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영 딜로이트컨설팅 코리아 대표

삶의 여정은 가끔은 뜻밖의 상황과 조우하게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누구는 뜻밖의 상황에서 인생의 기회를 만났다 하고 누구는 뜻밖의 상황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야기한다. 뜻밖의 상황을 기회로 만들어 낸 사람들은 하나같이 주어진 여건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미래를 준비했다고 말한다. 2008년 딜로이트컨설팅 재팬에 입사, 일본 컨설팅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딜로이트컨설팅 재팬을 업계 부동의 1위로 성장시켜 외국인 최초로 최고경영자에 올랐던 송수영 딜로이트컨설팅 코리아 대표의 도전도 그러하다.
‘최초의 최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송 대표는 자신의 지난 발자취를 두고 언제고 위기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며 묵묵히 ‘기본’을 지키며 ‘미래 준비’를 했기에 지금의 이 자리가 가능하다고 술회했다. “잃어버린 20년으로 회자되는 지난 20여 년간 일본 경제의 한가운데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숱한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움츠러들기보다는 남들과 다르게 생각, 오히려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등의 파괴적 혁신을 주도했기에 현재를 만날 수 있었다.” 코로나19 변수로 모든 산업현장이 얼어붙은 지금,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해법을 찾아봤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딜로이트컨설팅 코리아의 수장으로 취임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지난 시간 주요 활동을 정리한다면.

지난 9개월은 딜로이트컨설팅 코리아에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경영원칙을 도입, 정비하는 시간이었다. 글로벌 기업들은 저마다 분명한 경영원칙이 있다. 175년 역사를 자랑하는 딜로이트도 고객의 성공을 돕는 전문가로서 도덕성(Ethics), 신의성실(Integrity), 탁월한 품질(Quality) 등의 분명한 기준이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경영원칙을 정립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순조롭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한국 시장은 다르다. 한국에서는 어렵다” 등의 반대도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 정통한 경영자가 필요했다면, 딜로이트가 굳이 나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딜로이트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컨설팅 조직을 한국에서도 만들어 내는 것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라고 판단, 이에 맞춰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실 내 경우처럼 딜로이트 내에서는 한 지역에서 CEO 임무 완수 후, 다른 지역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흔하지가 않다. 때문에 한국 부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많이 주저했다. 하지만 반추해 보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경영을 통해 업계 일등 컨설팅회사로 부상시켰던 딜로이트컨설팅 재팬에서의 경험을, 고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 번 반복해 달라는 한국 딜로이트 그룹 차원의 요구였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밑그림부터 제대로 다시 그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딜로이트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짧은 경험으로 섣불리 말하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한국 컨설팅 시장은 글로벌 시장과는 사뭇 다른 점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글로벌 스탠다드 오퍼링을 준용하기보다는 고객의 눈높이나 여건에 따라 제안을 쉽사리 맞추는 관행이다. 물론, 이 부분이 100% 나쁘다고만 할수 없지만, 이 과정에서 혹시나 기본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고객들에게 적절한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실제 ‘프로페셔널로서의 높은 기준과 신의 성실에 기반한 고객 신뢰’가 업의 본질인 컨설팅 분야에서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직원들에게는 눈 앞의 나무가 아니라 멀리 있는 숲을 보고, 우리의 고객들에게 글로벌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높은 기준을 주문하는 이유이다. 컨설팅 회사도 하나의 기업으로서 이윤 추구가 필요하지만, 그 방법과 과정에서 프로페셔널로서의 높은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이 업에 속한 사람들의 윤리적 의무이다. 컨설턴트의 판단에 따라 우리에게 일을 맡긴 고객사의 사업이 가속성장할 수도, 퇴보일로를 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해, 한국 컨설팅 업계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이 회사, 저 회사로 옮겨 다닌다. 단순히 사람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동에 따라 사업도 옮겨 다닌다. 이는 컨설턴트 개인이나 소속 회사, 나아가 업계 전체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고객사의 경영 전반을 조언하고 조력하는 경영 컨설턴트로서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이고,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다. 인생을 걸어볼 수 있는 일터가 되도록 최고의 환경을 만드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사태로 나라 전체가 비상이다. IMF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경영 컨설턴트로서 기업의 리더 또는 인사담당에게 조언한다면.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할 대상은 ‘사람’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여전히 사람을 비용 즉, 인건비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위기 상황일수록 구성원들이 불안감 없이 일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일례로, 일본의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많은 일본 기업이 경비절감을 이유로 인력 구조조정부터 단행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불황 장기화 원인으로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꼽는 이유 중 하나가 성급한 인력 구조조정이다. 기업은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도 결국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사람을 비용으로 보고, 사람부터 정리하는 것은 더 큰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경영자와 인사 부서는 조직 구성원을 지키는 동시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만약,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시도했음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부득불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사람이 아닌 사업을 구조조정해야 한다. 오랜 경험상 사업구조를 그냥 둔 채 단순 인력 감축에 치중했던 구조조정은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위기 상황일수록 구성원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가령,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경비삭감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를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시킨 후 실행해야 한다. 사전 이해 없이 실행에만 초점을 맞추면 구성원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지고, 결국 생산성에 차질이 생긴다.

