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심리학 전공, 교육공학 박사, 삼성인력개발원을 거쳐 포스코 역사상 첫 여성임원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 늘 한 발 앞서 배우고 실천한 한국 기업교육의 구루인 그녀가 ‘지식회사’라는 멋진 이름표를 달고 우리 앞에 섰다. 오인경 지식회사 대표는 대한민국 인재들이 모이는 국내 유수기업에서 교육담당으로 일했던 과거를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기업교육은 ‘성과가 아닌 성장으로 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정책자문, 강의, 코칭, 글쓰기 등 바쁜 활동 중에도 지독한 독서광을 자처하는 그녀를 통해 우리 교육이 ‘성장’에 눈을 돌려야 하는 근거를 찾아본다.

한국 HRD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통한다. ‘지식 회사’ 대표로 활동 중인 요즘의 관심사가 궁금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오랜 세월을 대기업 교육담당자로 일하면서 당시의 방식과 방향을 의심한 적이 없었는데, 퇴임 후 인간의 행복과 성장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그간 성과에만 치중했던 교육방식이 지금도 적절한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자연, 인간, 기업, 기술은 모두 S자 곡선을 그리며, 변곡점을 넘어서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다는 것을 발견했고, 실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이런 성장 중심의 리더십을 적용해서 기하급수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례를 목격했다. 또한 세계최고 인공지능 전문가 레이 커즈와인이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은 온갖 지식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미래학자들은 지식창조를 강조하고 있다. 내가 주창하는 ‘근거 있는 창조’를 실천하기 위해 자연과학, 인문학, 철학 등 분야를 막론한 다양한 책을 읽으며 성장과 창조의 근거를 다져가고 있다.

HRD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수렵, 농경,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교육방식도 변화하였다. 그 어느 때보다 급변의 시기를 맞이했으면서도 정작 우리의 교육은 6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산업화 시대의 산물을 답습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지행동주의 교육방식(행동목표, 동기유발모델, 교수설계모델, 평가모델) 말이다. 기존의 교육방식이 현대 산업화에 지대하게 기여했고 나 역시도 25년 이상 이 패러다임을 적용해 일해왔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교육’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음이 아쉽다. 2000년대 이후의 교육효과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장전이율은 20% 미만으로 여전히 강사중심이라고 한다. 학교, 기업, 사회 전반이 대량생산에 따른 부작용을 겪고 있는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新교육 패러다임에 대한 실질적이고 과감한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급성장한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인간성장’에 주목하고 심리학, 철학, 사회학 전공자들을 대거 채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살펴봐야 한다.

여전히 성과 중심 경영이 지배적이다. 문제점과 더불어 구체적인 개선안이 있을까.

성과와 성장의 개념을 비교해 설명하겠다. 사람들은 성과(Performance)를 ‘달성해야만 하는 것’(Should 동기)으로 여긴다. 성과관리는 대부분 정해진 규정하에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이며 이는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을 일으킨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회피하고,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는 한도로 스스로의 행동반경을 제한한다. 특히 단기성과를 강조하는 조직의 구성원은 회피본능이 강해지고 자신의 일을 ‘해치워야 할’ 것으로 치부한다. 이러한 자세를 ‘고착 마인드세트’라고 한다. 반면 성장(Growth)은 ‘달성하고 싶은 것’(Want 동기)으로 모든 유기체가 지닌 자연스러운 지향성이다. 자신이 원하는 가능성에 도전하고 싶은 접근본능이 작용하여 ‘하고 싶다’라는 긍정적인 동기를 유발한다. 성과에 구애 받지 않고 자주, 지속적으로 실행하면서 인간은 ‘S자’ 형태로 훌쩍 성장한다. 개인의 성장은 조직 성장으로 확장되며, 성장된 역량을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성과’가 발현된다.
성과 중심 경영 및 교육은 눈앞의 목표달성에는 영향을 끼칠지 모르나, 지속가능성은 결국 ‘성장 마인드세트’에서 나온다. 스탠 포드 대학의 저명한 심리학과 교수인 캐롤 드웩은 『성공의 새로운 심리학』에서 학교나 기업이 ‘심판하고 받는 틀(고착 마인드세트)’에서 ‘학습을 돕는 틀(성장 마인드세트)’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성과란 성장의 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경영방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후퇴한다면 성과가 아닌 ‘성장’에 주목해야 한다.

