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희의 인사만사

얼마 전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TV 프로그램 ‘복면가왕’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 안에선 실력파들이 줄줄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실제로 필자가 시청한 그날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실력파 가수가 이름 모를 여인과의 1라운드 대결에서 고배를 마시고 정체를 밝히게 됐다. 그 실력파 가수는 가창력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 그룹 빅마마 출신의 가수 이영현이었다. 만약 그녀가 가면을 쓰지 않은 채 무대에 섰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감탄을 연발하며 물개박수를 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복면 뒤에서는 이름 모를 여인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올 초 설 특집 프로그램으로 처음 선보인 ‘복면가왕’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4월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이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단연 ‘복면’에 있다. 복면 뒤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송 이후 출연 연예인들은 모두 재조명되는 효과를 누렸다. 과소평가됐던 아이돌 가수들이 의외의 실력으로 재평가되는가 하면, 고정된 이미지를 안고 있던 가수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이 됐다. 이는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도 크다. 우리 가슴 한쪽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편견과 메가트렌드에 한 표를 던지는 익숙함에서 벗어나면 세상은 훨씬 더 풍요롭고 공평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비뚤어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깨닫게 한 것이다. 복면가왕식 편견 지우기는 이미 오래전 여러 곳에서 시도됐다. 책『블링크』에서 말콤 글래드웰의 유명한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편견을 깬 ‘장막 오디션’ 얘기다. 때는 1980년 여름, 아비 코난트가 트롬본 오디션에 합격한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트롬본 연주자로 여자를 뽑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음악감독 세르주 켈리비다체는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남자 악기’인 트롬본을 여자가 연주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유럽의 대부분 음악감독처럼 여자는 폐도 튼튼하지 못하고 힘도 달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완강했던 금녀의 벽은 ‘장막 뒤 오디션’ 앞에 무너졌다. 장막이 걷힌 뒤 켈리비다체는 너무나 놀랐지만 자신의 실수를 되물릴 수 없었다. 코난트의 압도적인 실력이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유럽 오케스트라엔 여성 연주자가 크게 늘어났다. 장막만으로 세상은 한결 공평해진 것이다. 이 같은 일은 우리의 일터에서도 매일 일어난다. 실제로 많은 매니저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특정 직원에게 기회를 많이 부여하거나 인사고과점수를 후하게 줌으로써 다른 직원들로 하여금 박탈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인사담당자는 이러한 편견을 걷어내고 모두가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인사고과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복면가왕에서처럼 모든 직원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피드백 문화가 이뤄지는 환경에서 가능하다. 즉,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자유로이 장단점을 진정성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문화가 해결책이다. 특히 우리 한국인은 지적을 당할 경우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소위 말하는 ‘욱’하는 성향은 남과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습관이 잡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남에 대한 존중은 ‘나’에 대한 인정과 겸손으로부터 나온다. 스스로 자신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족한 부분이 누구나 있기 마련인 것이고, 이는 다른 사람의 지적이나 코칭을 통해서 채워나갈 수 있다. 최고의 인재를 가려낼 때에도 복면의 힘, 공정성의 힘은 절대적이다. 즉 이해관계 없이 개개인이 성과를 내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조직문화의 정착이 중요하다. 요컨대, 피드백 문화 정착인 것이다. 이는 인사담당자가 깊이 있게 고려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인사담당자들은 ‘사실은 복면만 씌우면 초천재인데 우리가 못 알아보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은 그런 초천재가 우리 사회에 널려 있는 데 우리가 못 알아보고 있는 건 아닐까?’