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자율의 종말

다들 민주주의의 근원이 아테네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덕분에 당시 아테네가 가장 발달한 문명을 누렸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제도가 그렇게 훌륭했다면 아테네가 왜 장기적으로 존속하지 못하고 준군주제를 채택한 스파르타에 패권을 빼앗겼을까? 그리고 왜 종당에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시민들은 노예로 추락했을까? 그리스에게 한 수 배웠다던 로마도 그랬다. 공화정 동안에는 정적에 대한 암살을 반복하고, 결국 가장 화려한 시기에 황제정으로 시스템을 바꾸었다. 왜 그랬을까? 그게 다 미완성된 시민의식이 자기 밥그릇을 걷어찬 것이다. 아테네에는 도편추방제라는 기묘한 제도가 있었다.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에 추방한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제도이다. 시스템은 아주 쉽고 간편했다. 시민들이 모여서 깨진 도자기 조각에 미운 놈의 이름을 적는다. 이때는 종이가 없었으니까 도자기 조각을 사용했던 것 같다. 돈도 안 들고, 이름만 적는 거니까 간편했다. 그 누구라해도 일단 6천 조각 이상을 받으면 그대로 아웃이다. 변명도 해명도 소용없었다. 그 즉시 아테네를 떠나야 하고, 그렇게 떠나면 10년간 아테네에 돌아오면 안 되는 제도였다.

아리스티데스라는 장군이 있었다. 페르시아의 대군이 아테네를 박살내겠다고 쳐들어와서 ‘마라톤’이라는 평원에서 오히려 박살이 났다. 그걸 기념하려고 우리는 지금도 ‘마라톤’ 대회를 한다. 그 전쟁을 지휘한 세 명의 장군 중 하나가 아리스티데스였다. 그는 보기 드물게 덕을 갖춘 사람이었다. 연합군인 스파르타 장군들이 오만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일 때도 아리스티데스는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했다. 그런 온유하고 정중한 성격 덕에 오히려 스파르타의 장군들을 누르고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고 한다. 힘이나 권세가 아니라 예절과 덕성으로 얻게 된 힘이었다. 아리스티데스는 자금을 정직하게 관리했고, 장부정리도 올바르게 했다고 한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고 정의에 의거해서 판단했다고 하니, 지금 봐도 참 훌륭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민회에 참가하러 가는 길에 생판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도자기 조각을 건네주며 자신은 문맹이라 글을 쓸 줄 모르니 이름을 대신 좀 적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아리스티데스’란 이름을 제시했다. 깜짝 놀란 아리스티데스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리스티데스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돌아온 대답이 그랬다고 한다. “잘못이라니요. 나는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꾸 주변에서 훌륭하다는 말을 해대서 짜증 나서 그럽니다.” 그리고 아리스티데스는 군소리 없이 자신의 이름을 도자기 조각에 적어 그 시민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날, 아리스티데스는 아테네에서 쫓겨났다. 몇 년이 흐르고 페르시아군의 재침공이 임박하자 아테네의 최고 행정관인 테미스토클레스가 급거 귀국해 달라고 간청을 한다. 그리고 이듬해, 아리스티데스는 아테네군의 총사령관을 맡아 플리타니아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격퇴한다. 최고 행정관이었다는 테미스토클레스는 ‘300’이라는 영화 속편에서 주인공으로 나왔던 초콜릿 복근의 그리스 해군 총사령관이다. 흥행을 염두에 둔 영화는 역사적 사실과는 좀 다를 수밖에 없다. 역사서에 적힌 바에 의하면 최고 행정관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가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서 ‘아리스티데스가 사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몰래 군주제를 획책하면서 무장경호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을 의도적으로 퍼트렸다고 한다. 그래서 아리스티데스가 추방을 당한 것이다. 역사가 재미있다는 점은 교묘한 술책으로 정적을 제거했던 테미스토클레스의 결론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페르시아군을 살라미스 해전에서 박살 내는 역사적인 성과를 냈지만 그 역시 너무 인기가 많고, 재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6천 개가 넘는 도자기 파편을 선물받고 아테네를 떠나게 된다. 자업자득이다. 영웅전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플루타르크는 도편추방제에 대해 ‘뛰어난 사람의 굴욕을 보면서 대중들이 기뻐하고, 질투심을 완화시키고 달래는 악의를 분출시키는 방법’이라고 평가한다. 정답이다. 모두가 한 표씩 공정하게 가지는 세상에서 나보다 턱없이 잘 나가는 그 사람의 공개적인 굴욕을 보면서 숨겨진 악의를 분출하고 통쾌해했던 게 아테네인들의 본성이고, 또 우리의 본성인 것 같다. 도편추방제의 본질적인 특성은 익명성에 있다. 던져졌던 수많은 도자기 조각에는 자기 이름을 적지 않는다. 자신의 발언이나 행위에 대한 책임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왜 그를 추방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나 해명도 필요 없다. 아주 간편하다. 그리고 두 번째 특성은 눈엣 가시같은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소문과 공작정치가 그 이면에 숨어 있다는 거다. 그런 이면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분위기에 들떠서 와글와글 떠들어대면서 추방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러면 재미가 쏠쏠했을까? 다음이 자신의 차례가 된다는 사실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래서 짜릿하고 통쾌했을까? 그렇게 쏠쏠함과 짜릿함만 즐기다가는 야만국으로 치부하던 스파르타에 굴욕을 당하게 된다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 어이없는 도자기 조각들이 생각 없는 인터넷 언론과 댓글이라는 ‘돈도 별로 안 들고 더 간편한’ 모양으로 다시 부활하는 것 같다. 그런걸 이용하는 현대판 모사꾼들도 자신의 미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걸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불쌍하다. 그리고 지나간 역사에서 한치도 배우지 못하고 짜릿함을 즐기시는 생각 없는 분들도 참 안타깝다. 이런 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민주주의 종주국이라는 영국의 브렉시트나 미국의 트럼프 열풍을 보면서 도편추방제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인재를 논하는 자리에서 웬 역사이야기? 요즘 그런 게 유행이지 않나? 자율성,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기업문화. 그런데 정작 이건 생각 안 하는 것 같다. 우리 직장인의 의식이 그것을 슬기롭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와 있는 건지. 시대적 유행과 분위기의 압박에 따라 ‘생각 없는 현대판 도편추방제’를 도입했다가 그야말로 오랜 세월 공들여 만든 도자기가 깨질 수도 있겠다는 노파심에 해 본 말이다. 그런데 그 노파심을 무위로 만들 수 있는 건 역시 인재를 담당하는 우리의 역할과 책임이 아닌가? 우리가 그간에 밥값을 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간에 못했으면 지금이라도 급하게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래저래 인사쟁이들의 머리만 복잡해지고 어깨도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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