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세계에서 ‘창조’나 ‘창의성’이 화두가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21세기 들어서 본격화됐다고 보면 된다. 세기말을 넘어가면서 세계가 공급과잉이라는 절벽에 직면했다. 놀라운 상품, 새로운 방식, 혁신적인 서비스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고 그 원동력으로 창의성ㆍ창조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문학에 관심이 높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던 철학이나 역사에 관심이 쏠리는 세태는 학부에서 전공했던 사람의 눈에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마침내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론칭하면서 “애플은 언제나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지점에 존재해왔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산업 현장의 엔지니어들에게 창의성은 몰라도 인문학에 기반한 창조는 너무 큰 얘기다.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좋아하는 엔지니어들의 선택은 트리즈(TRIZ)였다. 신하와 함께 독서ㆍ시사 토론 ‘창의적 문제해결 방법론’을 뜻하는 러시아어 약자인 트리즈는 200만개 이상의 특허를 분석해 40가지 발명원리와 76가지 문제해결책을 집대성한 혁신 방법론이다. 기술적인 벽이라고 여겨지던 난제들을 트리즈로 해결하고 응용력까지 축적할 수 있게 되자 트리즈는 회사 전체의 창의력을 기르는 대안으로 급속히 번져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LG전자 등이 쏟아내는 성공 사례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국경제신문도 3년 전 ‘글로벌 트리즈 컨퍼런스’를 공동 창설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트리즈가 이 정도까지 발전한데는 엔지니어 출신들의 공이 가장 컸다. 그 가운데서도 삼성SDI 사장 재직 시절 트리즈를 직접 도입해 성공 사례를 만든 손욱 교수(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를 빠뜨릴 수 없다. 손 교수는 창의성의 원천으로 토론문화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태인들이 노벨상의 20%를 차지한 데는 어릴 때부터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이 밑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학생들의 수업은 ‘헤브루타(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교육)’가 가장 중요하다. 2~4명이 조를 짜 서로 묻고 답하게 한다. ‘예시바’라고 불리는 도서관은 아예 2명씩 마주 보고 앉아 토론할 수 있도록 좌석배치가 돼 있다. 생존키워드 창의성의 토대 우리에게도 이런 문화가 있었다. 바로 세종 시절이다. 세종 때는 왕이 학자와 신하들과 함께 독서토론 또는 시사토론을 하는 경연(經筵)문화가 있었는데 세종은 32년 재위 동안 이 경연을 무려 1898회나 열었다. 한 달에 5회 정도 가진 셈인데 당시에는 이에 영향을 받아 지방의 관찰사 현감들도 자주 토론회를 가졌다고 한다. 이런 토론문화 속에서 창의력이 자라 세종 시기에는 당시 세계적이라고 불릴 만한 전 세계 62개의 발명 혹은 혁신 가운데 29개를 조선이 차지할 정도로 일류과학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세계를 제패한 삼성전자 반도체도 토론문화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은 1989년부터 사장을 비롯한 임원, 간부, 엔지니어 등 수백 명이 수요일에 모여 기술과 개발에 관해 난상토론을 벌이는 ‘수요공정회의’를 정기적으로 가져왔는데 최근 1,000회를 돌파했다고 한다. 결국 창의성은 끊임없이 머리를 쓰며 브레인 파워를 기르는 데서 높아진다. 트리즈든 토론이든 마찬가지다. 창의적인 회사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작은 답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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