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헨 차이츠 푸마 이사회 의장

싸구려 스포츠 브랜드, 세련된 名品으로 바꾸다

29살에 CEO에 오르다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몸집 줄여, 8년연속 적자ㆍ1억弗 빚의 늪 탈출 모든 요소를‘푸마스럽게’ 유행 민감한 청소년 집중 공략… 여성 스포츠용품 신시장 개척 전세계와 끊임없이 소통 영어ㆍ불어ㆍ아프리카어까지 구사… 직원들과 활발히 이메일 교환

‘총알 탄 사나이’ 우사인 볼트, ‘불굴의 사자’ 카메룬 축구국가 대표팀, 테니스계의 ‘흑진주’ 세레나와 비너스 윌리엄스. 이들은 모두 흑인이다. 흑인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은 무명시절 한 스포츠용품 회사의 후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회사는 막강한 자본력을 자랑하는 스포츠용품 업계 거인인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아니었다. 푸마였다. 볼트는 “16세 때부터 함께 일했다. 내가 무명일 때도, 부상을 당했을 때도 도와줬다”며 “정말 좋은 파트너”라고 푸마를 평가했다. 푸마는 무명 선수들의 어려움을 함께하며 미래 스타를 키워냈다. 이 회사의 역사도 비슷했다. 한때 한물간 상품과 1억달러의 부채에 짓눌려 파산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변신을 거듭하며 스포츠웨어 업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트렌드 세터’로 변신했다. 변화를 이끈 주인공은 29세에 푸마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라 18년간 회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꿔놓은 요헨 차이츠다.

‘갓난아기 CEO’의 모험 독일 경제 일간지 한델스블라트는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종합 스포츠용품업체 푸마가 아시아는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리셔스, 스와질란드 등의 생산시설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패션업계가 불황에 몸을 사리고 있지만 푸마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푸마가 이처럼 공격 경영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사람은 요헨 차이츠 푸마 이사회 의장이다. 그는 올초 프란츠 코흐에게 푸마 CEO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18년간 푸마를 진두지휘했다. 지금도 경영세부사항까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90년 푸마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증권가에 푸마에 투자하라고 권유하는 애널리스트는 없었다. 8년 연속 적자행진에, 빚은 1억달러에 달했다. 푸마의 제품은 선수들은 물론 젊은이들로부터 무시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29세의 ‘애송이’가 푸마의 CEO 자리를 맡았다. 푸마는 여러 명의 CEO를 갈아치운 뒤 마케팅에서 두각을 나타낸 차이츠를 발탁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갓난아기 CEO’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차이츠는 이런 평가에 개의치 않고 대수술을 시작했다. 우선 중구난방이었던 푸마의 로고를 통일했다. 당시 푸마는 부서마다 마음내키는 대로 엠블럼을 수정해 사용했다. 일치된 기업이미지가 없었다. 브랜드 로열티를 확보할 수 없는 이유였다. 차이츠는 상품 진열대부터 액자까지 매장 내 모든 요소를 ‘푸마스럽게’ 바꿨다. 젊은층이 제품의 기능이나 완성도가 아니라 브랜드를 보고 신발이나 운동복을 구입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구조조정도 병행했다. 인력을 거의 절반가량 줄였다. 창고 8개 중 6개를 폐쇄했다. 몸값 비싼 모델 대신 아름다운 경관을 회사 홍보에 이용했다. 그 결과 푸마는 1994년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에는 매출 27억유로에 영업이익 3억6000만유로를 기록한 알짜회사로 변신했다. 덩치는 나이키(190억달러), 아디다스(119억유로)에 뒤지지만 시장 인지도나 평판 면에서는 어깨를 겨룰 만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04년 차이츠를 ‘올해의 경영전략가’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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