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INSIGHTⅡ

최근 우리나라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하여 기업의 인사관리 제도 개혁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여러 인사관리 제도 중 가장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평가제도와 관련된 사항들이라고 본다. 평가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개별 근로자들의 성과를 신뢰와 타당성을 바탕으로 측정하여 차등적인 평가결과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가제도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평가결과가 승진, 배치, 보상 등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에 활용되기 때문에 인사관리의 핵심 정보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는 평가결과의 활용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보상이나 퇴직관리 등에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과거에 비해 그 중요성이 매우 커지고 있다. 이러한 평가제도의 중요성으로 인해 “완벽하게 공정한 평가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는 사람은 노벨평화상도 받을 수 있다.”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평가제도를 둘러싼 노사 간, 노노 간 갈등 가능성과 잠재적인 파장을 생각하면 무리한 말도 아니다. 모든 근로자, 노사가 만족하고 공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평가제도를 고안하여 운영할 수 있다면 산업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고 그 공헌 정도는 여타 노벨평화상에 견주어도 결코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모두가 공정하다고 여기고 만족하는 평가제도는 이상적인 형태로만 존재할 뿐, 현실적으로 실현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처럼 평가제도에 있어 ‘공정성’ 인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공정한 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학술적 연구들이 이루어져 왔다. 공정성 인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개념이 ‘분배 공정성’과 ‘절차 공정성’이다. 분배 공정성은 자신이 받은 결과물을 다른 사람(분배 공정성을 판단하는 사람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비교기준이 되는 사람)이 받은 결과물과 비교하여 내리는 공정성 판단을 의미한다. 평가제도에서는 해당 평가제도를 통해 어떠한 평점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분배 공정성의 예가 될 것이다. 분배 공정성은 단순히 결과만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투입을 했는지를 고려한 상대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근로자와 비교 대상 근로자가 어느 정도의 노력을기울였는지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얼마만큼의 성과를 이루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자신이 받은 근무평정을 비교 대상 근로자의 근무평정 결과와 비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평가제도의 분배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각 개인들이 투입한 노력이나 성과 등을 정확하게 측정하여 평가결과(근무평정)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근로자가 기울인 노력에 대한 측정이나 심지어는 성과에 대한 측정(특히 사무직이나 서비스업의 경우)이 말처럼 쉽지 않다. 생산직이나 기능직처럼 비교적 양화가 가능한 업종의 경우에도 생산물의 질적인 부분까지 고려하자면 정확한 측정이 어렵고, 또한 생산체제에 의해 집합적 노동이 이루어지는 경우 개별 근로자들의 투입 정도를 차등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은 등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사무직이나 서비스업 직종의 평가 객관성 확보를 위해 KPI나 MBO 등 업무결과를 양화 시킬 수 있는 기법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또한 주관적인 평가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자기 정당화와 같은 인간의 심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객관적인 결과가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이를 주관적으로 왜곡시키는 경향까지 존재하므로 평가제도의 분배 공정성 확보는 쉽지 않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분배 공정성은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 혹은 해당 평가제도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배 공정성의 이러한 특징과 한계로 인해 대안의 성격을 지닌 ‘절차 공정성’ 개념이 등장하였다. 절차 공정성이란 분배 공정성을 결정하는 데 사용된 방법과 절차에 대한 공정성 인식을 의미한다. 평가제도에서는 근로자들을 평가하는 방법과 과정이 얼마나 공정하게 이루어 졌는가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같은 평가결과가 나타나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언가 감추어진 부분이 있다거나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면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타난 결과에 대해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 공정성은 분배 공정성과는 별개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비록 좋지 못한 근무평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인식한다면 좋지 못한 결과에 대해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을 수는 있지만 해당 평가제도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이것이 분배 공정성과 구별되는 절차 공정성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절차 공정성이 폭넓은 지지를 받는 평가제도 구축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가제도의 절차 공정성 확보 혹은 향상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평가제도의 일관성 유지이다. 모두에게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야구 심판 판정의 예를 들어보자. 모든 야구심판은 서로 비슷하기는 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스트라이크 구역을 가지고 있다. 