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의 저작권 클리닉

Q.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전자기기를 생산하는 중견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의 직무 능력 향상을 위해 이 분야 최신 기술 동향을 담은 외국도서의 번역서를 내려고 한다. 회사 홍보실을 통해 모든 계약이 완료된 상태이며 번역서 인쇄를 앞두고 있는데 번역서 제목이 문제다. 번역서에 원서의 제목과 다른 제목을 달고자 하는데 괜찮을까 걱정된다. 원서 제목과는 완전히 다른 새 제목을 달고자 한다. 물론 새 제목은 책의 취지를 잘 반영한 것으로 국내 실태와 실무자들의 관심도를 반영한 것이다. 참고로 계약서 상에는 제목 변경에 관한 조항이 없다. 다만, 계약서 중 번역관련 조항에 이런 내용이 있다.

“귀사는 자기 비용으로 본 도서를 원문에 충실하고 정확하게 번역해야 한다. 다만, 본문의 규정에 관계없이 출판하는 지역의 문화와 언어 독자층, 시장의 차이를 이유로, 또는 명예훼손이나 표현규제의 우려로 본 작품의 특정 부분을 변경하거나 삭제할 수밖에 없는 경우, 귀사는 그 취지를 권리자에게 알리고 사전에 한국어 번역판에 필요한 변경이나 삭제를 행하기 위한 서면승낙을 받아야 한다.”

이런 경우 우리 회사가 임의로 제목을 변경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한국어 출판권을 중개한 국내 에이전시는 이런 경우 외국 출판사와 외국 저자에게 연락해서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계약서 조항에는 그 같은 내용이 없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이고 관례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번역서 출간의 경우 반드시 원서제목을 직역하거나 그와 비슷한 제목을 달아야 하는 건지 궁금하다.

제호(題號)란 저작물의 제목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제호는 저작물의 내용을 집약하여 짧은 문구로 표현한 것이므로, 이를 무단으로 변경한다면 저작자에게는 사실상의 인격권 침해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주제나 내용과는 상관없이 저작물의 상업적 이용만을 위해 제호를 무단으로 바꾸게 될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현행 저작권법에서는 ‘동일성유지 권’에 대해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의 내용ㆍ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제호는 저작인격권으로서의 동일성유지권 보호대상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원래 제호 자체는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저작물이 아니므로 저작물을 작성하는 사람이 다른 저작자의 제호를 무단 으로 사용하더라도 저작권 침해가 성립되지 않는다. 제호를 독립적인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저작권법 제정의 취지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저작권을 보호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문화 및 관련산업의 향상 발전인데, 만약에 모든 제호를 저작물로 인정할 경우 엄청난 혼란이 일어남으로써 문화의 향상 발전보다는 일부에 의한 독점현상으로 폐해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저작물의 제호에 한해서는 저작물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제호 자체가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저작물이 될 수 없다고 하여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작물을 복제한 출판물을 예로 든다면 출판물도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매우 독창적인 제호라면 산업재산권에서의 상표로서, 또는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한 상표로서 보호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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