에 대해 끊임없이 탐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세계적인 기업들은 인사고과(Performance Rating)제도를 파격적으로 없애거나 혁신적으로 바꾸고 있다. GE의 경우도 매년 일 년에 한 번 인사고과 시즌을 가지고 임금인상 보너스의 등급을 정하는 제도를 올해부터 과감히 없애기로 하고 보다 개개인의 개발에, 피드백에 초점을 맞추는 인사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데이비드 룩과 조쉬 데이비스 박사가 <PWC> 최근호에 “Kill your performance”라고 기고한 아티클에도 잘 나타나 있다. 원고의 일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서열을 매겨 결정하는 성과제도 방식에 95%의 직원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90%에 인사담당자들 또한 그들의 평가제도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성과제도에 결함이 있음을 발견한 데이비드 박사는 이를 뇌기능(Neuroscience) 측면에서 연구하였다. 그는 업무성과를 수치화하여 그 결과를 개인에게 통보할 경우, 높은 점수를 받은 직원이나 낮은 점수를 받은 직원이나 모두 이 수준을 유지하거나 거부하는 형태를 취하면서 조직 내에 보다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방식은 인간의 성장과 학습에 있어서도 융통성이 저하되어, 가령 잘한다 못한다, 예 아니요, 좋다 싫다,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등의 이분법적 사고를 촉발하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즉,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하기보다는 숫자로 된 자신의 고과성적이 평생 자신의 인생과 커리어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착각하여 결국 개인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아직도 인사고과(Performance Rating)제도가 정답인 양 운영 중이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저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포춘 500대 기업의 60% 이상은 아직도 인사고과(Performance Rating)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여 막연히 옳다고 믿고 있는 인사고과의 랭킹작업과 이에 대한 직원 불만의 심각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때이다. 즉, 구태의연한 랭킹 시스템과 반복되는 프로세스 행정에 집중하기보다는 직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인사고과 본연의 피드백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주변에 숨어있는 끼를 발휘할만한 복명가왕 후보를 찾아내자. 이들을 위해 우리는 아낌없이 피드백해주고, 부족한 부분에 투자하고, 훈련시켜 무대 위의 멋진 가왕으로 변신시켜주자. 그들이 품은 꿈과 소신을 회사의 구조적 문제로 포기하게 하지 말자. 그들의 꿈과 희망을 부추겨주고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피드백을 주는 데 힘을 쏟자. 물론 그동안에 옳다고 믿고 있던 인사고과제도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존 제도 또한 업무성과를 유도하는 데 나름의 효과를 거두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여러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성과관리에 보다 정교한 접근을 해야 한다. 이제 매니저는 직원을 평가할 때 보다 정교한 정보, 가령 실적, 동료, 고객피드백 등의 실질적인 데이터, 그리고 이러한 결과 값을 가지고 개선방안을 정교하게 코칭해 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직원 개개인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사담당자는 어떻게 하면 매니저가 직원과 보다 효과적인 코칭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과 함께 어떻게 하면 직원 개개인이 부족한 스킬을 채워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학습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편견에서 벗어나자는 내용으로 글을 쓰다 보니 역사적인 두 인물이 생각난다. 한 사람은 두 번이나 회사에서 잘린 적이 있고, 게을러 늘 정오가 되도록 늦잠을 잤으며, 대학시절 마약복용을 일삼고 하루에 위스키병 사분의 일을 마시며 알코올에 젖어 생활한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전쟁영웅으로 담배도 안 피우고 경우에 따라 맥주 정도만 가끔 마시는 그야말로 근면성실이 생활인 사람이다. 당신이 인사담당자라면 이 둘 중에서 누구를 뽑을 것인가? 전자는 지금까지도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윈스턴 처칠 총리에 대한 내용이며, 후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살인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이야기이다. 필자는 인사담당자로서 아주 기쁘기도 아주 슬프기도 하다. 기쁜 것은 인사담당자로서 더 공부하고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다는 것이고, 슬픈 것은 지금도 우리는 멋진 이력서와 배경에 현혹되어 어딘가 숨어있는 진정한 가왕후보를 잘 찾아내지 못하고 히틀러와 같은 잘못된 인재를 지지하거나 채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정태희 인사혁신처 인재개발 자문단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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