 회의실에서 잠깐 볼까?” 오전에 팀장님, 본부장님께 보낸 메일에 대한 회신인가보다. 긴장, 떨린다. “일단, 고맙다 신형. 조직에 젊은 피가 필요한 이유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네. 아이디어 정리하느라 고생했고 또 우리한테 어떠냐고 의견 구해줘서 고맙고. ‘스티브 잡스 따라하기’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지원자가 있을까? 강제로 하면 또 말들이 많을 테고. ‘부서 바꿔 말하기’는 자칫 사소한 재미가 앙금이 될 소지가 있으니 위험하겠지? 오락적 요소만 생각할 줄 알았는데 회사나 구성원들이 정말 하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기특하네. 그렇지만 대부분이 사내교육팀이 있어야 가능한, 준비가 필요한 프로그램이네. 1박 2일 가서 하기에는 너무 디테일 해. 좀 더 크고 굵은 한 방을 생각해보자.” 미친 척하고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아침 출근하자마자 본부장님과 팀장님께 메일로 보냈었다. 다시 보니 초등학생 수준의 발상이지만, 그래도 팀 막내의 기를 살려주시려는 본부장님의 따뜻한 배려와 조언이 너무 감사했다. 물론 팀장님은 그저 웃기에 바쁘셨지만. 현장 답사를 다녀 온 이후에 해당 연수원 사이트 고객게시판을 꾸준히 살피던 한 팀장님은 식사 불만사항이 많이 올라온다며 업체 관계자 면담과 재방문 일정을 잡으셨고, 우현 대리님과 미리씨는 일정표에 따라 필요한 물품과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을 맡아서 돕고 있다. 특강 강사는 본부장님 의견에 따라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관리에 포인트를 맞춰서 심리치료사를 초빙했다. 내 의견은 언변이 뛰어난 구매팀 최 대리님과 동네 개그맨으로 통하는 영업 1팀 재목 씨 등 몇몇 분이 도움을 줘서 이벤트 성격으로 구성해보기로 하고 열심히 대본을 짜는 중이다. 하루의 가장 긴 시간, 1년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한 공간에서 얼굴 마주하며 지내는 225명의 사람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같은 곳을 보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바로 워크숍이다. 회사는 임직원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이 있고, 직원들이 회사, 일과 관련해서 가슴 속에 담아 둔 이야기들도 그간 많이 쌓였을 거다. 이런 좋은 기회에 이들의 이야기를 잘 이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우리 인사팀이 만든다면 절대 졸리는 강의, 먹고 마시는 술판만으로 의미 없이 기억되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유치해도 해보고 그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도전을 우리 뿐 아니라 모두가 해봤으면 좋겠다.   김소정 월간 인재경영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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