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컨대 무리 속의 한 마리 동물로 지내오던 나의 직장 생활은 20년으로 끝났다. 홀로 세상으로 나왔다. 넓은 초원으로 홀로 나서게 되자, 모든 감각을 신속하게 야생의 동물적 감각으로 되돌리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한 마리의 동물로서 스스로 이끌어가는 인생의 후반부가 시작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후반부 인생에 더 없이 만족한다. 끝없이 쓸 것이고, 나를 부르는 곳에 가서 강연을 할 것이고, 직장인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연민을 가지고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개발할 것이고, 젊은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배울 것이다. 나는 세렝게티 초원에서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홀로 사냥하는 한 마리의 표범을 상상한다. 그러면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 나무 가지에 지극히 편안한 자세로 늘어져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표범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겹쳐진다. 나는 내 인생의 오후가 그렇기를 바란다. 인생을 하루로 본다면 직장인들은 정오면 퇴직이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공부문의 공무원들도 오후 두 시면 퇴직이 확실하다. 직장인들의 오후 시간은 텅 비어 있다. 할 일이 없다. 이것은 두려움일까? 아니면 신나는 일일까? 나는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텅 빈 오후 시간, 이때부터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먹고 살고, 애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했던 오전의 인생을 뒤로 하고 햇빛 찬란한 인생 오후를 즐기려면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길게는 십 오년, 보통은 십년, 짧으면 오년은 준비해 가며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인생의 오후를 황금시대로 보내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만일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내일 모레 퇴직을 해야 한다면 답답하다. 그러나 만일 시간이 날아가듯 그렇게 덮쳐와 아무 준비 없이 퇴직을 맞게 되었다 하더라도 지금 시작하면 그래도 방황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만일 아무런 준비 없이 퇴직을 맞는다면 인생의 오후는 비오고 바람 부는 세월일 것이다. 마땅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거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육체적으로 일이 힘들수록 보수가 약하다는 것은 직업세계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문득 세렝게티 초원의 하이에나들이 생각난다. 하이에나들은 초원의 청소부들이다. 떼로 사냥을 해서 먹고 살기도 하지만 다른 동물들이 먹지 않는 부위를 먹어치움으로써 부족한 절대량을 보충한다. 그러다 보니 청소동물의 대명사가 되었다. 생가죽처럼 질기고 단단한 뼈조차 그들의 먹이였으니 턱은 무엇보다도 강해졌다. 가죽을 먹으면 털까지 먹을 수밖에 없다. 털은 소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위장에서 털을 뭉쳐두었다가 정기적으로 토해낸다. 죽은 동료의 시체조차 남김없이 먹어야하고, 사냥터에 남은 피 묻은 풀조차 뜯어야하는 각박한 하이에나의 삶, 누구나 이 삶의 방식은 피하고 싶다.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무리 속에 있든 나와서 독립된 삶을 즐기든 홀로 사는 법, 철저히 나에게 의존하는 스스로의 고용법을 익혀야 한다. 스스로를 고용하는 법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동안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찰스 핸디는 벼룩이라 상징화했다. 코끼리가 기업이라면 개인은 벼룩이라는 것이다. 다니엘 핑크는 프리 에이전트(free agent)라고 불렀다. 한 직장에 매인 정규직이 아니라 자유로운 계약자들이라는 것이다. 톰 피터스는 ‘내가 곧 기업’ (I, The Company)이라는 1인 기업가의 개념을 끌어들였다. 이 이름들의 대비가 나는 흥미롭다. ‘코끼리와 벼룩’이라는 은유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크기다. 코끼리들의 활동범위를 벗어나 있는 틈새시장에서 활약하는 작은 존재로서의 개인이 앞으로 가장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 세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다. 그런가 하면 ‘프리 에이전트’라는 개념은 계약관계의 창조적 단기성에 주목한다. “회사에 충성하라. 그러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고용을 보장해 주마” 라는 평생직장의 암묵적 계약이 사라져간 사회에서 개인은 한 회사에만 충성심을 가지고 근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직장과 직장을 전전하면서 새로운 유목민으로 살아 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므로 조직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노력 대신에 자신을 스스로 차별적 전문가로 계발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1인 기업가’라는 개념은 개인과 기업의 통합을 모색한 개념이다. 개인 그 자체가 곧 가장 작은 최소 기업단위라는 것이다. 모든 직업인들은 시키는 일을 하는 피고용자가 아니라 자신의 비즈니스를 경영하는 야심찬 기업가라는 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 개념이 미래의 직업에 대단히 중요한 키워드 하나씩을 제공해 준다고 생각한다. ‘틈새시장’, ‘전문성’, ‘기업가’라는 자각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20년 직장 생활을 마친 이후, 10년 동안 변화 경영이라는 틈새의 벼룩이었고, 매년 관련 분야의 책을 써내는 전문인으로 연구해 왔고, 1인 기업가로 살아 왔다. 