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

수식어가 필요 없는 정유정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으로 돌아왔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진이, 지니』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그녀답게 이번에도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 최상단에 오르며 스릴러 여제의 저력을 발휘했다. 정 작가는 “이번 작품은 불행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한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모든 에너지가 자신에게로만 향해 있는 나르시시스트가 행복을 추구할 때 그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 소개하며 “지나친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전했다. 정 작가와의 만남을 들여다본다.

먼저, 『완전한 행복』 작품 소개를 해 달라. 이 책은 불행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완전한 행복을 추구한 한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다. 하나의 작업 루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작품 퇴고 두세 달 전에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에 들어간다. 『진이, 지니』 작품이 끝나갈 무렵으로 다음 작품을 고민할 때였는데, 당시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굉장히 우려스러운 징후가 있었다.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바로 그것인데, 물론 자기애와 자존감은 삶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미덕이지만 온 세상이 ‘너는 특별한 존재’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그로 인해 과하게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강한 사람들로 인한 크고 작은 이슈들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행복 강박증, 지나친 자기애가 얼마나 큰 문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완전한 행복> 을 읽다 보면 자연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예상한 대로다. 고유정 사건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유정 또한 나르시시스트일 것이라고 생각해 프로파일러에게 자문을 구하니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강한 인물이 맞다는 답을 얻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은 맞지만 서사 자체는 완전히 허구라는 점이다. 선입견 없이 책을 봐줬으면 좋겠다. 완전한 행복? 제목이 역설적이다. 제목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있을 것 같다. ‘완전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늘 순조로운, 그저 편안하기만 한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보고 무언가에 크게 아파도 해봐야 행복에 대해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한다면, 2011년 <7년의 밤>으로 세상에 내 이름이 막 알려졌던 해에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 길고 긴 무명의 터널을 지나 ‘이제야 꽃을 피는구나’라는 생각에 한창 설레고 있을 때로, 갑작스러운 암 선고는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다. 안 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야말로 정서적 지옥을 경험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때의 그러한 지독한 불행이 있었기에 오늘을 더 값지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참고로 현재는 완치 판정을 받은 상태다. 당시 암 선고를 받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굉장히 컸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루하루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계속 고민하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물론 그 삶에 불행과 결핍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계속해서 스릴러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가 있기보다 단지 쓰려는 이야기가 스릴러 장르에 잘 어울릴 뿐이다. 내 소설 속 주인공과 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살아남기’이다. 내게 불행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하면 최악의 선택이 아닌 차악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를 계속 되묻는 것처럼 내 소설 속 주인공도 그 행동이 설사 좋든 나쁘든 간에 무슨 짓이든 시도하고 이겨내 자기 삶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살아남기’라는 조건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는 어떤 순간에 직면해야 한다. 그 순간 내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최악의 선택을 하는데, 바로 이러한 형식이 스릴러와 굉장히 잘 어울린다. 스릴러의 목적도 ‘살아남기’이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내지는 ‘살아남아 삶의 가치를 구현하는 자유 의지’라는 주제로 인해 스릴러 작가로 불리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저 ‘진짜 이야기꾼’으로 불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품에 들어가기 앞서 사전자료조사를 오랫동안 깊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작가들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너무도 당연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가령 『7년의 밤』에서 잠수부, 야구, 댐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기에 일차적으로 관련된 책들을 전부 섭렵했다. 심층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인 뒤로는 전문가를 찾아가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듣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렇게 해도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잠수부 같은 경우 이론으로 공부하고 SSU(해난구조전대) 출신의 잠수 교관도 만났지만 그 정도로는 민간 잠수사가 사용하는 현장의 은어나 사건들은 다 알 수가 없었다. 해서 민간 잠수사들이 활동하는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 게시물을 보며 현장에서 사용하는 은어, 분위기 등 현장감을 익혔다. 이런 작업들로 사전조사 작업이 진행되는데 보통 6개월 정도 걸린다. 이번 완전한 행복 집필에 앞서서도 소설 속 공간을 구체화하기 위해 전문가 인터뷰는 물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 바이칼 호수를 답사하는 과정을 병행했다. 이번 작품을 위해 나르시시스트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했을 것 같다. 나르시시즘은 정상적인 인간 성향이다. 대부분 사람이 자신을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긴다. 