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팀원을 뽑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인터뷰 질문들을 모두 마치고 지원자에게 마지막으로 팀이나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 할 기회를 주었다. 지원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 했다. “핀터레스트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다양성 이니셔티브나 최근 이룬 성과 중에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 있나요?” 지원자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받은 게 처음이 아니었다.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Diversity, Equity, Inclusion)은 실제로 구직자들이 직장을 선택하는데 점점 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인재 시장의 가장 젊은 세대인 젠지 세대(Generation Z)의 경우에는 지원하는 회사의 DEI정책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입사 지원을 재고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75%에 달했다. 경쟁적인 인재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장과 혁신을 이어 나가야 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에게 DEI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경영 전략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펼치고 있는 다양성 정책들과 포용적 기업문화 사례를 소개한다. 

채용 : 파이프라인의 다양성 확장을 통해 다양한 인재 채용을 끌어낸다 DEI 정책에서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채용이다. 많은 테크 기업에서는 아직도 여성이나 흑인, 히스패닉 혹은 라틴 아메리카인, 아메리칸 인디언과 같은 소수인종 그룹의 비율이 미국 내 인구 비율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편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격차를 앞으로 줄여나가야 하는 과제로 인식하고 다양한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채용 전략을 세우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테크 기업들은 특히 ‘파이프라인’ 문제를 겪고 있다. 엔지니어링, 데이터 관련 학위 소지자나 경력 소유자 중에 여성이나 소수인종과 같이 오랫동안 과학 기술 분야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에서 배제되어 왔던 그룹의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핀터레스트는 이에 대한 방편으로 다양성 슬레이트 접근법(DSA: Diverse Slate Approach)이라는 제도를 통해 채용 파이프라인 다양성을 확장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DSA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한 포지션에 대한 채용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해당 포지션의 최종 면접을 본 지원자 중 소수자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방침은 면접 마지막 단계까지 갈 만큼 자격 요건을 갖추고 경쟁력 있는 소수자들을 채용 담당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소싱(sourcing) 하도록 동기부여 하는 역할을 한다. 핀터레스트는 202년 채용 포지션 중 80%가 이 조건을 충족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를 달성하고 현재 90%의 목표를 세운 바 있다. 만약에 소수자의 채용을 높이기 위해서 소수자 채용률을 목표로 세운다면 채용 결정을 성별이나 인종과 같은 개인정보에 근거해서 내리는 등 공정한 채용에 위배되는 행동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DSA제도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해당하는 파이프라인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인재풀 발굴이 채용 결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실제로 핀터레스트에서는 2020년DSA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이후 이전까지 변동이 크게 없던 소수인종 채용률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기업들은 인재풀에부터 소수를 이루는 이들을 채용 파이프라인으로 끌어오려는 노력뿐 아니라 인재풀 자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커리어 관련 비영리기관이나 교육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투자 및 지원을 하기도 한다. 애플과 구글은 역사적으로 흑인 학생들을 교육해 온 대학교들 (HBCU: Historically Black Colleges and Universities)에게 흑인 엔지니어 인재 개발을 위한 지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애플의 경우에는 2021년 흑인 학생들이 하드웨어와 실리콘 칩 디자인 분야의 커리어를 준비해 나갈 수 있도록 500만 달러 규모의 ‘이노베이션 그랜트’를 4개의 HBCU 대학교에 전달했다. 이 지원금은 관련 학과 연구실의 장비 개선, 교수진과의 협업을 통한 신기술 커리큘럼 개발,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펠로우십 기회를 만드는 데 쓰였다. 또한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애플 엔지니어들과 일하며 전문 지식을 쌓고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데이터와 리포팅 : 정량적인 DEI 측정과 보고를 통해 투명성과 책임 의식을 높인다 2014년 구글,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와 같은 굵직한 테크 기업들이 다양성 보고서를 외부에 처음 공개했다. 이후 매년 다양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의 수는 늘어나고 있고, 특히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을 기점으로 스냅, 테슬라, 오라클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이 흐름에 동참해, 2021년 기준 테크 기업들의 51%가 DEI 데이터를 외부적으로 공개했다. 