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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약 926km 떨어진 태평양 공해상에 갈라파고스 제도라는 이름의 섬들이 있다.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갈라파고스는 20여 개의 크고 작은 섬과 100여 개의 암초로 이루어져 있는 곳으로, 일부는 오래전에 활동이 그쳤으나 일부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인다고 한다. 고대 철학자의 이름같은 ‘갈라파고스’의 어원은 안장을 뜻하는 스페인어 ‘갈라피고’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곳에서 발견된 거북이 한 종의 등딱지 모양이 안장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찰스 다윈이 출간한『종의 기원』이라는 책 때문이다. 1835년에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비글(Beagle)호를 타고 탐사 여행을 하던 중 약 5주 동안 머물면서 섬에 서식하는 여러 가지 동식물들을 조사하여 진화설의 기초를 다진 곳으로 알려졌다. 남아메리카 대륙이나 태평양의 다른 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동식물이 독특하게 진화하였기 때문이다. 1959년에 에콰도르 정부는 갈라파고스 제도를 국립공원으로 선포하고, 찰스 다윈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진화론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섬이 유명해지고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늘면서 이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유는 관광객과 함께 외부에서 들어온 다른 종들 때문이었다. 고립된 지역에서 번식한 갈라파고스 종들의 면역체계가 약했기 때문에 종의 소멸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다가 외부세력에 의해 멸망하는 현상을 가리켜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술기반의 벤처기업들이 놀라운 성공신화를 써 내려 가던 2000년대 초반에 ‘휴대용 노래방기기시스템’이라는 콘셉트로 코스닥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기업이 있었다. 엔터기술이라 불리는 이 회사는 1991년 창업 이래 10년을 하루같이 R&D에 주력한 덕분에 200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업계로부터 뜨거운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2002년 대한민국 벤처기업대상과 대통령표창, 그리고 이듬해인 2003년 그해 가장 높은 공모주를 기록하며 코스닥에 이름을 올렸다. 엔터가 보유한 휴대용 음향기기 시스템이 세계 일류기술로 지정을 받으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엔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2008년부터 성장세가 꺾이더니 급기야 대표이사이자 대주주였던 이경호 사장이 회사를 떠나고, 우리에게는 황 마담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개그맨 오승훈 씨가 작전세력을 등에 업고 회사를 인수하더니 결국 2013년 상장폐지에 이르게 된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엔터의 몰락을 보면서 ‘기술벤처에 성공한 이경호 사장이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기술력과 시장변화에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지금쯤은 중견기업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초창기 엔터의 휴대용 노래방기기는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환경에 잘 어울리는 혁신적인 작품이었으며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던 인기상품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엔터의 몰락 이유가 ‘자만(自慢)’에 있다고 생각한다. 엔터가 가지고 있던 현금을 R&D가 아닌 건물과 땅을 사는 데 쓰기 시작한 건 2006년부터다. 엔터의 생명선은 기술이기 때문에 R&D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는 필자의 간곡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인 이경호 사장은 “후발 주자가 쫓아오려면 한 5년은 필요할 겁니다!”라며, 경매로 나온 터미널부지 매입에 수백 억을 지불하는 등 토지와 건물 매입에 자금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2년 후 회사매출이 처음으로 하향세를 그리더니 이내 후발주자에게 시장의 거의 대부분을 넘겨주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급기야 회복불능의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에 모두가 아는 글로벌 기업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기술의 상징 샤프전자 이야기다. 샤프는 액정기술로 유명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우리에게는 성공한 재일한국인 손정의 사장을 있게 해 준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손 사장의 자서전에 의하면, 회사를 설립한 초창기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자신을 샤프가 인정하고 일감을 주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지난 2월 말 일본 열도를 들썩이게 만든 대형 뉴스가 보도되었다. 일본 전자산업의 자존심인 샤프가 중국 폭스콘의 계열사인 훙하이에 매각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일본『요미우리신문』은 2월 26일 자 신문에서 샤프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하는 특집기사를 5회에 걸쳐 연재했는데, 대충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00년 후반, 샤프는 자신들의 뛰어난 기술력을 과신한 나머지 세계 시장의 흐름을 무시했다고 한다. 샤프는 자신들만의 사고방식을 고집하며 액정에서 시작하여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과 같은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수직통합’ 모델을 완성하였는데, 이런 경영전략은 2000년대 초반엔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시장변화와 함께 오히려 샤프의 발목을 잡는 괴물이 되었다. 세계 제조업의 흐름이 세계 각지에서 값싼 부품을 사들여 범용 상품을 생산하는 ‘수평통합’ 모델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한국과 중국 업체들의 대약진이 시작되었다. 2006년 14.6만 엔이었던 액정 텔레비전 한 대의 평균값이 2012년 8월 4.9만 엔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샤프는 과거의 성공에 취해 ‘만들면 팔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오사카(大阪)에 우리 돈으로 약 5조 원을 투자하여 고급모델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대형공장을 짓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세계 액정 시장의 변화와 리먼 사태로 인하여 샤프의 실적은 급전직하(急轉直下)되고 결국 지금의 사태로 이어졌다. 신문은 마지막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면 무조건 팔린다는 기술 신앙에 빠져 시장의 흐름을 외면한 결과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의 전형적인 사례다.”라고 논평했다. 일본 언론이 샤프 몰락의 주된 원인을 ‘중국, 한국과 같은 후발주자의 추격’보다는 ‘기술맹신’ 쪽에 무게 중심을 두는 이유는 투자 시기의 실패 때문이다. 2000년 초반까지 공격적 투자로 시장을 선점하던 샤프가 갑자기 투자를 멈추게 된다. 이쯤되면 우리 기술력을 따라올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고 자만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삼성과 LG가 샤프를 추월해 버렸다. 2007년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친 후였고, 시장이 바라는 제품을 내놓지도 못했다. 이 또한 ‘샤프의 자아도취’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의 자그마한 기술기업 엔터기술과 세계 초일류 전자기업 샤프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자만은 결국 파멸을 부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세계에 갇혀 생활하다 보면 결국 외부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면역력이 점점 떨어질 것이고, 외세의 힘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약해진 면역력 때문에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는 전형적인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 할 것이다. 너무도 뻔한 스토리지만 반복해서 이런 기업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왜일까? 시야가 좁아서일까? 아니면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으로 불리는 ‘성공 후의 자만심(自慢心)’ 때문일까? 잠깐의 의구심을 가지며 오랜만에 엔터의 추억을 회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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