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우리나라는 몸 고생은 수십 배 줄어든 반면 마음고생은 수십 배 늘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수십 리를 걸어서 학교를 다니고, 추운 겨울 시린 손을 불어가며 차가운 냇가에서 빨래를 해야 했다. 겨울철에는 동상에 걸리는 사람도 많았다. 요즘은 이런 몸 고생은 거의 하지 않는다. 자동차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빨래는 세탁기가 대신해 주며, 또 더운 물로 샤워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해졌다. 그러나 마음고생은 오히려 크게 늘었다. 이는 육체노동 시대는 끝나고 감정노동 시대가 도래한 것을 의미한다. 인류 문명은 육체노동-정신노동-감성노동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손발경제-두뇌경제-감성경제로 경제체제가 바뀌는 데 따른 필연적 현상이다. 감성노동은 고객만족, 고객행복을 위해 머리가 아니라 감성으로 서비스하는 것을 말한다. “상품을 팔지 말고 만족을 팔아라!”, “물건을 팔지 말고 행복을 팔아라!” 고객은 물질적 효용성이나 기능을 중시하기보다도 행복을 구매하려고 한다. 이게 바로 감성경제이다. 까다로운 고객의 비위를 맞추고 만족을 주려니 서비스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에 걸린다. 이런 현상을 감정노동이라고 한다. 감성노동의 경계를 뛰어넘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현대인은 직장이나 가정에서 대부분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마음고생을 한다. 이 밖에도 과도한 경쟁, 상대적 박탈감, 왕따, 소외, 온갖 스트레스 등등 마음고생의 원인은 너무나 많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누구나 마음고생을 하는 세상이다. 따라서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면 인간은 분노하게 된다. “아니 말 한마디 가지고 뭘 그렇게 화를 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 말 한마디가 내재된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면 엄청난 고통으로 연결된다. 때로는 분노를 넘어 공격 행위로 연결되기도 한다. 정도가 심한 경우 자살도 불사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먹고 잘살게 된 대한민국,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속은 온갖 상처로 그 어느 때보다 빈곤하다. 머리에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이 내 안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 건 아니다. 내 행복은 내가 가꾸어야 한다. 화목한 가정, 우정을 나누는 친구, 건전한 취미 생활, 종교 활동, 봉사나 기부, 자기수양 등은 모두 개인의 행복과 직결된 핵심 요소들이다. 하버드대학의 심리학 교수 다니엘 골멘은 현대사회에서 IQ보다 EQ가 더 중요하다고 여러 논문을 통해 강조한 바 있다. 골멘은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의 주된 성공 요인을 밝히는 연구를 했는데, 연구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가정을 했다. “IQ 높은 사람이 사회적 성취도도 높을 것이다. 대학을 안 나온 사람보다 나온 사람이, 그리고 학부만을 나온 사람보다 석·박사과정을 나온 사람이, 즉 학력이 높을수록 사회적 성취도도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러한 외부 조건과 상관없이 성공한 삶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감성지능(EQ)인 것으로 밝혀졌다. 감성지능은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힘, 나아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힘이다. 감성지능이 높으면 자신의 감정 조절, 분노 조절을 잘 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정서 상태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공감과 소통을 잘 할 수 있고 따라서 서비스, 마케팅, 협상, 인간관계, 리더십 등에서 모두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머리가 좋으면 성공하던 IQ 시대는 끝났다. 감성경제는 EQ 높은 사람들이 이끌게 돼 있다. 요즘 미국과 유럽에서는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 명상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EQ를 높이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직종을 불문하고 지도층 인사들이 심리학 공부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심리학을 잘 활용하면 감정조절, 분노조절을 잘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의 핵심은 문사철이었다. 문학, 역사, 철학을 통하여 인간의 본성과 인간 문명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심리학이 인문학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한 후에 문사철을 학습하면 더 좋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자기 수양이 EQ를 높이는 첫걸음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부쩍 와 닿는 시대인 것이다. Helper’s High가 행복의 원천 으레, 국민행복지수가 높은 선진국들은 정부의 복지정책이 잘되어 있어 그럴 것이라고 생각들 한다. 사실은 복지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국민 개개인이 생활 속에서 스스로의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 행복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자기수양, 화목한 가정, 우정, 취미, 종교, 학습 등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서 나오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을 복지라는 봉투에 담아서 나눠주는 나라는 어느 곳에도 없다. 개인의 행복을 가꾸고 행복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Helper’s High’이다. 조건 없이 자발적으로 남을 도와주었을 때 느끼는 고도의 행복감이 바로 Helper’s High이다. 인간은 도움을 받을 때보다 누군가를 도울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할리우드 인기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이런 철학을 잘 실천하고 있다. “내가 번 돈의 3분의 1은 나를 위해 지금 쓰고, 3분의 1은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지금 쓰고, 나머지 3분의 1은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있다.” 졸리는 전쟁 피난처나 극빈 지역을 수시로 찾아가서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바로 고도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행복지수가 높은 선진국들을 보면,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부터 Helper’s High를 느낄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킨다. 봉사활동 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소액을 기부하게 이끌어 준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러한 봉사가, 이러한 기부가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알려 주고 Helper’s High를 느끼게 해 준다. 이것이 진정한 인성교육이다. 이들이 성장해 성인이 되면 가계소득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소액이나마 기부활동을 하고 수시로 자원봉사에 나선다. 즉, 봉사나 기부가 생활화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Helper’s High를 느낄 수 있는 선진국형 봉사나 기부는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봉사가 최선의 교육이고 최고의 행복이다. 우리사회에 Helper’s High가 더 확산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행복시대를 열 수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하늘은 남을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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