개인적인 질문이다. 지금의 코로나 위기, 개인적으로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경영자로서 많은 우여곡절의 삶을 살았다. 실제로 잃어버린 20년으로 회자되는 지난 20여 년을 일본 경제의 중심에 있으면서 2008년의 금융위기,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 등 숱한 위기를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한순간도 ‘순탄하게 잘 풀릴 거야’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의 본질에 집중해서 그것을 더 잘하는 데만 전념했을 뿐이다.
지금의 코로나 위기도 그래서 나에게는 그리 비관적이거나 위협적 이지만은 않다. 다만, 한국 시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설계하는 시점에 터진 변수이기에 아쉬움은 있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기회를 탐색하고자 한다.

올해 경영 키워드가 궁금하다.

컨설팅 회사의 고객은 기업이다. 즉, 우리 기업이 처한 상황에서의 니즈를 파악하고, 대내외적 문제를 타파할 경영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언제나처럼 전력할 것이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딜로이트컨설팅 조직의 전체적인 역량을 집대성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지난 시간, 기존부터 강점을 가졌던 전략컨설팅과 오퍼레이션, HR컨설팅은 더욱 강화했고, 다소 취약하다고 간주되었던 ‘Supply Chain Management(SCM)’와 테크놀로지 컨설팅은 대폭 보강했다. 코로나 이후 더욱 가속화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클라우드 트랜 스포메이션’을 통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가장 기민하게 대응하는 컨설팅 회사로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 자신한다.

딜로이트컨설팅 재팬에서의 성공이 업계에 화제다. 스스로 비결을 꼽는다면.

특별한 비결은 없다. 그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기본을 지키려 노력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눈에 보이는 현상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다르게 생각해보는 역발상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부동의 넘버원, 딜로이트컨설팅 재팬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른바 컨설팅 빅4 중 최하위의 조직이었다. 지금의 위치로 우뚝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사람을 지키려는 노력을 이어왔기에 가능했다. 실제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큰위기가 있을 때마다 딜로이트컨설팅 재팬은 큰 도약을 거듭했다. 다른 경쟁사들이 위기 속에 쉽게 감원을 했던 반면, 딜로이트컨설팅 재팬은 오히려 이 위기를 능력 있는 컨설턴트를 대거 영입할 기회로 보고 위기 이후를 대비했다.

