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의 가치경영

전 세계에서 가장 심한 대립과 갈등의 있는 곳은 가자 지구다. 그곳에서는 철조망을 사이로 팔레스타인 어린이와 이스라엘 어린이가 서로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곳의 어린이들에게 철조망 너머에 있는 어린이를 그려보라고 하면 여지없이 상대방을 괴물 같은 존재로 그린다고 한다. 이는 세상이 심어준 나쁜 감정이 그대로 순수한 어린이들의 그림에 표현되는 것으로, 서로를 접촉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1954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생긴 적대감을 줄이는 방법으로 ‘접촉가설(contact hypothesis)’을 발표했다. ‘접촉가설’은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이나 집단 간에 고정관념과 편견, 차별을 해소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좋은 방법으로 인정받아 왔다. 요즘 직원들이 조직에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필자는 최근 기업체 강의를 다니면서 “우리 조직의 가장 큰 문제점 또는 조직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직원들이 느끼는 조직의 문제는 ‘소통부재’, ‘협업부재’가 절대다수였다. 소통부재, 협업부재는 비단 부서 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서 내 개인과 개인 간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영진과 리더들도 소통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소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임에도 직원들은 여전히 “소통이 안된다”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앞의 ‘접촉가설’의 원리를 적용하여 직원들이 자주 만나게 하고 대화하게 하고 회식하고 워크숍을 많이 하면 소통과 협업이 잘 될까?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여학생을 A, B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 여학생들에게는 매주 같은 남학생의 사진을 보여주고 B그룹 여학생들에게는 매주 다른 남학생의 사진을 보여준 후 시간의 경과에 따른 호감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매주 같은 남학생의 사진을 본 A그룹 여학생들의 남학생에 대한 호감도가 점점 올라갔다. 반면에 B그룹 여학생들은 매주 바뀌는 남학생들에 대한 호감도에 변화가 없었다. 이 실험은 호의를 가진 사람은 만날수록 관계가 좋아지지만 단순히 만난다고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이러한 이론이 ‘단순접촉효과(effect of simple contrast)’이다. 즉, ‘단순접촉효과’는 무조건 접촉한다고 소통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2001년 하버드 정치학과 로버트 퍼트넘 교수는 미국 전역의 3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투표, 자원봉사, 기부 등 공동체 활동을 어떤 환경에서 많이 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조사결과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지역의 시민 참여가 가장 적었다. 퍼트넘 교수는 그 이유를 서로 덜 신뢰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의 경우에는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길 꺼린다는 것이다. 익숙한 대상하고 있을 때는 잘 어울리지만 익숙하지 않은 대상 속에서는 거북이가 등껍질에 숨어버리는 것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으려는 현상으로, ‘터틀링(turtling)’이라고 정의했다. ‘터틀링’은 서로 신뢰하지 않는 관계에서는 협업이 어렵다는 시사점이 있다. 앞에 소개한 ‘접촉가설’은 고정관념과 편견, 차별을 해소하는 갈등관리에 유용한 이론으로 평가 받았지만 최근의 몇몇 의외의 결과가 나타남에 따라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을 무작정 자주 만나게 하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했더니 오히려 갈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상사와 부하 간에 코칭을 강화하라고 자주만나 대화하게 했더니 부하 직원은 감시 받는 느낌이라 불쾌하다고 하고, 상사는 부하 직원과의 만남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서로 친근한 관계를 갖게 하려고 회식을 자주 했더니 술 먹을 때 잠깐 분위기가 좋을 뿐, 오히려 개인 사생활까지 침해한다고 불만을 표현한다. 부서 간에 협업을 강화하라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했더니 직원들 간에 큰소리가 나고 오히려 사람들 간에 분란만 커졌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답은 이미 앞에서 나왔다. ‘단순접촉효과’는 무조건 만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이고 신뢰하지 않는 관계, 경쟁적인 관계에서는 ‘터틀링’에 의해 오히려 만나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얘기다. 회사 차원에서는 부서 간에 협업이 필요하지만, 서로 경쟁하는 구조하에서는 같은 공간에서, 자주 접촉하게되면 싸울 일만 더 많아진다. 협업을 하려다가 분란만 발생하는 꼴이 된다. 협업은 요즘 기업 환경에서 시대적 화두가 맞다. 믿을 것은 사람 밖에 없다고 보는 생각이다. 저성장, 초경쟁 환경에서 직원들이 긴밀히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문제는 협업의 중요성에 맞게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협업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적과 목표를 알아야 한다. 공동의 목적과 목표가 없다면 구성원 간에 지식, 경험, 정보의 공유와 긴밀한 협력이 어렵다. 공동의 목적과 목표라는 전제가 없으면 성과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원천적으로 협업은 성립하지 않는다. 둘째,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적과 목표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공동의 목적과 목표를 알고는 있지만 개인이나 부서의 목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협업을 하는 과정에서 불만과 갈등이 생겨 협업을 통해 이루려는 성과를 달성하기 힘들다. 셋째, 구성원들이 협업할 수 있는 실행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불평등하고 위계적 환경에서는 자발적 소통과 협업을 끌어내기 어렵다. 수평적으로 평등한 관계여야 소통과 협업은 효과가 있다. 경영진이나 리더가 직원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소통과 협업을 외치는 것은 겉으로만 하는 시늉만 이끌어낼 뿐이다. 이와 함께 성과·보상제도 등 협업을 촉진하는 제도적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상대평가제도의 원조였던 GE는 최근에 리더와 직원이 언제든 의견을 주고받는 ‘성과개발’ 방식의 인사제도를 도입했다. ‘PD@GE’라는 사내 전용 앱을 만들어 리더와 직원이 서로 단문, 첨부 파일, 손 글씨 파일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편리하게 소통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 성과개발 인사제도는 리더와 직원 간에 잦은 대화를 통해 목표를 설정하고 공유하면서 개인의 역량 개발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시스템은 리더와 직원 간에 많이 소통할수록 인사평가에서 가산점을 준다. 구성원들이 공동 목적과 목표를 인식하고 공감하게 하고 실행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협업의 세 가지 원칙이다. 협업은 공동의 목적과 목표 달성을 위해 서로의 경험, 지식, 정보를 공유하고 긴밀히 협력하여 성과를 창출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왕 할 협업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협업하자.

유료회원전용기사

로그인 또는 회원가입을 해주세요. (유료회원만 열람가능)

로그인 회원가입
저작권자 © 월간 인재경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