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의 가치경영

 얼마 전 딸아이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한다면, 기성세대인 내가 생각하는 졸업식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선배들을 떠나보내는 후배들의 눈물 젖은 편지도,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졸업생 대표의 송사도 없었다. 또 성적이 우수한 졸업생에게 주는 시상식도 없었다. 시상은 반별로 학년 초와 비교해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에게 주는 발전상이 전부였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졸업가도 없었다.  그저 학창시절의 순간순간을 재미있게 담아낸 반별 동영상이, 그리고 졸업생들의 끼와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반별 공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무겁고 어두울 것이란 당초 예상을 뒤엎는 화려한 퍼포먼스에 ‘세월이 이렇게 바뀌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기성세대인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성적표를 나눠주는 날이면 어김없이 교탁 앞으로 끌려나와 떨어진 성적만큼 매를 맞는 학생들이 있었고, 또 교내 곳곳에는 전교 1등부터 100등까지 이름이 적힌 방이 붙곤 하였다. 심지어 우리 반은 교실에 앉는 순서가 성적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인권유린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특별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당시 기성세대들에게 등수는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는 일종의 기준 같은 것이었다. 또한 기성세대들은 모여서 무엇인가를 함께 하는 것이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기성세대는 혼자 하는 게 익숙하고 혼자 하는 게 편하고 경쟁은 마치 숙명과 같은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198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이른바 ‘밀레니얼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그 이전에 태어난 기성세대와 확연히 대비되는 특징이 있다. 몸에 밴 ‘공유’와 ‘협력’이 그것이다  최근 한 기업의 인사담당 임원을 만나 연말에 겪은 황당한 일을 들었다.  신입사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경영진이 신입사원 환영 회식을 열어주었는데, 글쎄 신입사원 한 명이 회식 중간에 사라져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영진들은 혹시 사고가 생긴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을 하며 찾아 헤맸다고 한다. 핸드폰도 연락이 되지 않아 나중에는 경찰서에 실종신고까지 내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말 아침, 해당 신입사원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편안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사정은 이러했다. 술이 약한 신입사원이 주는 술을 다 받아먹다가는 크게 실수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지도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했는데, 지도교수가 “신입사원이 술 취해서 실수하면 안 되니까 일찍 들어가라”라고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자기 딴에는 회식에서 중간에 인사를 하고 나오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 나름대로 배려를 한다고 조용히 집에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곯아 떨어져 핸드폰 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게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발생한 신입사원 실종사건의 전말이었다.  신입사원의 행동은 분명 황당하고 잘못된 행동이다. 경영진이 참여한 자리이고 신입사원 환영식이라는 행사의 성격을 떠나서 조직생활에서 끝까지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중간에 몰래 집에 간 행동은 문제가 있다. 회식에서 몸이 너무 힘들면 누군가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나오는 매너를 배우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실수를 하면 안 된다’, ‘분위기를 망쳐서는 안 된다’는 신입사원의 합리적인 생각이 존재하기도 한다.

  지난해 많은 기업을 다니면서 “우리 회사의 조직과제와 문제점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거의 모든 조직에서 조직과제와 문제점으로 ‘소통부족’, ‘인사문제’, ‘혁신부족’을 제기하였다. 그 중에서도 ‘소통부족’은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다. ‘소통’은 생각의 차이에서 나오는데 특별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 ‘세대갈등’이다. 조직의 세대구성이 몇 년 사이에 크게 변했다. 밀레니얼세대라고 하는 80년 이후 세대가 조직의 5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불과 5년 전 20% 수준이었던 밀레니얼세대가 조직의 50% 이상을 차지하여 현실적으로 조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계층이 되었다. 모두가 하는 얘기가 밀레니얼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직은 조직에서 활동하는 대부분 리더들이 기성세대이고 기성세대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크다. 하지만 이제 밀레니얼세대는 조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절반에 달하는 실질적인 힘이 있고 이들은 자기들과 다른 기성세대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밀레니얼세대를 제대로 보고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조직 내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밀레니얼세대의 특징에 대해서는 많은 분석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공유’와 ‘협력’이다. 그런데 기성세대가 가장 약한 부분이 이 부분이다. 기성세대는 목표와 방침이 정해지면 ‘돌격 앞으로’가 익숙하다. ‘돌격 앞으로’를 하다 보면 자기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약해진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경쟁이 익숙하다. 부서 간 경쟁, 직원 간 경쟁을 통해 승진도 하고 좋은 고과도 받았다. 경쟁을 떠나 함께 일하는 것이 익숙하지 못하고 불편한 세대다. 밀레니얼세대가 조직 내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공유’와 ‘협력’이 아닌 ‘돌격 앞으로’와 ‘경쟁’에 대한 문제 제기다.  현재 기업 경영환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상황은 ‘저성장’과 ‘초경쟁’이다. ‘저성장’과 ‘초경쟁’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협업(Collaboration)이다.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유’와 ‘협력’ 이다. 어쩌면 협업의 시대에는 기성세대의 가치보다는 밀레니얼세대의 가치가 올바르고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소통은 피할 수 없는 조직의 핵심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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