이 개념들은 한 직장인이 앞으로 직업 세계를 구축하는 전략적 구상을 할 때 대단히 소중한 것들이지만, 일반 직장인들이 선뜻 다가서기에는 절실함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1인 기업가’는 훌륭한 개념이지만 직장을 나와 자신의 비즈니스를 시작한 사람이라는 오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어떻게든 직장 속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으려는 직장인에게 1인 기업가는 퇴직 후에 찾아오는 먼 미래의 불안과 혼재된 개념으로 다가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개념은 존재하나 행위가 촉발되지 않는다면 현실의 절박함을 담아내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할 것이다. 직장인들이 자신을 계발하고 수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련처는 바로 직장이라는 현장이다. 따라서 지금, 여기,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일상의 업무를 전략적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집중 계발함으로써 ‘스스로를 고용하는 자’가 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목표인 것이다. ‘스고자(스스로를 고용하는 자)’들은 고용이라는 키워드를 떠나지 않는다. 고용은 곧 밥이다. 밥보다 더 절실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고용이라는 측면에서 기업에 고용된 사람이 바로 직장인이다. 그러나 고용 상태는 안정적이지 않다. 기업의 경영 상태에 의존하고 기업 환경에 좌우되는 지진대 위에 축조된 건물처럼 불안정한 고용에 불과하다. 수시로 구조조정이 가능할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고용 자체가 단명하다. 일반 기업에서의 고용은 길어봐야 25년 전후의 기간 동안만 유효할 따름이다. 겨우 인생의 1/4에 해당하는 기간만 불안정한 고용에 의존하는 것이 직장인들이다. 몸이 어디에 있든,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현업을 자신의 비즈니스로 인식하고,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경영자의 마인드를 가진 직업인들은 모두 스고자들이다. 스고자들은 자신이 월급쟁이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일을 창조하고 경영하는 경영인이라는 깨달음으로 무장되어 있다. 직장인이라도 일상의 직무를 자신의 비즈니스로 인식하고 이 바탕 위에서 현업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스스로를 차별화하여 세상에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려는 사람들은 모두 스고자들이다. 자신이 고용자이며 동시에 피고용자인 고용형태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스고자들이다. 회사의 안과 밖에서 스스로 평생 직업을 만들어 내려는 창조적인 사람들인 스고자들은 앞으로 분명한 직업적 대안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전반기 25년의 회사 시대와 퇴직 후 또 다른 25년의 제2의 창업 시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50년 경제활동 모델’이 준비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전환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10%를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안은 기업이 책임질 수 없는 곳, 정부가 지원할 수 없는 곳, 사회가 도와 줄 수 없는 곳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생하고 성장하려는 사람들의 비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사회적 현실 속에서 힘센 하이에나가 먹고 난 찌꺼기로 연명하는 졸병 하이에나이기를 거부하고 홀로 사냥하는 표범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스스로를 고용하는 스고자들의 성공은 크게 세 가지 핵심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 첫 번째 요소는 자신만이 가지는 콘텐츠의 차별성, 즉 필살기의 존재 유무다. 필살기가 없다면 스스로 고용하기 어렵다. 필살기란 차별적 전문성을 말하는 것으로, 나만이 유일하게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함을 말한다. 두 번째 요소는 필살기에 대한 적절한 개인 마케팅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필살기를 가지고 있지만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으면 비즈니스라는 관점에서 소용이 없다. 시장에 자신을 알릴 수 없다면 필살기를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자신을 외치는 장치와 통로가 바로 개인 마케팅 활동이다. 개인 마케팅은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기존의 기업 마케팅과는 달리 대규모 광고나 고가의 홍보 전문가를 활용하기 어렵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든 자신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적절한 개인 마케팅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세상은 그 사람이 차별적 필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개인이라는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스고자들의 연대가 중요하다. 삶과 비즈니스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적합한 파트너와의 공동 성장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함께 멀리 깊이 가는 유대관계’라고 부른다. 사자의 무리가 되어 공존하고 상생하는 것이다. 스고자들은 인생의 오후, 인생의 2막을 즐길 수 있다. 그들은 늘 현재가 미래를 품을 수 있도록 삶의 방식을 디자인한다. 미래를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그들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으나 정말 해보고 싶은 일들로 미래를 채운다는 의미에서 모험가들이고 이상주의자들이다. 그러나 그 일들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준비하는 치열함을 잊지 않는다는 점에서 철저한 현실주의자들이다. 우리도 언젠가 그럴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어느 날 돌연 운명처럼 어떤 일 하나가 마음속에 찾아오면 그 일을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일에 몰두하라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놓쳐서는 안 되는 승부처이며 터닝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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