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의 세상보기

스스로 회사를 그만둔 세 사람을 만났다. 박사과정에 있는 A, 석사과정을 시작한 B, 그리고 이제 막 개인사업을 시작한 C. 직장을 그만둔지 반년이 지난 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A는 40대 중반의 워킹맘이었다. ‘일중독’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일 잘한다는 평가도 들었다. 7년 전, 출산 직전까지 일을 하다가 구급차를 타고 가서 아기를 낳은 일화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육아와 일, 여기에 평소 꿈꾸던 박사과정에까지 도전하면서 탈이 났다. 병이 생긴 것이다. 퇴직은 죽지 않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반년 만에 만난 그녀는 생기 있고 밝았다. 퇴직하고 보낸 시간 동안 그녀가 꼽는 가장 좋았던 것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생활 20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많은 일을 했고 조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B는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미혼의 전문직 여성이다. 그녀는 비즈니스코칭을 배우는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10년 넘게 다닌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사회 초년생 시절,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아야 하는 것처럼 남들과 똑같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다. 지난 10년은 벤처기업의 창립멤버로서 회사의 성장을 위해 젊음을 바쳤다. 하지만 최근 몇 년 크게 성장한 회사에서 창립멤버로서의 역할은 크지 않았고 새로 맡은 업무도 뭔가 맞지 않고 성과도 크지 않았다. 창립멤버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고 조직에서도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40대가 되니 결혼 문제, 장래 문제 등 문제가 아닌 게 하나도 없었다. 석사과정에 들어간 것은 더 늦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절박함 끝에 나온 결정이었다. 그녀는 장래에 비즈니스 코치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제부터 제대로 ‘나를 위한 삶’을 시작하겠다고 말한다. 물론 그녀에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버는 돈 없이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고 또, 언젠가 다시 일을 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약속된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장 들어갈 돈 생각 때문에 내가 원하는 삶, 내가 꿈꾸는 미래를 더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게 그녀의 이야기다. C는 두 자녀를 두고 있는 40대 초반의 남자다. 경영컨설턴트로서 일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원만한 사람이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팍팍한 조직 시스템을 견디기가 힘들었고, 그러던 중 회사에 구조조정 이슈가 생시면서 부하들 대신해 스스로 옷을 벗고 지금의 일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정신없이 바쁘다고 이야기 한다. 프로젝트 기획에서부터 영업, 관리에 이르기까지 혼자서 다 해야 해서 정신이 없다고. 사실 엄청 바쁘고 힘들다고 말하는 그가 왠지 엄살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표정엔 전에 없이 활기가 넘쳤기 때문이다. 그는 40대 초반의 나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일하는 것이 나에게 맞는지를 알게 된 것”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맘이 편할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시작할 것을”하고 말을 덧붙였다. 직장을 퇴직한 세 사람의 얘기를 통해 무엇을 느끼는가? 물론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퇴직자들의 경험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많은 직장인들이 현재의 어려움을 개선하지 못하고 숙명처럼 받아드리고 있다. 일을 더 잘해야 하고, 더 많은 성과를 내야하고, 평판도 좋아야 한다는 여러 가지 부담과 강박관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고통스러워한다. 문제는 자기를 괴롭고 힘들게 하는 주범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귀하게 대접해 주지 않는데 누가 나를 귀하게 대접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를 위험한 환경, 괴로운 환경에 방치하지 말고 편하고 즐거운 환경에 있게 해야 한다. 생각을 전면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이고, 나의 필요에 의해 세상과 협력하는 것이다. 물론 이기적으로 살라는 얘기가 아니다. 나 스스로가 내 안에 중심으로 서야 궁극적으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행하는 시간, 지금 당장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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