나르시시즘은 스펙트럼과 같다. 즉 적당한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삶을 가꾸기 위해 필요한 열정이 되어 자신의 잠재력을 펼치게 하는 주요 동력이 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을 흑색지대, 회색지대, 백색지대로 스펙트럼을 나누어본다면,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강한 사람은 흑색지대의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수치심, 과대포장, 가스라이팅 등으로 실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 남에게 잘못을 지적당하면 부정하고 자기합리화하는 성향이 강하다. 심한 경우는 남에게 뒤집어 씌우기도 한다. 과대포장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포장해 상대를 가스라이팅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회색지대는 적당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들로 아주 건강한 사람들이다. 백색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애가 약한 사람들로, 실제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생각하는 에코이스트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항상 타인의 눈치를 보고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지를 생각하며 불안해한다. 이런 사람의 부모 중에는 나르시시스트가 많은데 대개 가스라이팅으로 통제를 받으며 살아왔을 확률이 높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반달 늪이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반달 늪은 유나의 심연이다. 유나는 풀문이 되고자 하지만 영원히 풀문이 될 수 없는 하프문이다. 결핍, 불운, 슬픔 같은 부정적인 것들도 중요한 삶의 요소임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며 없애버리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알지 못한다. 유나가 추구하는 완전한 행복은 절대 채워질 수 없음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완전한 행복>에서 애착이 가는 문구가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차은호가 유나에게 ‘이제 행복해?’라고 질문하는 장면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끼는 문장이다. 차은호는 작품 속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쓸쓸하고 황폐한 감정을 가진 캐릭터로 복잡한 남자의 내면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여성 작가로서 막막했는데, 그런 차은호가 꿈속에서 아내의 ‘나랑 왜 결혼했어?’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아내에게 느끼던 감정을 말하며 ‘이런 여자와 결혼을 안 하면 어떤 걸 해야 하냐?’는 차은호의 대사에서는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가까이 있고 싶어한 복잡한 감정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아내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반대로 유나에게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제 행복해?’인데 아내를 증오하던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감정을 여전히 놓지 못하는 쓸쓸하고 슬픈 감정을 가진 차은호를 특히 잘 구현한 것 같다. 한번 보면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는 세세한 묘사가 압권이다. 따로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 지금은 어느 정도 나만의 문체가 만들어졌지만 그전에는 묘사 연습을 많이 했다. 만약 침대 밑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와 장롱 밑으로 들어가면 아주 짧은 순간임에도 A4 두세 장으로 써본다. 바퀴벌레가 장롱 밑에서 나왔을 때 날씨나 그때 들었던 소음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등등 아주 하찮은 것이라도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했었다. 지금 와서 보면 이 연습이 소설을 쓰는데 많은 보탬이 되고 있다. 어떤 묘사를 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묘사는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독자가 완전히 실감나게 이 감정을 짊어질 수 있는지 공부가 된 것 같다. 작업 중 힘이 들거나 슬럼프가 올 때 어떤 방식으로 해소를 하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이다. 하루 중 두세 시간은 빼놓지 않고 운동하는 시간으로 채우고 있는데 덕분에 못하는 운동이 거의 없을 정도다. 운동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작가의 삶에 있어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쉽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글쓰기가 힘이 들거나 스트레스 해소가 안 되는 날은 혼술을 마신다. 잠을 일찍 청하기 위함으로 술 한잔 마시고 일어나면 기분 전환이 될 때가 많다. 도서관에 갈 때도 있는데 스토리가 막힌다는 것은 관련 내용에 이해가 부족해서인 경우로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 사례들을 찾아보면 의외로 답을 쉽게 얻을 때가 많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라는 문구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축약해 놓은 것 같다.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행복은 일상 속 감정의 경험이다. 삶의 가치를 깨닫고 그 가치를 몸소 구현할 때 오는 성취감,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의 경험이 진정한 행복이다. 따라서 행복은 절대 목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살아가는 게 힘들고 쓸쓸하니 많은 사람이 행복을 목표로 두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삶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볼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행복의 유무와 대소는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근래 내 행복은 키우고 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다. 작업을 하고 있으면 고양이들이 노트북 뒤에서 내가 바라봐주기를 바라며 갖은 아양을 부리는데, 이때 작지만 큰 행복을 느낀다. 글 쓰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인데, 이러한 순간들이 힘듦을 중화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완전한 행복>을 이렇게 봐줬음 좋겠다고 전한다면. 사람의 어두운, 그늘진 이면을 소재로 하기에 불편해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면을 보여주는데 누가 흔쾌히 즐겁다고 할 수 있겠나. 때문에 유머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최대한 문장에서 무게를 덜어내고 유머를 넣어 독자를 웃게 해주려고 애쓰는데 아는 분도 있고 모르는 분도 있다. 그 유머들을 찾아가며 읽는다면 재미를 더할 것 같다. 『완전한 행복』은 재미와 의미 모두가 담겨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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