어떤 심판은 조금 높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는가 하면 어떤 심판은 아웃 코스의 공을 스트라이크로 잘 잡아주는 경향을 지니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각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개인적인 성향이 아니라 이 심판이 해당 경기에서 일관적인 스트라이크 존을 유지하였는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양 팀 모두에게 같은 스트라이크 존을 적용하여 판정한다면 그 심판 판정의 공정성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평가제도의 경우에도 적용을 받는 근로자들에게 일관적으로 적용된다면 그 평가결과에 대해 공정성을 인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평가제도를 운영하는데 있어 모든 근로자들에게 똑같은 평가규칙이 적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편의 발생의 억제가 필요하다. 해당 제도의 결과와 관련해 개인적인 이해관계 및 선입견이 없는 사람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야구 심판의 예를 들어보면, 심판은 경기 결과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고, 특정 선수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감정이 배제되어야 한다. 만약 심판이 사전에 돈이나 다른 이익에 매수되었거나 특정 선수와 과거의 감정적인 앙금에 의해 판정이 영향을 받는다면 누구도 그 심판의 판정을 공정하다고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평가제도를 운영하거나 직접 평가하는 사람은 결과에 대해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어야 하며 특정 개인에 대한 어떤 감정도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기업은 평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선발 및 교육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실질적으로 평가제도를 운영하고 평가를 하는 것은 평가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평가제도에 참여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셋째, 정보의 정확성이 중요하다. 해당 제도가 근로자들로 하여금 사실 혹은 진실이라고 인식되는 정보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의 노력이나 성과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지가 평가제도의 공정성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를 위해서 기업은 정보의 공유 및 투명성 유지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들은 기업이 특정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숨기려 한다면 해당 정보의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식 할 수 있다. 만약 해당 정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이를 숨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 삼국시대의 명책사였던 제갈량도 공개, 공정, 공평이라는 ‘삼공의 원칙’을 강조했던 것이라고 보여진다. 평가결과는 그 자체가 민감하고 일부분 비밀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결과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다 공개할 수도 없고 공개할 필요도 없겠지만, 평가제도의 과정이나 운영에 관한 정보는 최대한 정확하고 시의적절하게 근로자들에게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넷째, 수정 가능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즉 의사결정이 잘못 이루어졌거나 실수가 있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해당 의사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잘못된 결정도 이루어질 수 있다. 실수나 잘못된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보다 이러한 실수나 잘못된 결정에 대해 정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지가 중요하다. 프로야구의 경우 ‘심판 합의판정’이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심판의 판정이 잘못되었거나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경우 각 팀은 해당 판정에 대한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다. 이는 매우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경기 특성상 오심에 대한 논란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도입된 제도이다. 물론 남용되지 않도록 각 팀의 경기당 사용기회 횟수를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 도입으로 인해 오심은 정정될 기회가 생겼고, 심판들의 판정도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평이다. 만약 비디오 판독 결과 자신의 오심이 정정되는 횟수가 증가하게 되면 심판 본인의 명성에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더 정확하게 판정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평가제도에서는 평가결과에 대한 비디오 판독과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근로자들에게 잘못된 평가결과 혹은 실수에 의한 평가결과가 나오더라도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공정성 인식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당연한 얘기지만) 윤리성의 확보가 필요하다. 평가제도가 기업,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윤리적 기준에 크게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적 기준이란 개인이 적절한 것으로 인식하는 잣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만약 평가제도가 해당 기업의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평가결과에 관계없이 제도 자체에 대해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자신들의 윤리 기준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이러한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는 평가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평가는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성과관리와 근무의욕 고취를 위해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많은 근로자들이 공정한 제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가제도를 도입, 운영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나라에 맞는, 각각의 기업에 적합한 평가제도가 무엇인지 노사가 함께 고민하여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 나아가서는 공정한 평가제도를 통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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