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기자의 일상다반사

Episode 14.

 회사를 여러 번 옮겼고 그 과정에서 사람 간의 문제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일방적인 잘못은 없었다.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발생했든 결국 문제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모두가 힘을 쓰고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손뼉도 양쪽이 부딪혀야 나는 소리라고 한쪽의 잘못으로는 문제가 안 생길까? 지금은 작은 조직에서 맡은 일만 잘 하면 되기 때문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크게 없는데, 부쩍 내 주변에서 직장 내 사람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어 고민이 깊다.

- 정치의 선봉, 무능한 이사 때문에 괴로운 친구
원천기술 하나로 단시간에 성장한 회사에 다니는 친구 A. 조직도 시스템도 어느 것 하나 갖춰지지 않았을 때 입사해 거의 창업 수준으로 회사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경영학과 졸업에 회계사를 오랜 기간 준비했기에 관련 지식도 깊고, ERP 세팅이나 IR 경력 등 경영에 있어 다방면의 경험을 쌓았다.
그런 그가 스타스업 수준의 회사로 간 건, 회사가 크는 만큼 본인이 받는 대우도 좋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회사는 자꾸자꾸 크는 데 반해 친구가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자기 방에서 주식이나 보고 잠이나 자는 무능한 이사’ 탓이다. 그는 대표가 지시한 업무에 대한 이해가 없어 뒤로 친구에게 시키고는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보고하고, 직원들 앞에서는 좋은 사람인척 하다가 친구와의 독대에서는 팀원 욕도 서슴지 않았다. 대리급도 알 만한 업무를 이해를 못해서 친구에게 따로 설명해 달라고 하면서 대표 앞에서는 모든 걸 자기가 하는 듯이 당당했다. 다른 직원들도 그의 행태를 다 알지만 딱히 액션은 없었다. 직접적인 피해자는 친구 하나뿐이니까.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을 맡아 처리하고 있지만, 승진은 이사 앞에서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친구가 올라가면 이사 본인 입지가 좁아지니까 의도적으로 승진을 방해하고 있는 거다. 하도 답답해서 대표에게 ‘이런저런 일을 해냈고, 승진을 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일만 잘하지 말고, 너도 정치를 좀 해라’였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어서일까, 일 못하는 이사가 아닌 정치를 못하는 친구를 탓했다.

- 막가는 부하직원, 어디까지 봐줘야 하나
적당한 경력, 해맑게 웃으며 뭐든 열심히 한다고 말해서 뽑았다. 직접 일을 시켜보니 입사지원서의 경력이 의심스러울 만큼 내용도 모르고 속도도 더뎠다. 보통 경력은 조금씩 부풀리기를 하니까, 익숙해지면 괜찮겠지 싶었다. 그런데 기한을 주고 시킨 일을 기한 내에 처리하지도 못하고 항상 당당히 칼퇴하는 모습이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중요한 프로젝트로 팀원 모두가 매달리고 있는데 6시가 되었다고 말도 없이 불쑥 퇴근해버렸다. 이건 아니다 싶어 다음날 “다같이 마무리하고 퇴근해야지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해? 본인 일 아니야? 책임감 없어?” 한소리 했더니 “대리님한테 얘기하고 나갔는데요? 그리고 제가 업무 중에 나간 것도 아니고 퇴근시간 지나서 나간 건데 문제가 되나요?”하고 되받아쳤다. 1년 중 야근하는 날은 하루, 이틀 될까말까할 만큼 워라밸이 철저한 회사인데, 그 하루를 못 참고 던져놓고 나가다니, 과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돌아서길래 혼잣말로 ‘진짜 미친 거 아냐’ 했더니 그걸 듣고는 자기에게 모욕감을 줬다고 노동청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맡은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노력하는 모습은커녕 신고? 과장은 기가 막혔다. 윗사람에게 전후사정 말했더니 그냥 좋게 다독이라고 한다.

- 험담하러 출근하는 여자
김대리는 요즘 힘든 매일을 보내고 있다. 경력직 과장이 본인 위로 입사했는데 나이도 비슷하고 성격도 무난하고, 무엇보다 일을 곧잘 해서 한동안은 크게 이질감이 없었다. 호흡을 맞춘 지 3~4개월쯤 지났을까, 50명 남짓 되는 직원들과 앞면을 트고 식사도 가끔씩 하면서 회사 전반을 익힌 시점부터 그녀는 사소한 것부터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OO은 다리가 두꺼운데 치마만 입고 다닌다, OO은 이런 작은 회사 다니면서 차는 외제인걸 보니 부모한테 기생하나 보다, 얼마 전에 대표를 커피숍에서 봤는데 같이 있는 여자가 술집 느낌이더라 등 굳이 안 해도 될얘기를 매일매일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러고서 험담의 주인공을 마주치면 씩 웃으며 칭찬과 아부 일색이었다. 중간에서 듣고 지켜보는 김대리는 그런 험담을 들음으로 인해 본인도 한패가 된다는 불쾌한 기분과 함께, 어느 자리에서는 본인 얘기를 하지 않을까 늘 불안하다.

세상에 별별 사람 다 있다지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조직원이 내게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 예전만큼 위계적이고 딱딱한 문화는 아니라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시대에 상관없이 골칫거리다. 그렇다고 대차게 “야, 나 너 때문에 드러워서 못해먹겠어! 싸우자!” 했다가는 나만 미친 X 되겠지. 적당한 사내정치, 잘잘못에 대한 정확한 논리, 인간에 대한 적절한 연민. 삼박자를 고루 갖추기엔 참 살기 벅찬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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