기술 중심의 4차 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 ‘인간의 본질’을 되새겨야 함은 어떤 의미인가.

『특이점이 온다』를 저술한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은 기술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고 영향이 깊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삶이 변화되는 시기”라고 정의한다. 전문가들은 그 시기를 2029년에서 2045년 사이로 예측한다. 변화의 충격은 인간의 심신, 지능,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당장 실감하고 있는 인공지능을 예로 들어보자. 홍콩에는 이사 직책을 가진 투자 전문 AI가 일하고 있다. 실수에 대한 책임소지는 누구에게 있나? 미국의 인공지능 작곡가 EMI가 발매한 음반의 저작권자는 누구인가? 미 육군에서는 전쟁 시 두려움 제거와 인지능력 향상을 위해 저격범 모의훈련용으로 뇌와 연결되는 헬멧을 제작했는데, 만약 일반사 회에 유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술혁명이 만들어낼 유무형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윤리 질서를 다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 AI 개발자, 미래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저명한 CEO들은 ‘인간의 한계와 장점이 무엇인지, AI에게 어떤 윤리적 제약을 두어야 하는지, 인간과 AI가 유기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에 대응한 궁극적인 가치는 인간 ‘존재’의 ‘존중’과 ‘조화’라고 입을 모은다.
인간본성 연구는 리더십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과거 산업화 시대를 이끈 경영 패러다임인 ‘행동주의’는 인간의 본성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다 수치, 결과, 성과 중심의 관리 시스템이 현대 조직에 남아 있어서 많은 부적응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인류 역사 속에서 유구하게 이어져온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경제이론과 경영원리를 돌아 보고, 자연의 순리와 인간본성을 제대로 꿰뚫어 보는 진정한 리더십을 생각해 볼 시점이다.

기업교육 이론과 실무에 정통한 사람으로서 교육관이 남다를것 같다.

세 가지로 정리할까 한다. 첫째, 교육은 ‘사람이 무엇이 되고자 하는 바를 돕는 과정’이다. 교육은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다. 둘째, 교육은 ‘존재 재창조’다. 현재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되는 것을 돕는 인격적이고 전인적인 변화를 말한다. 셋째, 교육은 ‘변화관리’다. 기업교육 참가자는 대부분 ‘불려온 무료 고객’이란 인식을 지니며 수동적 태도를 취한다. 변화의 의미와 책임이 결여된 채 ‘지식을 훑는’ 구경꾼 자세다. 교육이 실패하는 이유는 ‘준비(강의)’와 ‘실행’만을 강조함으로써, 초반에 다뤄야 할 무관 심과 양가감정 단계들을 건너뛰기 때문이다. 변화관리의 5단계 ‘무 관심-숙고-준비-실행-유지’에 따라 기업교육 프로세스가 개발되어야 한다. 종합하여, ‘교육은 실존적 자각을 통해 전인적인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휴머니즘의 실현”이라 정의해본다.

법제도 및 근무환경의 변화, 핵심인력 세대교체 등에 따라 기업문화도 변하고 있다. 지속성장하는 기업이 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

제도나 근무환경도 결국은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점을 감안할 때, 개인주의가 강한 밀레니얼 세대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코칭하는가’가 기업의 주요 전략이 될 것 같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사이먼 시넥은 “밀레니얼 세대는 뭔가를 잊어버리고 있다. 원하는 바를 즉각 얻어내는 IT 발전에 따라 조급함이 있고, 깊고 의미 있는 관계형성이 어려우며,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며 “이들이 삶을 장기적 시각으로 보고 성장하도록 돕는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 구성원의 주축으로 자리잡을 이들을 기업과 리더가 나서서 코칭해야 한다. 회사의 비전에 개인을 맞추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이유, 목표 등을 먼저 묻고 회사 비전과 얼라인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교육담당자의 역할도 결국 ‘코칭’이라고 보면 정답일까.