대부분의 다양성 보고서는 주로 조직 구성원의 성별과 인종 다양성에 대한 데이터를 다루는데, 최근에는 구성원 데이터 수집을 확대하는 노력을 통해 여러 다양성의 축을 보고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한 예로, 스냅의 최근 다양성 보고서는 자발적인 DEI 설문을 통해 모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LGBTQ+, 트랜스젠더, 장애 유무뿐만 아니라 가 족 중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경우 (first generation college graduate), 신경다양성 (neurodiversity),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경우 등 더욱 확장된 범주의 구성원 다양성 데이터를 수록했다. 이러한 데이터는 내부적으로 더 의미 있고 유익한 복지 제도를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고, 성별과 인종 이외의 범주에서 소수에 해당하는 구성원들이 더 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구글의 경우 성별과 인종의 상호교차성 데이터를 (e.g., 흑인 여성, 아시안 남성의 구성원 비율) 보고서에 포함해 같은 인종 그룹 안에서도 성별에 따라 구성원 비율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며 조직의 다양성을 더 세밀하게 접근했다. 데이터 기반이 잘 잡혀있고 피플 애널리틱스 팀과 같이 구성원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서를 둔 기업들은 DEI 경영에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매년 외부적으로 공개하는 다양성 보고서와는 별개로 내부적으로도 DEI에 관련된 목표를 세우고 진행 상황을 분기별로 검토한다. 조직의 전반적인 다양성뿐만 아니라 임원진 중, 또는 엔지니어링 조직과 같이 구성원 다양성이 특히나 떨어지는 분야를 특정하여 정량적인 목표를 세우기도 한다. 성별이나 인종에 따른 채용률이나 퇴사율을 검토해서 이러한 수치들이 앞으로의 다양성 수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예측하고, 특정 구성원 집단의 퇴사율이 특히 높게 나타난다면 견인 요소가 무엇인지 살핀다.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성원 몰입도 설문 결과도 성별, 인종, 연령대별로 비교해 집단간 격차를 보이는 항목에 주목하고 이러한 격차를 줄이고 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액션플랜을 세운다. 

포용성 : 매일의 일터에서 경험하는 포용성 조직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DEI는 어떤 모습일까? 이번에는 필자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면서 HR 실무자가 아닌 구성원의 관점에서 직접 보고 느낀 DEI 프로그램들과 일상에서 겪은 포용적인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우선 재직 중 여러 번 DEI에 관련된 교육을 받았다. 입사 후 포용성과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다루는 ‘포용성 개론(Intro to Inclusion)’ 트레이닝을 이수해야 했다. 성과 평가 기간에는 효과적인 피드백에 대한 워크샵을 수강했는데, 무의식적인 편견이 피드백과 성과 평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배우고 이러한 편견을 배제하고 더 객관적이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쓰기 위한 팁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채용 면접관이 되었을 때는 포용적이고 공정한 인터뷰 진행과 평가를 위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예를 들면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젠더 대명사를 밝 히는 것, 출신 학교나 직장 등 서로 공통점이 있어도 특정 지원자에게 친근감을 표현하지 않고 인터뷰 내용과 관계없는 주제에 대한 대화를 삼가는 것, 지원자에 대한 평가는 성격적인 부분이 아닌 직무에 관련된 역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예시를 구체적으로 들며 서술하는 것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특정 문화권이나 구성원 그룹을 조명하는 날에는 이에 대해 모두가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한국인으로서 더 반갑게 느껴졌던 아시아 태평양 문화유산의 달이 기억에 남는다. 게스트 스피커로 중국계 캐나다인 배우인 시무 리우가 할리우드에서 아시안 배우가 마주하는 장벽들을 뛰어넘으며 마블 역사상 첫 아시안 히어 로 캐릭터인 ‘샹치’를 연기하기까지의 여정을 나눴고, 사내 식당에서는 다양한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의 음식들이 점심 메뉴로 나왔다. 이러한 교육과 행사들 이외에도 일상적인 직장 생활 중에 작지만 의미 있는 포용성을 느낀 순간들이 있다. 팬데믹 이전에 사무실 출근을 하던 시기에는 퇴근 후 동료들과 맥주를 한잔하는 ‘해피아워’를 종종 가졌는데, 술을 마시지 않는 팀원들을 위해 무알코올 음료를 다양하게 서빙하는 곳으로 장소를 정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아이를 유치원에서 픽업해야 해서 일찍 귀가해야 하는 팀원이 함께할 수 있도록 아예 다들 30분 일찍 업무를 마치고 해피아워를 가진 적도 있다. 요즘 사내 식당에서는 출근 근무하는 구성원들을 위해 점심을 제공하는데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단백질 메뉴가 부족하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그 이후로 고기 메뉴만큼이나 다양한 식물성 단백질 식단과 대체육 메뉴가 추가되었다. 마지막으로 자녀가 있는 동료들의 공유 캘린더에는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줘야 하는 시간 또는 그 외의 돌봄 시간 등이 블락 되어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돌봄 의무가 있는 구성원들이 유연하게 근무하는 것에 대해 모두의 합의와 이해가 이루어져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내가 남들과 다른 면이 있어도 그것이 일터에서 유난스럽거나 불편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존중받고 배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감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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