동일본 대지진 때의 일이다. 지진의 공포는 차치하고 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때문에 다들 집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았을 때 나는 지난 금융위기 때 우리가 어떤 경영을 했는지를 떠올렸다. 발빠르게 위기관리위원회를 발족, 과거의 경험을 발판 삼아 공격적인 경영에 시동을 걸었고 또 한 번의 획기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 전까지는 어떤 노력에도 빅4 내 위치에 큰 변화가 없었는데, 위기 상황에서는몇 번의 역발상을 통해서 철옹성 같던 정점 자리에 훌쩍 뛰어 오를수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딜로이트컨설팅 코리아도 현재 신입 컨설턴트 공채를 진행함과 동시에 경력직 컨설턴트를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 손을 놓는 회사가 하나 둘 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도약하는 회사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주어진 여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가설을 설정하고 하나씩 실행해 가며, 조직 전반의 실행력을 높여갈 것을 주문하고 싶다.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하면 기회로 전환할지는 리더뿐 아니라 구성원들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일본 컨설팅 업계에서 한국사람으로서 파트너가 되고 CEO가 된 경험에 비춰 감히 단언을 하는데, 배수의 진을 치고 치열하게 생각하면 답은 보인다.

구체적으로 현재 기업에서 챙겨야 할 우선순위를 짚는다면.

수요와 공급 할 것 없이 모든 상황이 좋지 않다.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30~40%의 기업이 이번 위기로 사라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시킬 기회로 삼으라 권하고 싶다. 사업구조 개혁, 인력구조 개선,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의 과감한 변혁을 통한 경쟁력 강화 등 기업 전반에 걸쳐 그동안 여러 제약으로 이행하지 못했던 변화 과업들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실행할 기회이며, 위기 이후 경제 호전에 대비할 때다.
한편으로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려면 Cash Flow가 전제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이 이미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 중인데, 비상경영 태스크포스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Cash Flow 확보이다. 일별 채권/채무 관리, 각종 경비의 대폭 삭감, 인력 구조 조정, 급여 삭감, 금융권 자금 조달 등 고강도 조치를 동원하여 서라도 이 터널을 통과할 때까지 쓸 수 있는 실탄을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서 코로나19라는 외부 충격으로 그동안의 성공 방정식과 기존 산업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급격한 Digital Transformation이 진행될 것이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준비를 더 늦기 전에 해야 한다.

리더십에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선택과 집중을 전제로 혁신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위기가 오면 안정적인 기업일수록 관리형 리더십이 많이 나타난다. 지금의 안위를 지키려는 본능적 반응이다. 그러나 수비형 리더십하에서 조직은 정체된다. 구성원들이 움직이지 않고 복지부동하게 되는 까닭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혁신이다. 혁신적인 리더들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일본의 경기침체가 길어졌던 것은 비용절감이라는 미명 아래 인력 구조조정을 주도한 수비형 리더십이 가동된 탓이다. ‘어려울 때일 수록 미래 준비’라고 하지 않나. 그 어느 때보다 투자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 리더가 필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올해 우리 기업들이 견지해야 할 자세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이참에 경영자들은 초심에서 어떠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영 원칙, 메뉴얼 등을 새로이 정립하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구성원들 또한 소속한 회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자. 스스로에게 회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곱씹다 보면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컨설팅 회사의 수장으로서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신뢰’가 최우선이다. 고객과의 관계, 회사와 직원 간의 관계도 결국 그 중심은 신뢰라고 본다. 고객 과의 신뢰가 깨졌다는 것은 컨설팅업에서는 전부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아무리 성과가 우수한 사람이라도 도덕성과 윤리성에 결함이 있다면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끝으로 포부를 전한다면.

컨설턴트로서 많은 성취를 이뤘다고 자부한다. 이제는 개인의 성취보다는 업계의 문화를 바꾸고 업계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한국 컨설팅 업계는 컨설턴트 개인이 유불리에 따라 쉽게 자리를 바꾸는 상황이다. 컨설턴트 한 사람 한 사람이 업계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품위를 지켜줄 것을 바라고 있고, 또 그러한 정체성이 분명한 문화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

 

■ 송수영 대표는
삼성전자와 소프트웨어기업 SAP 등을 거쳐 2008년 딜로이트컨설팅 재팬에 입사, 딜로이트컨설팅 재팬을 업계 1위로 성장시키며 외국인 최초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빅4 가운데 최하위였던 딜로이트컨설팅 재팬을 압도적인 넘버원으로 끌어올린 주역으로, 현재는 딜로이트컨설팅 코리아 대표로 자리를 옮겨 지난 성공 경험을 국내에 이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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