그렇다. 현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담당자는 지시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관리를 돕는 ‘학습코치’이다. 기술과 지식을 주입하는 일방적 코칭이 아니라, 자신의 삶 또는 조직에서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스스로 변화하게 돕는 전인적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인본주의 인간관이 확산되는 시기, 교육담당자나 강사는 교육대상자가 지닌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우선 수용하는 자세 즉, ‘감정 읽기’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닫힌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이 코칭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HRD는 인간의 감정을 먼저 수용한 후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감정수용 → 사고촉진 → 행동 독려’의 선순환을 고려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 걸친 관심과 학습을 지속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여 새로운 교육 접근법을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올 초 발간한 저서 『이제는 성과가 아닌 성장을 말하라』는 조직관리 이론서임과 동시에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어느 매체에서 이 책을 ‘리더가 알아야 할 A to Z를 다룬 리더십 백서’라고 소개한 바 있다. 경영학에 근거한 기존의 리더십과는 달리 자연과 인문학, 미래학을 종합한 폭넓은 리더십을 설명하고자 수많은 분야에 걸친 백여 권의 책을 연구하고 통합했다. 급성장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인간 성장의 원형을 어떻게 적용하는지도 상세히 담았다.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끄는 방법으로 ‘마인드-풀 (Mind-pull) 리더십’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구성원들을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본성에 맞춰 마음을 조화롭게 끌어당겨야 한다. 이야말로 인간성을 존중하고 성장을 자연스럽게 촉진할수 있는 리더십이다.
인간의 삶은 쪼개지고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와 연관성을 가지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책을 참고 삼아 경제학과 경영학을 넘어서서, 융합적인 시각과 통합적 연구를 기반으로 한 리더십으로 도약하길 소망한다. 나의 본질, 인간의 본질, 성장의 본질, 리더십의 본질들을 되새기고 통합적으로 가꾸어나가는 단초를 찾아보길 또한 바란다.

더불어 교육담당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서적을 추천해달라.

구글의 HR 수석부사장이었던 라즐로 복은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에서 성공적인 조직문화, 인사관리, 권한위임, 교육정책을 소개한다. ‘인간은 당면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자유가 있으며, 이런 선택에 마땅히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실존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정책과 사례들을 담고 있다. 개인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고, 더욱 만족스럽고 행복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배려하는 조직문화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기혁신 프로그램』은 ‘변화의 원리’를 연구한 세 심리학자가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기 변화 모델을 각 단계와 과정 통해 소개 한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는 삶에서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며 특히, 교육이 왜 개인의 존재 의미를 찾아줘야 하는지를 깨닫는 데 좋은 지침이 될 테니 읽어보길 권한다.

끝으로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전한다면.

앞서 출간한 저서 제목처럼, 성과가 아닌 성장을 중심으로 배우고 공유하는 삶을 실천하고자 한다. 오랜 현장경험에서 새긴 깊이에 더하여 새로운 지식을 계속 연구하고, 다시 접목시키고, 그렇게 창조된 지식을 책과 강의, 컨설팅을 통해 전파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교육담당자를 위한 新교육방법론’을 개발, 지금까지의 교육방식을 뒤엎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소설형식으로 풀이한 『교육연금술사 김과장(가제)』이라는 책을 준비 중이다. 존재변화 코칭 개념을 바탕으로 교육담당자들이 교육과정 준비부터 종료 이후까지 해야 할 것들을 총망라했다. 진정한 교육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주체적으로 변화하겠다고 ‘선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자기보호본능이 있어서 혼자서는 자신을 잘 모른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떠올리며, 교육이 인간의 본질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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